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 아웃케이스 없음
테리 길리암 감독, 릴리 콜 외 출연 / 프리지엠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요즘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혹 상상할 시간이 있더라도 상상물을 문자화된 형태로 나타내야 하는 세간의 조급성은 상상의 결과물을 빈약하게 만든다. 이렇듯 기나긴 꿈속에선 찬란해질 상상이 급박한 현실을 만나면 바닥에 주저앉는다. 처연하다. 가난한 상상마저 사치가 돼 버린 시절이 야속하다.

 상상력 부족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문제다. 무엇보다 한국은 상상력을 말살하는 강한 위계질서와 압축된 노동을 축으로 한 큰 덩치를 자랑한다. 그 묵직함이 이젠 둔중함으로 비친다. 이에 기업이 위기를 느꼈나 보다. 포스코는 ‘상상창의캠프’를 운영하며 직원들의 사적인 공상시간마저 회사에 오롯이 바치라 한다. 또 다른 기업은 제가 속한 울타리는 놔두고선 ‘애플’을 배우자며 상상력 증진에 나섰다. 이렇게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진 상상력이 근사함과 이어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급조된 상상예찬은 그 토대가 빈약한 탓이다. 제 살 파먹기일 뿐이다. 가엾다.

 영화 속 파르나서스 박사는 타인의 상상을 자주 엿본다. 마술을 통해 상상을 구체화시키고 개인의 욕망을 오롯이 드러낸다. 각자는 충실히 욕망을 좇고 파르나서스 박사는 자신의 욕망을 추종할 뿐이다. 그 좇는 과정이 유치해 보이는 그래픽을 따라 화면에 너울댄다. 화려한 그림 덕에 심심하지는 않다.

 상상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다. 유리 거울처럼 돼 있는 은색종이 사이를 지나 발을 들이면 된다. 그 곳은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지만 완전히 부재한다고도 할 수 없다. 저기서 흐르는 시간만큼 여기의 시간도 흐르기 때문이다. 갇힌 만큼 흐르는 시간은 상상 속 공간의 모호함을 잘 보여준다. 상상은 말 그대로 은색종이 한 장 차이다. 상상을 꿈꾸기는 쉽지만 상상에 발들이기 위해선 종이 한 장을 건널 만큼의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눈여겨 볼 대상은 히스레저다. 죽기 전 마지막 연기다. 조니뎁과 콜린파렐, 쥬드로 같은 멋진 배우들이 그가 떠난 공간을 메웠다. 덕분에 시나리오도 수정됐다고 한다.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이따금 질척대는 건 히스레저의 부재 때문이다. 영화는 상상을 이야기하지만 근사한 상상만으로 누군가의 빈자리를 빈틈없이 메우긴 힘들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꿈이 다소 빈약한 까닭은 최첨단 그래픽도 채울 수 없는 히스레저의 빈자리 때문이다.

 쉽게 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한 소망의 대상이었을 소박한 가정을 비쳐주고선 이야기는 끝맺는다. 마음을 다습게 하는 마무리다. 허나 따스한 결말이란 감독의 상상력부족을 나타내는 방증일 테다. 얼마 전 씨네 21에서도 이 영화를 CG가 과다 사용되어 이야기를 흐린 대표적 사례로 꼽았었다. 상상력이 자본과 기술을 만나 허우적댔다는 이유에서였다. 상상이 깃들 공간을 자본이 메우니 사람보단 기계 냄새가 너무 났었나 보다.

 상상극장의 문이 닫히고 다시 회사다. 간만에 상상할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시간을 다잡기에 버거운 근자다. 그 여유가 조금은 불안하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은 법이니 더욱더 벅찬 시간이 기다릴 테다.

 상상예찬 취소다. 힘든 일을 예측하는 데엔 상상력이 부족했으면 한다. 거친 현실도 무딘 상상력을 만나면 그리 힘든지 모르고 지나갈 테니. 이사야 벌린이 ‘여우와 고슴도치’에서 이야기한 고슴도치처럼 조금은 둔중한 상상력이 마음을 편하게 해줄 테다. 이렇듯 일상의 던적스러움을 견딜 때엔 부족한 상상력이 값지다. 각자가 상상력이 부족해지는 까닭은 이렇듯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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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0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의 부재.. 저도 그렇게 되어가나 싶네요. 끙.. 그러면 안되는데 말이지욤 ^^

바밤바 2010-05-08 02:42   좋아요 0 | URL
여행 스케치의 행복한 상상이란 노래가 생각나네요. 암 러빙유~ 암 러빙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