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부산지리는 네비게이션이 있어도 정말 힘들다. 차를 아예 가져 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봤다. 감천벽화마을에서 광안리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님 60대 초중반정도의 아저씨였는데 인상이 선하고 좋았다. 내가 먼저 기사님께 말을 걸었다.
택시 하신지 오래 되셨습니까?
예, 몇 년 되었습니다. 공사에서 정년 퇴직하고 그냥 놀 수 없어 택시를 하게 됐어요.수십 년간 돈벌던 습관이 어디 가겠습니까? 하하, 택시 일이 재밌고 좋습니다.
예, 잘 되셨네요.
그래도 여행도 다니고 좀 쉬시고 하시지..
저는 일 하는게 쉬는 겁니다. 택시 해서 월급 받으면 며느리한테 월 백만원씩 용돈을 주는데 정말 재밌어요. 내가 벌어서 누군가에게 용돈 주는 재미요. 며느리가 참 좋아합디다. 저희 며느리가 저한테 참 잘해요. 매일 전화해서 안부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 해주는데 저는 그게 너무 고맙습니다. 자주 찾아오기도 하고요. 며느리가 아니라 친딸 같아요. 그런 며느리한테 해줄건 별루 없고 저는 돈 쓸일도 거의 없고 아무래도 젋은 사람들이 돈 쓸일이 나보단 훨씬 많지 않겠어요. 자식도 키워야 되고 집값도 값아야 되고.. 건강이 허락할 때 까지 계속 택시일을 할 겁니다. 며느리 용돈도 계속 줄 수 있고.
기사님 며느리 정말 좋은 시아버지를 두셨네. 월 10만원도 아니고 100만원이라니. 웬만한 알바 월급 아닌가. 하, 이분 며느리는 전생에 무슨 덕을 쌓었기에.. 기사님은 말을 이었다.
사실 얼마전에 저희 집사람이 대장암수술을 했어요. 근데 집사람 암수술 사실을 아들내외한테 알리지 않았어요. 걱정할까봐. 근데 잘한 것 같습니다. 자기들도 직장다니고 바쁘고 그럴텐데 괜히 알려서 신경쓰고 불편해할까봐요. 둘다 맞벌이 하는데 회사에 휴가내고 병원 왔다갔다 하는거 회사 눈치도 보이고 여간일이 아닐 겁니다. 집사람 수술 잘 됐고 잘 낫고 있습니다. 나중에 집사람이 완전히 나으면 그때 알려주려고요. 그 때 이야기해도 하나도 안 늦겠죠. 이해해 주겠죠. 담에 제가 아파도 또 그렇게 하자고 집사람하고 얘기도 다 해놨습니다. 하하.
라디오 양희은의 여성시대에 소개될 법한 사연이었다. 아들과 며느리한테 알리지 않고 암수술을 해낸 기사님 부부. 그리고 기사님 본인이 아파도 역시 또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에 놀랐다. 세상에 이런 부모들도 있구나. 이분들은 진짜 부모였다. 그런데 나중에 부모님(시어머니)의 암수술 이야기를 듣게 될 아들 내외는 어떤 기분일까? 아들 내외는 어쩌면 굉장히 난처해 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며느리 입장이 더 난처할지도 모를 일이다. 왜 그런 중대한 일을 말씀도 없이 상의도 안하고 숨기고 그러셨나고. 나는 그 기사님이 아들 내외에게 수술을 알려준 다음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지만 그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기사님에게 참 잘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해줬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이란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식이 어릴 때는 아무 조건 없는 내리사랑. 자식이 컷을 때는 자식에게 본인들 걱정을 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들고 심신이 쇠약해지면 부지불식간에 자식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은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그 택시기사님 부부가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기원했다. 광안리는 봄이 한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