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대구에 첫눈이 내렸다. 예전에 여긴 눈이 귀했지만 요 몇 년 사이 기후변화 탓인지 겨울철 눈이 잦다. 경험상 첫 눈은 늘 모두가 잠든 한밤에 내렸는데 이번 첫 눈도 역시 그랬다. 일어나자마자 밤새도록 내리 쌓인 하얀 설경을 바라보는 건 일상에서 드문 낭만이다. 물론 그 낭만은 오래가지 않고 금새 출근걱정으로 이어진다. 멀리서 바라보는 눈은 센티멘탈하게 해주는 매개가 되지만 내 몸에 닥치는 눈은 여지없는 현실이 된다. 질척이는 눈뭉치는 지저분하고 걷기에 불편하다. 눈길에서 제힘을 쓰지 못하는 자동차들의 거대한 패닉상태를 보라. 눈은 얼마나 이중적인가.

 

추위에 약한 체질탓인지 군복무 시절 경험한 경기 북부의 그 혹독한 추위와 지긋지긋한 폭설 때문에 나는 중부지방보다 훨씬 따뜻하고 눈이 거의 없는 이곳 대구에 거주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제 눈이 귀찮은 존재가 된 건 그만큼 나도 어지간히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가. 올해 첫눈이 온 날 아침은 마침 야간 출근조였다. 오후가 되면 눈은 녹을 것이고 아침에는 출근 걱정이 없어 오랜만에 눈을 즐길 낭만과 여유가 생긴다.

 

 

 겨울 첫 눈이 오면 늘 책장에서 꺼내보는 책이 있다. 바로 일본작가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집 철도원

 

 눈에 얽힌 추억은 많이 있지만 눈이 오면 생각나는 책은 이 철도원이 유일한 것 같다.눈이 사람에게 주는 효능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정화다.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철도원>은 하얗게 내린 눈처럼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와 목젖을 울컥하게 하는 감동이 있는 슬픈 이야기다.겨울철이면 늘 막연하게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은 또렷한 모습이 없으면서도 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데 그런 날이면 아사다 지로의 눈처럼 시린 슬프고 따뜻한 이야기를 천천히 읽는다. 읽고 나면 답답했던 가슴이 풀리면서 따끈하게 데운 캔커피 처럼 마음이 훈훈해진다. 

 

 

 소설의 배경은 끊임없이 눈이 내리는 일본 북부 홋카이도 지방의 시골 간이 역인 호로마이 역. 호로마이 역은 한때 메이지시대 이래 최고의 탄광촌으로 기세를 떨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역장 오토마츠의 퇴직과 함께 폐쇄될 운명의 쓸쓸한 노선. 1970년대 석탄산업의 활황기 때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강원도 태백이나 정선의 기차역들을 떠 올리면 족할 듯하다. 호로마이 역의 역장인 오토마츠는 이곳에서 45년을 근속하고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래된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 등장했던 투명인간 차장이 입은 바로 그 투 버튼 검정색 철도원 코트. 소설 속에 묘사된 오토마츠가 입은 철도원 제복도 바로 그런 코트이다.

 

 오토마츠는 자신의 직업에 투철한 사내다. 그는 하나밖에 없었던 늦둥이 딸이 동사해 돌아온 날도 열차 안내 깃발을 흔들며 딸의 주검을 실은 기차를 맞고 여객 일지에 "이상 없음"이라 적는 철도원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멀리서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역에서 마지막 기차를 배웅하는 업무를 완수하고 나서야 숨진 아내가 있는 영안실을 찾아간다. 오토마츠 대신 아내의 임종을 지킨 건 동료 철도원의 아내였고 그녀는 아내의 임종소식을 듣고도 곧장 달려오지 않은 오토마츠를 매정하고 박정한 인간이라고 비난한다. 눈이 얼어붙은 외투 차림으로 아내가 있는 영안실에 왔으면서도 끝내 울지 않았던 오토마츠에게 동료 철도원의 아내는 어째서 울지도 않느냐고 따지고 들자 그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도 철도원인데, 사사로운 집안 일로 눈물을 보이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작가는 너무 작위적인 설정으로 슬픔을 자아내려 하는 것일까. 자신의 가족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역장의 책임을 다하려는 오토마츠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는 가족보다 역장이란 임무가 더 소중했던 일 중독자였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지독히 고집 세고 우직하기만 해서 융퉁성이 전혀 없는 인간이었을까.

 

 또다시 눈 내리는 추운 12월의 마지막 밤. 오토마츠와 그의 오랜 친구 센지는 새해를 맞기 위해 눈덮힌 호로마이역을 지킨다. 센지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오토마츠는 늦은 밤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정월 초하루는 오토마츠의 딸 유키코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늦은 밤, 호로마이 역에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낮에 역에 놀러왔다가 인형을 놓고 간 어린소녀의 언니가 동생의 인형을 찾으러 온 것이다. 낮에 놀러왔던 소녀는 내년이면 학교에 입학한다면서 작은 책가방까지 맨 귀여운 아이였다. 오토마츠는 역 주변 마을 주지스님의 딸들인 줄 알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해준다. 그날 밤, 마지막에 나타난 언니는 오토마츠의 딸이 살아있었더라면 꼭 같을 또래의 고등학생 소녀다. 그녀는 오토마츠에게 따뜻한 새해 밥상까지 차려준다. 소녀가 끓여준 된장국은 생전의 아내가 끓여내던 바로 그 된장국 맛이다. 오토마츠는 자신의 딸 유키코를 회상하며 즐거운 밤을 보낸다. 쓸쓸하고 적막한 호로마이역을 찾아온 그 소녀들은 누구일까.

 

 오토마츠가 결혼 17년 만에 얻은 어린 외동딸은 호로마이역에 딸린 문풍지 바람이 끊일 새 없는 사무실 겸 살림방에서 추위를 못 이기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오토마츠는 늘 자신의 직업이 아이를 죽인거라는 죄책감으로 한평생을 보낸다. 그러나 이제야 찾아온 딸은 그런 오토마츠를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자식노릇 한 번 못하고 죽어버렸다면서 오토마츠를 위로한다. 아버지는 철도원이니까.. 그게 아버지 직업이라면서 말이다.

 

 

  오토마츠가 새해 새벽에 죽은 자신의 딸과 재회하는 장면은 눈시울이 찡해지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장면. 독자의 눈물과 슬픔, 그리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감동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딸을 만난 날, 오토마츠는 그날의 여객일지에도 여전히‘이상 없음’이라고 적어넣는다. 그리고 새해아침, 오토마츠는 눈덮인 플랫폼에서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손깃발을 꼭 쥔 채 주검으로 발견된다.

 

 오토마츠와 딸이 만나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나는 오토마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시커먼 제복차림에 시린 눈 냄새 풍기며 역무원의 일에 몰두했던 오토마츠의 모습에서 내 아버지를 떠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서 들판으로 달려가셨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 듯이 새벽부터 들판으로, 직장으로, 생업의 터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밤이 늦어 아이들이 잠든 뒤에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가정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과 궁핍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본능이 우리 아버지들을 그렇게 가정과 멀어지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본능에 충실했던 것이 그들이 저지른 유일한 실수라면 실수이리라.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그런 실수를 원망할 수 없다. 이 작품의 오토마츠를 미워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산업화시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부분 그렇게 살았다. 시골 간이역에 오토마츠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덩치 큰 기차가 들어오면 레일도 바꿔줘야 하고 역에 들어오는 열차를 수신호로 안내하면서 안전하게 정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버스처럼 혼자 와서 혼자 출발 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소설에 보이는 오토마츠의 고집이나 일에 대한 무서운 집착은 비현실적이어서 그런 사람이 정말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한평생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실수를 한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더하고 더한 평균적 인물이 바로 오토마츠 역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토마츠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일 중독자가 아니라 그런 시대를 그렇게 견딜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희생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딸이 죽고 아내가 죽던 날도 여전히 여객일지에 이상 없음’이라고 적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이란 것도 그렇게 돌아간다.

 

 한쪽에서는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과 친구를 상실하고 슬픔과 비탄에 잠긴 사람들이 힘들어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끝없이 이어지는 기차 레일처럼 꿋꿋이 이어진다. 슬픔에 잠겼던 사람들, 잠시 희망을 잃었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삶의 터전은 바로 오토마츠가 여객일지에 적어 넣은‘이상 없음’의 바로 그곳일 것이다. 사람들은 기찻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면서 희로애락의 매듭을 이어간다. 오토마츠는 기차레일이 아닌 레일 밑의 거대한 침목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레일 밑에 깔린 단단하고 묵직한 침목이 있어야 기찻길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열차와 열차를 타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하중과 희로애락을 떠받치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하고 든든한 기차레일 밑의 침목은 삶의 토대며 근본이다. 오토마츠의 삶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침목 같은 삶의 중심에 대한 믿음을 져 버리지 않았던 철도원이었기 때문이리라. 눈이 많이 내린 겨울 아침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집 철도원에는 단편<철도원>외에도 주옥같은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옮긴이의 말을 들어보면 아사다 지로는 일본에서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손꼽히는 작가라고 하는데 <철도원>이나 <러브레터>같은 단편을 읽어보면 그런 수식이 어떻게 붙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최민식과 장백지 주연의 <파이란>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철도원>은 1999년에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주연을 맡았던 일본 국민배우 다카쿠라 켄의 연기도 정말 좋았고 딸 연기를 했던 히로스에 료코의 청순한 모습도 좋다. 역장역을 맡았던 다카쿠라 켄은 올해 11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