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읽어 나가는 책 중에 기타모리 가조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이 있다.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과 비슷한 시기에, 아니 더 빨리 나온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일본에서만 유행했다면 몰트만의 책은 전세계의 신학계를 강타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기타모리의 책은 가해자임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기 때문이다. 독일도 가해자이지만 모든 사람의 아픔을 나누었다. 그래서 일까? 같은 아픔을 나누어도 누군가는 가식적으로 보이고, 누군가는 공감이 된다. 나는 몰트만에 더 힘을 실어 주고 싶다. 그럼에도.. 가조의 책은 무시할 수 없는 책이다.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시간이 흐를 수록 진정한 희망을 십자가에서 찾았다. 강한 하나님의 죽음은 기적이자 능력이다. 진정 강한자를 스스로 약해질 수 있다. 몰트만의 책들은 한 권 한 권 곱씩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린 슬픔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공개하고, 죄가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악함 조차 약함의 일부임을 자백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세월호 이후 한국을 두 패로 갈리었다. 아니 갈리어 있었지만 명징하게 드러났다. 촛불 집회는 민심이 무엇인지,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공감이란 슬픔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울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