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음반을 샀다. 나날이 핍진해가는 마음이 가여워 스스로에게 보내는 선물이다. 시간을 쫓다보니 나만 뒤쳐진 듯한 불안을 달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기실 밥벌이가 주는 긴장이란 남보다 잘나 보이기 위한 욕망과 저치보다 못난 사람이 돼선 안 되겠단 불안감의 접점에 자리한다. 그러기에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저런 잗다란 생각의 섞갈림 속에 몸을 누인다. 귀를 기울인다.

 첫 번째 음반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이다.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 관련 음반만 일곱 종류 정도 된다. 클래식 애호가라기엔 뭔가 부족한 스스로다. 헌데 같은 곡을 달리 연주한 일곱 가지 음반을 갖고 있다. 그만큼 아끼는 곡이다. 매우 느린 연주라 한다. 그 느림이 번잡한 마음에 안식을 줄 지 모른다. 수많은 음표가 주는 여백 속에서 잠시 시간을 잊으려 한다. 나를 지우려 한다.

 두 번째 음반은 머레이 페라이어의 쇼팽 연주다. 5개 음반을 2개 가격에 살 수 있다.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나온 일련의 음반 중 하나인 듯하다. 꽤나 유명한 에뛰드 연주도 담겨있다. 기실 이런 묶음종류의 음반 구입을 어느새 부터 꺼리고 있으나 조금 다른 쇼팽이 듣고 싶었다. 하나하나 짚어 듣는 맛은 덜할지 모르나 또 다른 곡이 기다리고 있단 기대감이 그 빈 곳을 메워줄 터이다.

 페라이어의 튼실한 감성이 좋다. 그가 연주한 슈베르트에서 느꼈던 청명한 우울을 느끼고 싶다. 물론 쇼팽과 슈베르트의 감성은 다르다. 쇼팽은 슈베르트와는 조금 다른 보랏빛 우울을 선사하지만 시절을 원망하는 마음만은 그 궤를 같이한다. 쇼팽은 심약한 육신과 나약한 제 나라(폴란드)를 원망했다. 슈베르트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과 제 외모를 탓했다. 그들 각자의 르상트망이 담긴 서정적인 피아노 곡. 지나친 감상을 경계하는 페라이어가 제격이라 본다.

 세 번째 음반은 요요마가 연주한 엔리오 모리꼬네의 곡이다. 요요마는 언젠가부터 클래식에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시도했다. 그런 다양함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세상을 널리 아우르려는 포용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 음반도 같은 범주에 둘 수 있다. 서양의 음악을 연주하는 동양인과 동양을 잘 드러내는 서양인의 음악이 함께한다. 게다가 살아있는 거장의 음악을 마음마저 근사한 첼리스트가 연주한다. 영화 음악이 요요마의 손을 빌려 하나의 독자적 음악으로 귓가에 너울댈 테다. 그 울림이 상상만으로도 묵직하다. 

 오늘 음반이 도착한다. 설렘을 갖고 맞이할 테다. 음반과의 조우가 현실도피가 아닌 현실 껴안기가 되어 이내 마음을 다습게 했으면 한다. 현실과 괴리된 음악 듣기만큼 마음을 가난하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나를 세우기 위한 다잡기의 시간이다. 음악을 삶에 맞댄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부대껴 허덕이며 살지 말라고 삶은 가끔씩 쉼표 하나정도 던져주곤 한다. 그러한 쉼표는 쉬이 주어지기 보단 제 노력으로 명징해지기 마련이다. 삶은 그렇게 흐르기 마련이다. 주문한 음반들이 귓가를 간질인다. 그리곤 속삭인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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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4-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페라이어의 쇼팽 모음집은 꽤나 좋아보여요. 뭣보다 쇼팽협주곡이 눈에 띄지 않나 싶네요. ^^

바밤바님 !! 올만에 들려요 ㅋ

바밤바 2010-05-02 13:19   좋아요 0 | URL
오~ 바람결 님 방가방가 ㅋㅋ
쇼팽 협주곡 반주가 조금 뭉뚝한 느낌이라서 상대적으로 피아노가 빛난 연주였던 듯 하네요. ㅎ

잘 지내시죠? 이제 시간이 좀 생길 듯 하니 조만간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