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3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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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을 읽는 것은 높고 험한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배낭을 꾸리고 지도를 펴서 내가 가야 할 루트를 탐색할 때 설레고 약간의 긴장감이 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선택한 등산로가 오르기 적합한지 낙오할 일은 없을지 끝내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 궁금하고 두렵지만 직접 내 몸으로 밀고 나가지 않으면 산은 내게 오지 않는다. 장차 내가 읽을 장편소설 한편을 선정하고 타인의 리뷰를 훑어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읽을 책을 잘 골랐는지 끝까지 완독할 수 있을지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는데 지금까지 숱하게 읽다가 중도하차한 소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독서가들 사이에서 평이 너무 좋아서 선택했다. 책 날개에 이언 매큐언은 <타임지>선정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50인의 영국작가에 이름을 올린 현대 영문학의 대표작가라고 소개되어 있고 <속죄>에 대해서 마스터피스라는 칭호를 기꺼이 붙일 수 있는 작품, 위대하고 아름답고 황홀한 픽션의 파노라마이며 특출난 작품이라며 극상의 칭찬 일색이었다. 과연 그런 작품일까라는 약간의 의심을 가지며 책을 펼쳤지만 완독하는데 거의 보름이나 걸렸다. 이유는 소설의 1부 때문이었다. 1935년 영국의 어느 시골 저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묘사한 부분인데 이런 시덥잖고 평범한 이야기에서 어떻게 <속죄>라는 제목에 걸맞는 임팩트 있고 강렬한 플롯이 나올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답답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속죄>의 1부는 소설 전체 500페이지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방대한 분량이었고 풍경이나 심리묘사가 너무 세밀하고 등장인물도 복잡해서 종이에 인물 계통도를 그려가며 조금씩 읽느라 거의 열흘 이상이 소진되었다. 책을 잘못 고른 것일까?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또 누가 무슨 죄를 지어 어떻게 속죄할지도 예상되는 바가 없었는데 편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소설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급선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골저택 주인의 딸과 하녀 아들의 러브스토리였구나. 그런데 평범하고 진부한 이야기 라인을 타지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은 마스터피스라는 칭호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대저택 부호의 딸은 세실리아, 하녀의 아들은 로비 터너. 세실리아에게는 호기심 많고 몽상을 즐겨하고 소설가를 꿈꾸는 어린 여동생 브라이어니가 있었다. 로비 터너와 세실리아는 어릴적부터 소꿉장난 친구였고 대학까지 같이 다녔지만 아직 서로의 사랑을 확실히 확인한 적은 없었다. 로비 터너는 세실리아에게 보낼 편지를 쓰는데 한 장은 평범한 연애편지였고 한 장은 그녀를 갈망하는 욕정을 여과 없이 대담하고 직설적 표현한 편지였다. 순전히 단순한 열정에서 나온 독백이었으니 결코 보낼 수 없는 편지였다. 편지 내용이 원색적이므로 원문을 옮기진 않겠다. 궁금한 사람은 직접 책을 읽어 보기 바란다. 사실 나도 이 편지에서 눈이 번쩍 뜨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시종일관 점잖은 서술을 이어가던 찰나에 뜬금없이 에로틱한 수준을 한참 넘긴 적나라한 편지 내용 때문이었다.


그런데 편지 내용도 내용이지만 불길하게도 편지 배송사고가 터지게 된다. 원래는 점잖게 쓴 연애편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불쌍한 로비 터너, 세실리아의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가던 길에서 세실리아의 동생 브라이어니를 만나고 그녀에게 편지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건네주는데. 이 대목부터 이제 잠잠하던 시골 대저택은 말그대로 폭풍이 몰아치는 워더링 하이츠가 되고 만다. 과연 두 개의 편지 중에서 어떤 편지가 세실리아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던가? 편지 배송자 브라이어니는 그 편지를 먼저 읽었을까? 편지를 읽었다면 그 내용 그대로 언니 세실리아에게 전달했을까? 소설의 1부를 꾸역꾸역 읽다보면 이언 매큐언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길고 지루한 예열과 빌드업을 하고 있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편지 이야기로 넘어가고 2부, 3부로 넘어가면서 그 많은 풍경묘사와 인들의 심리 이야기가 전부 소설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소설적 상상력을 폭발시키는 어마어마한 자양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잠시 이 대작가의 역량을 의심하고 과소평가한 내 자신에 대해 솔직히 속죄할 수 밖에 없었다.


 1부가 막바지에 이르면 조용하고 평화롭던 세실리아의 저택은 끔찍한 범죄현장으고 변하고 브라이어니는 그 범죄를 저지른 자를 특정할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설마설마 했던 예감이 어긋나지 않아 브라이어니는 로비터너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는데 대체 그녀는 어쩌자고 무슨 생각으로 언니가 사랑하는 로비 터너를 범인으로 몰아세웠고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고 저주하는 미운 빌런이 되었을까? 불과 12살 먹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여자 아이, 극작가와 소설가를 꿈꿨던 순진한 브라이어니가 한순간 저지른 실수로 인해 한 연인이 파멸에 이르는 상황은 완전히 낯설지 않아도 경악할 일이었다. 나는 브라이어니 그 애가, 뭐 이런 밉상스런 녀석이 다 있지 하면서 지독하게 미웠지만 3부에서 그녀가 간호사가 되어 참전 군인들의 참혹한 부상과 상처를 진심으로 돌보는 감동적인 선행을 읽고 나서 슬그머니 그녀를 동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전적으로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의 기묘하고 신들린 듯한 소설 기술 때문이리라. 브리어어니가 얄미운 미꾸라지에서 매력적이고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작가의 마법을 즐기는 것도 이 소설의 백미중에 하나였다. 악의 축이었던 브라이어니가 어느 순간 선행의 천사가 되어가는 과정은 눈물겹고 아름다웠다. 나는 마침내 백의의 천사가 된 브라이어니의 속죄는 성공했다고 믿었지만 소설은 내 단순한 추측을 허용하지 않고 더욱 충격적인 반전을 여럿 준비해 두고 있었다.


 브라이어니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린 시절 저지른 과오를 어떻게 다루고 속죄하는지가 이 소설의 척추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작가가 인간을 얼마나 깊고 집요하게 탐구해 나가고 있는가하는 점이었다. 나는 어떤 문학작품에서 이 소설만큼 인간을 속속들이 치밀하게, 그리고 가식이나 위선 없이 생생하게 개성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본적이 드물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수 십년 동안 친밀하게 알고 지낸 사이처럼 정감이 가고 그들의 이야기와 사랑은 무척 애틋하다. 이언 매큐언이 이 소설의 발단이 된 사건으로 스스로 지목한 것은 지난 세기에 인류가 저질러온 실수와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가능하긴 하지만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불가능한 시도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고 한다. 작품에서 브라이어니가 저지른 실수가 어떤 파국적 나비효과를 가져오는지,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평생에 걸친 지난한 고행을 이어가는지 관찰해보면 그 깨달음을 확인할 수 있겠다. 실수는 순간이나 속죄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잔혹하게 이어진다. 실수가 우연인지 필연인지를 따지기보단 과오를 알았다면 즉시 바로잡을 노력은 불완전한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마땅히 요청되는 의무이다. 그리고 그것이 속죄가 아닐는지. 인류세 시대에 이미 오래전 접어든 인간들은 지금 제대로 속죄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린 브라이어니처럼 아직도 철없이 실수와 과오를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가?


 이언 매큐언은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겠지만 이 작품에서 치밀하게 묘사된 전쟁의 참혹함은 그 어떤 전쟁 자료보다 실감 나고 생생하다. 작가가 책 말미에 쓴 감사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는 전쟁 박물관에서 1940년 당시 활동했던 군인들과 간호사들의 미출간 서신과 일기, 회고록 등을 열람한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관련 전쟁 서적 여러 권을 독파하고 자료를 수집했던 탓에 그토록 생생하게 전쟁의 참상과 현실을 묘사할 수 있었다. 작가적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지만 어쩌면 좋은 작품 한 권을 쓰기 위한 작가의 기본적 의무에 충실했던 것이다. 일본작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좋은 책 한 권을 쓰려면 입출력비가 100대 1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관련분야 100권을 읽어야 1권이 나온다는 것.


<속죄>는 이언 매큐언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드러낸 지성적 아포리즘 많았는데 그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소설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신념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야기 자체에 긴장과 빛, 그늘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부분은 요즘 젊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서 주로 보이는 서사의 실종, 비대한 자아와 모호한 심리묘사 위주의 글들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로비 터너가 프랑스에 참전하여 총 한번 쏴보지 못하고 덩케르크 해변으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지독한 고난속에서도 그의 군복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세실리아의 편지들. 세실리라는 그의 삶의 이유였고 그녀가 편지 말미에 썼던 말, “기다릴게. 돌아와”를 수천번 음미하며 성소처럼 간직하는데 그는 과연 세실리아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브리이어니의 속죄가 성공적이었고 로비 터너의 누명이 모두 벗겨지면 세실리아와 로비 터너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겼지만 소설은 충격적 반전으로 마무리 된다. 이 소설이 액자식 구성이라는 점을 잠시 잊어버린 탓이겠지만 책을 덮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이 아름답고 황홀한 픽션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문장과 치밀한 구성으로 짜여진 압도적인 서사의 힘에 나는 완전히 현실을 잊고 작품속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호접지몽을 꾼 것 같이 몽롱했다. 이야기의 외연이 생활세계로까지 확장되어 길을 걸을 때 머리 위에 낙옆이 떨어져도 모를 정도로 소설 생각에 골몰하기도 하고 작품 속 인물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있지 않을까하는 기묘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책을 덮었을 때 마침내 나는 오래 참아왔던 가늘고 긴 호흡을 비로소 풀고 크게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 <1999년 런던>까지 내 가슴의 호흡 근육을 완전히 장악해서 긴장시키는 작가의 솜씨와 능력에 수없이 탄복했으니 이 작품을 만난 것 또한 더없는 행운이라 할 만하다. 아름답고 강렬한 작품이었다. 당분간은 이언 매큐언에 푹 빠져 있을 것 같고 나중에 다시 읽을 소설 한 권을 뽑으라면 그의 작품 중 하나가 되리라 확신한다. 그의 다음 작품으로 뭘 읽을지 고민중이다.


소설은 끝났지만 즐길거리는 여전히 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어톤먼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입수해 놓았지만 원작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영화를 보기로 했던 결정은 역시 옳았다. 글로써만 상상했던 소설속 배경과 인물이 영화에서 어떻게 재현되었을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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