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궁리하는 과학 6
자크 모노 지음, 조현수 옮김 / 궁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의 분자 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과학철학서.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받은 충격과 감동은 워낙 강력한 것이어서, 책을 완독하고 1주일이 지나서도 아직 책을 책장에 집어넣지 못하고 다른 책에도 손을 대지 못했다. 인류의 모든 사상과 종교와 철학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자크모노의 과학 도그마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과학철학의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이 책을 읽게 된 경위는 평범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바라본 세상은 더 이상 예전의 그 평범한 세상이 아니었다. 자크 모노가 쏟아내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들은 내게 친숙하고 습관적이었던 것들을 낯설게 만들어 주었고 그럼으로써 근본적으로 내게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나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면 친숙했던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그리고 그 친숙했던 세계관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하고 만다.

 

 이 책은 내게 생명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 개안(開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왜 혁명적일까?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지식과 사상의 근원부터 파고들어 마침내 그 지식과 사상의 시초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류의 사상과 종교, 철학의 시원을 신(神)이 아닌 인간 그 자체의 존재로부터 연유했다고 주장하는 모노가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공리(公理)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과학적 객관성이다. 그러나 모노가 말하는 과학적 객관성의 실체는 내가 그동안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과학적 객관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모노가 말하는 과학적 객관성의 공리는 데카르트 이후 근대과학에서 시작한 인과율과 필연적 자연법칙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주사위 놀이 같은 우연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노는 생명의 기원이 극도로 미세한 물질들의 우연적 조합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연은 정확히 필연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그 우연의 시작에 어떤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구상의 원시바다에서 최초의 생명이 우연히 발생하게 된 것은 마치 쓰레기장에 태풍이 휘몰아쳐 그 쓰레기들이 보잉747비행기로 저절로 조립될 확률과 마찬가지이거나 그 확률보다 훨씬 더 희박하다. 모노의 말대로라면 이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역사에서 인간이 탄생할 확률도 거의 0에 가깝다.

 

 이 확률들은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들이 저절로 보잉747로 조립될 확률보다도 더 희박하다는 것을 다시 상기한다면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 것이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사건들의 선험적 출현 확률이 0에 가깝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우주에는 분명 생명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모노의 철학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인간은 필연적 존재가 아니라 지극히 우연적인 존재임을 직시하자는 것이 모노의 주장이다. 우주에서 생명과 인간은 인간이 아는 한 단 한번 탄생했고 인류의 출현 또한 단 한번의 유일무이한 사건으로써 그 자체로 모든 인간중심주의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다고 하는 모노는 이제 그동안 인간존재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고 초월적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나 신의 의지에 의해 탄생했다는 종교적이고 물활론적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과학적 세계관을 수용하자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이 세계와 우주의 주인도 아니며 인간존재의 근원도 필연이 아닌 그저 주사위 놀이 같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차갑고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은 한 점의 티끌 보다 더 미미한 존재이며 한없이 고독한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세계관과 생각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심각하게 불안하도록 만든다. 모노는 이 사실이 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애초부터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운명 지어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성향과 상충한다고 한다. 그래서 모노는 운명의 존재에 대한 진한 향수애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운명에 대한 진한 향수애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과 사상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 이런 운명에 대한 향수가 중세까지 서양을 지배했던 목적론적 세계관이었고 근대과학은 이 목적론적 세계관을 인과적 세계관으로 대체했다. 모노가 말하는 우연은 인과적 세계관의 절정이다.


  모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생명의 진화현상은 더욱 놀랍다. 보통 사람들은 진화현상을 생명이 더욱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으로써 생명과 물질을 초월한 특정한 진화의 법칙이 존재하여 그것이 생명을 진화하게 하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필연적 진화론을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모노가 바라보는 생명의 진화 현상은 그저 러시안 룰렛게임처럼 양자적 요란의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

 

  즉, 생명현상의 본질은 진화가 아니라 DNA의 불변적 자기복제 시스템이며 진화는 이 DNA의 불변적 자기복제 시스템의 부차적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모노의 의견이다. 이 모노의 의견은 DNA에서 RNA로만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만 가능하다는 정보의 비가역성(非可逆性)이라는 엄연한 생물학적 연구 성과로부터 뒷받침된다. 다시 말해 기후나 자연적 변화가 생물체 세포내의 유전자인 DNA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DNA를 구성하는 극미한 양자들의 우연적 요란이 DNA를 변화시키고 변화된 DNA는 돌연변이를 낳게 되는데 이 돌연변이가 개체 생명으로 성장하여 환경과 조화하여 생존할 수 있다면 이 돌연변이가 곧 진화현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극미한 양자세계의 우연적 요란은 바로 양자물리학자인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미시적 원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뉴튼의 물리학처럼 거시세계에서 보이는 인과율과 기계론적 필연성은 미시세계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원자와 전자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확률게임만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고전물리학의 최후를 장식했던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것이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자들의 연구 성과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분자생물학의 성과를 보면 아쉽게도 아인슈타인의 유언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 생물학의 입장에서 볼 때, 진화는 결코 생명체의 속성이 아니라 오히려 유전정보의 보존의 메커니즘이야말로 생명체만이 특권적으로 유일하게 가진 독특한 본성이라는 모노의 주장은 혁명적이고 충격적이다. 진화란 유전정보 보존 메커니즘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고 그저 우연의 산물이라면 그동안 진화란 것은 생명체내에 내재된 고유한 필연의 법칙의 발현으로 여겨왔던 내 인식을 완전히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는 또 하나의 혁명이다.

 

  이제 모노가 보여주는 생명의 참모습과 진실을 접하고 나면, 눈을 들어 창 밖에보이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새 한 마리도 더 이상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툭하면 자연을 살리자, 환경을 살리자라는 오만한 인간중심적 세계관은 이제 폐기되어야 마땅하리라. 인간은 이 우주의, 지구의 주인도 아닌 그저 길가의 풀 한포기와 같은 우연적 운명이며 자연은 더 이상 인간들이 죽이고 살리고 자시고 할 노예적 대상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의 운명에 무관심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의 운명에도 무관심하다. 자연과 인간이 존재하는데 결코 어떤 목적이 있을 수 없음을 직시하고 나면 비로소 자연과 인간,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생명과 자연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의 운명이 결코 우주를 초월한 절대자가 미리 써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쓰레기장의 부품들이 보잉747로 저절로 조립될 확률과 같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모노는 분자생물학에 근거하여 전혀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지만 그가 의지하는 분자생물학이 결코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이 아님을 지적한다. 모노는 분자생물학에서 지식의 최전선, 즉 미지의 수수께끼 영역으로 최초 생명체의 기원, 인간의 중추신경계(뇌 포함), 유전암호의 기원 등을 들고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그리고 그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분자구조가 왜 그렇게 생겼고 그것이 어떻게 기원했는지, 또 그 아미노산의 분자구조 순서를 결정하는 DNA가 어떻게 기원했는지에 대해 현대 과학과 생물학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이 출간된 1970년 이후 40여년이 지났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전히 미궁이다. 21세기 블루오션은 바로 분자생물학이 될 것이다.

 

  모노가 설명하는 리보솜과 박테리아 퍼지 바이러스의 재구성,  단백질 분자들의 입체 특이적 결합력, 알로스테릭 효소의 피드백 촉매작용, 그리고 생체세포들 간의 합목적성을 보고 있으면 정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의지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그리고 이 책의 본질을 모르고 독서를 시작했던 사람은 이 희한한 생명체의 작동방식과 진실을 소개하는 모노의 본심이 필경 초자연적인 의지와 운명을 끌어들이고자 함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오해는 순전히 모노의 글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모노의 글은 마지막까지 읽어야 하는 미스테리 소설처럼 독자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에 떨구어 놓는다. 그만큼 그의 글은 재미있다. 물론 약간의 모호함과 난해함이 매끄러운 독서에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모노의 글은 매력적이며 흥미롭다. 또 그의 글에는 이 짧은 독서평으로는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무궁무진한 이야기 거리가 넘쳐난다.


   모노의 글을 읽고 초월적인 神的 의지의 출현을 바랐던 독자들은 모노의 철저한 유물론적, 기계론적 세계관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러나 모노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객관적 과학적 공리에 의지해 나간다. 그리고 그는 섣불리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의 문장에 우글거리는 “나” 라는 1인칭 주어의 반복적 등장은 확신에 찬 그의 문장에서 겸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한편의 지독한 도그마에 빠진 종교경전을 읽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바로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도그마 말이다.

 

  과학책으로써 이 책만큼 재미있는 책을 읽어 본적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노의 주장이 극단적으로 위험해 또 하나의 과학 근본주의라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걱정이 들었지만 모노의 일관적 태도와 객관적인 설득력에 근거한 압도적인 위력에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할, 아니 그렇게 생각할 그 어떤 이유도 필연성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세계가 어떤 원인자를 가져야 할 필연성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종교적 세계관에 대한 강력한 백신이다.

 

모노의 <우연과 필연>은 내가 읽은 책 중에 최고의 책이며 최고의 지적 희열을 제공한다.

 

 분자생물학에 생소한 독자들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알로스테릭 효소의 메커니즘 설명부분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데 아래의 책들을 참고하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알로스테릭 효소 부분은 읽지 않고 건너뛰어도 책의 전체적 내용과 모노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만화로 쉽게 배우는 생화학>  김성훈 옮김, 성안당 출판사, p163~212

 <내몸안의 작은 우주, 분자 생물학> 하기와라 기요후미 저, 황소연 옮김, 전나무숲 출판사p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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