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적으로 글을 쓴 시절이 있었다. 그런 계절엔 글만큼 나를 이해해 주는 게 없었다. 사유(思惟)가 여물어 글로 여울질 때에야 그 날 하루는 시간의 값을 하였다. 나는 글로 나를 세우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시절이 바뀌었다. 출근으로 나를 세우고 퇴근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글을 쓰기엔 사유가 야위었고 마음이 지쳤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한 시절일수록 절실한 글을 썼던 이유를 알 듯하다. 가난한 마음에 사유가 깃들고 한가한 시간에 알차게 여문 탓이리라. 지금의 내겐 생각이 머물 자리가 없다. 가난하다.

 화두는 재테크다. 다들 돈을 벌어 집을 사라고 한다. 집을 모으기 위해선 월급의 절반을 펀드에 넣고 생활비는 최소화하란다. 그래도 집 사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리니 결혼을 일찍 하는 게 좋단다. 업무 차 만난 PB(Private Banker)의 조언이다. 타인의 돈을 굴려 밥벌이를 하는 이의 말이다. 허투루 들을 수 없다.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들을 상담을 무료로 했다.

 오늘 만난 지인의 가족도 집 장만에 부산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타인에게 조금 인색한 그네들이었다. 그리 모은 돈으로 그네는 집을 사려 했다. 그렇게 집을 사면 행복해지려나.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삶을 짊어지고 가는 게 아닐까. 그네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런 씁쓸함을 표명한다손 치면, 그네는 아마도 ‘아직 배가 덜 고픈’ 사회 초년병의 미욱함을 탓할 테다. 그러면서 나 또한 언젠가 그네들처럼 살게 될 거라며 어설픈 고담준론을 버리라 나무랄 테다. 그런 이들에게 라캉은 개뼉따귀 같은 소리를 일삼는 늙은이이고 나는 그런 말을 주워섬기는 못난 놈이다.

 이전에도 그런 언어가 가진 우매함과 폭력성을 비판한 적이 있지만 한국 사회에선 나이가 깡패다. 룰만 공정하다면 ‘산파법’을 써서 그들의 나약한 자존감을 쉬이 깨트릴 수 있다. 그네가 바라마지않는 아파트란 우석훈 식으로 얘기하자면 토건 세력들이 조장한 거짓 욕망이다. 제 삶의 질을 떨어트려가며 아파트 구매에 매달릴수록 그들의 육신은 망가져가고 누군가의 배는 살찐다. 물론 나약한 개인은 이런 구조에서 더 노력하여 ‘가장 괜찮은 노예’가 되는 게 가장 근사한 방안일 수도 있다. 제 자신이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덜 한다면 말이다.  

 



 

 

 

 

 

 

 

 

 

 

 나 또한 집을 살 생각이 있다. 헌데 일상의 자잘한 즐거움과 그대들과의 소소한 기쁨을 깨트리면서까지 그러한 욕망을 좇고 싶지 않다. 몇 주 전만해도 4억에 값하는 집은커녕 4000원 짜리 식단을 고르는데도 우물쭈물 한 나였다. 제 아무리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하나 내가 자리하던 배고픈 공간을 부정하며 더 높은 곳을 우러를 순 없다. 결국 나는 노마드처럼 이곳저곳 떠돌며 스스로를 가꾸어 나갈 것이다. 정주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을 테다. 떠돌이의 불안이 제 아무리 높다한들 나를 해하며 까지 안정을 누리고 싶진 않다.

 이렇듯 내게 철학이란 다 ‘먹고사니즘’의 문제였다. 타인이 평하듯 고담준론이 아닌 나를 알아가고 낮은 자존감을 세워가는 방안이었다. 몇몇 지인은 내가 철학을 언급할 때마다 젠체하는 냥 여기며 불편함을 내비치곤 한다. 헌데 내가 언급하는 철학이란 타인의 생각을 빌려 내게 말하는 스스로를 향한 다독임이다. 집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단 자신감은, 내 공부가 드러냄이 아닌 보살핌을 위했다는 방증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켜줘야 할 인연이 생기고 난 뒤에도 이런 자신감이 굳건할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이렇게 글을 남겨 후에 생길 모자람을 짓누르려한다.

 덧붙이자면, ‘지켜준다’는 말 참 유치하지만 그만큼 절절하다. 나를 지키기도 버거운 세상에 그이를 오롯이 감싸 안는다는 건 그 어떤 욕망보다 아름답다. 타인의 욕망을 좇는 그 미욱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일도 나는 회사를 간다. 날이 풀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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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2-2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고 지켜주어야할 사람이 생기시더라도 자신감을 잃지 않으시기 바래요.

바밤바 2010-02-21 15: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아라크네 그림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