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바흐 :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Decca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장드롱의 연주는 미끈하다. 지나치게 엄숙하지도 않고 너무 많은 고민이 담겨있지도 않다. 춤곡의 형태로 이루어진 곡이기에 바흐가 들어도 흐뭇해할만큼 매력적인 가벼움도 보인다. 카잘스의 연주에 비해 깊이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 음반 나름의 장점 또한 가득하다. 귀에 착 감기는 첼로 선율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며 나쁘지 않은 음질 또한 맘에 든다.  

 흔히들 푸르니에는 귀족스럽고 카잘스는 깊이가 있으며 로스트로포비치는 장중한 느낌을 준다 한다. 이에 반해 쌔끈함 음의 요요마나 부드러운 선율의 장드롱은 폄하당하는 느낌이 든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연주 실력도 진보하는 것이 일반적이거늘 정신의 깊이를 운운하며 요즘 연주자들을 폄하하는 건 클래식을 처음 듣는 신참자에게 높은 진입장벽을 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리스 장드롱은 오래된 첼리스트이긴 하지만 서도. 

 로스트로포비치 또한 60세가 넘어서야 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녹음에 도전하여 이러한 무거움의 신화에 일조를 하였다. 기실 음악이란건 형이상학적이다. 즉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같은 것이기에 곡의 이해를 위해선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감성이나 직관에 의지해야 한다.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를 주지 못한다면 가요와 클래식의 내공 차이는 혹자에겐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깊이를 이야기 하기 전에 청중의 귀에 얼마나 잘 다가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깊이에 대한 부질없는 논쟁만큼 클래식 마니아들의 단결심을 강화시킨 것은 없다고 본다. 클래식이 점점 배부른 사람들의 취미가 되어가는 데엔 음악적 깊이에 대한 과잉 신앙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모든 예술은 음악의 형태를 동경한다'고 김문경씨가 진회숙씨의 책에 추천사를 날리고, 공자 또한 지고지순한 음으로 예(禮)를 세운다 하였 듯 고귀한 음악은 고귀한 것이다. 다만 '구별짓기' 행위가 음악적 깊이 논쟁에 엿보이는 듯 하여 말을 길게 늘여 썼을 따름이다. 

 끝으로 한마디 하자면, 장드롱의 연주는 깊이는 모르겠으나 미끈한 울림으로 많은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정신의 깊이를 운운하기엔 너무나 각박한 시절에 춤곡으로 이루어진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들으며 마음의 짐을 좀 가벼이 하는 건 어떨까. 기실 이 음반 보다 요요마의 음반이 춤곡에 더 가깝다고들 한다. 그래도 장드롱의 음반으로 스텝을 밟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불립문자'인 음악은 들려주는 사람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의 해석이 더욱 중요하기에, 장드롱의 연주로도 흔쾌히 몸을 달아오르게 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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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3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첼로하시는 분께 문의하니 카잘스는 각활을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을 하시더라구요. 때문이지 그의 연주는 종종 거친 느낌이 듭니다. 물론 어설픈 거침이 아닌 쌓이고 쌓여, 마치 먼 곳에서 보았을 때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그런 거침이겠죠. 저는 로스트로포비치, 카잘스의 무게보다는 건강하게 느껴지는 하인리히 쉬프의 연주를 즐겨 듣는데요.

프랑스 연주자들의 느낌은 뭐랄까..활발하고 섬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난김에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네요~^^

바밤바 2009-01-31 06:57   좋아요 0 | URL
가슴에 무언가가 켜켜이 쌓이면 활로 말을 할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카잘스가 쓴 에세이를 보면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카잘스의 첼로 조곡을 너무 신격화 하는 분위기는 사람 좋아보이던 카잘스가 조금은 부담스러워할 부분이라 봐요.
프랑스 연주자들 좋죠. 국가라는 하드웨어가 연주라는 소프트웨어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고 봤을 때 프랑스 연주자들의 개성은 언제나 좋아보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