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블롬버그


기억이 가물가물... 정경론을 다룬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쓴 사람이 기억이 나지 않다 두 어달을 지났다. 오늘 우연히 복음서의 비유 연구도서들을 찾다.. 우연히 보게 된 저자.. 에구야... 저자로 다른 책이 있는가 검색하니 적지 않은 책이 나온다. ... 신약성경 석의 방법은 꼭 사야겠다.. 자꾸 사고 싶은 책들만 늘어나니 걱정이다.



블롬버그의 글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직설적이며 직관이 넘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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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C. Sproul died yesterday. He leave.....


이름은 익히 들어 알지만 그의 책은 몇 권 읽지 않았다. 그다지 내 성향에 맞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분의 책들을 찾아보니 일반 교리뿐 아니라 특이한 책들을 적지 않게 썼다. 루터와 이발사 라든지...더러운 옷, 왕을 태운 당나귀등......


한 사람이 떠났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가겠지.. 그 정도의 차이는 앎과 관계의 친밀도에서 달라질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뉴 칼빈니즘이라 부르지만... 그 언어의 생경함이란.. 뭐가 뉴지? 뭐가 달라진 것일까? 의아하다. 좀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라 반가운 의미는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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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의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과 몰트만 희망을 비교한 <희망의 두 지평>을 다 읽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낸 것이라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그래도 모호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절리해 주어서 좋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책은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외에는 읽지 않았다. 몇 권을 읽으려고 알아보니 그리 많지 않다. 한길사 셋트는 절판된지 오래고. 위르겐 몰트만의 책은 수 십권이다. 세 권 정도 읽었는데 두 권째 읽으니 내용이 많이 닮은 느낌이었다. 앞으로 이 두 사람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서평부터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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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걷기다

산책은 산(구입한)책이다. 

산책은 살아있는 책이다. 

산책은 산처럼 쌓인 책이다. 


산책은 이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권연경의 <로마서 산책>을 검색했는데 가장 먼적 검색된 책은 <로마 산책>이다. 그리고 그 아래 바울 복음의 숲길 산책이 보인다. 동일한 산책, 즉 걷기다. 그런데 왜 나에게  산책이 '산'의 다양한 의미로 읽혀질까. 

















산책, 산 책, 산     책...

산책은 탐색이고, 사유이고, 성찰이다.



















오늘 산책들이다.... 세 권 모두 맘에 든다. 좋다. 특히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정>은 개신교인인 나에게 묵직한 가르침을 준다. 교리적으로 가톨릭을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개신교가 가질 수 없는 전통과 전례가 있다. 오늘 어떤 신부와 페친을 맺었다. 기대가 된다. 크리스토퍼 홀의 <교부들과 함께 성경 읽기>는 무거우면서도 새로운 읽기를 선물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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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리서치하다 고민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가끔 뜬금 없는 곳에서 비슷한 책이 발견된다. 



교부 문헌을 찾다 성바질을 발견하고 정말 놀랬다. 이런 책은 교부라는 키워드는 절대 검색이 안 된다. 번역된 교부 문헌을 찾으려 수개월을 고생했다. 그런데 어떤 책을 검색하다 우연히 걸려든 책이다. 2주가 다 되도 아직도 찾는 중이라고 기분은 별로지만.... 


왜 출판사에서 '교부'라 '초대교회' 등의 키워드를 넣지 않은 것일까? 흠..... 


그리고 이 분을 부르는 이름은 대 바질 (Basilius Magnus, 330-379)  대 바질, 아니면 바실리우스다. 그러니 어찌 성 바질이란 이름으로 검색이 될까.... 








닛사 그레고리의 <모세의 생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 바질과 닛사의 그레고리는 초대교회 삼위일체 형상에 기역한 갑바도기아 삼대 교부들이다. 그런데 이 책도 정말 우연히 찾은 책이다. 다행인듯하면서도 약간 마음이 상한다. 











발자취.. 현장... 이것은 어느 종교에나 있다. 일종의 성지순례다. 불교에서는 인도를, 기독교를 예루살렘과 유럽을... 그곳을 찾아 다닌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일상이 있다. 어쩌면 우리의 깨달음이란 엉뚱한 곳에 있지 않을까? 엉뚱한 곳에서 책이 발견되듯 말이다.


그런데 얼만 전 글을 쓰는 분이 글을 쓰려는 장소에 가니 상상력이 '폭발'했다고 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성지순례는 그곳에 성스러운 기운이 아니라 그 지역과 연결되는 독특한 무엇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상태의존기억이란 것도 있지 않던가... 기억 나지 않다가도 그 지역에 가면 갑자기 생각나는 그런 것..... 흠... 이상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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