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히 살다가 고즈넉히 가면 그만인데 왜그리들 힘들게 사시는지..' 참 있어 보이는 말이다. 내가 한 말은 아니고.. 누가 한 말인데 속세를 초월한 듯한 그의 말투에 비위를 상하게 하는 거만함이 느껴진다. 편하기 위해 힘들게 사는 현대인의 역설을 그 사람은 아실지.. 아신다 한들 먹고 살만한 혼자만의 가업이 따로 있기에 그런 말을 내 뱉으시는지.. 아니면 뭔지. 

 아무도 개미의 노동을 부러워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부러워 하는 것은 그 노동 뒤에 보장되는 따스한 겨울과 풍성한 식량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 좀 빌어 먹자고 열렬히 치열한 군상들에게 독야청정 한듯한 식자들의 고담준론은 베짱이의 바이올린 무반주 소나타보다 더 저속할 뿐이다.

 그리고선 모두가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의 일련의 모임들이 하나의 탑을 이루어 그들의 인생을 반추해볼 만큼 충분히 그 높이가 커졌을 때 개인은 생각한다. 과연 그때의 나의 선택은 정말 최선이였나.. 반성과 후회가 이웃하여 나란히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면 삶에 대한 열렬한 애정 보다는 무거워져 가는 어깨의 무게감에 한숨을 내쉬기 마련이다.

 그리고선 돌아갈 수 없는 옛 추억에 몸을 의탁해 하나 씩 현실의 무게를 줄여 나간다. 버리고 또 버리다 보면 시인 이상의 '거울'이라는 시에 나오는 원전 형태의 자아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애절한 마음으로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승무를 춘다. 날아라.. 날아라.. 훨훨~ 얇은사 하이얀 고깔이 고이 접어 나빌리는 그런 애틋하고 아름다운 승무가 아니라 아이를 잃고 장이 뒤틀어 졌던 그 단장이란 고사의 주인공인 원숭이의 표정과 마음으로 승무를 춘다.

 하나씩 벗기고 또 버리고 하다 보면 윤동주님의 싯귀에 나온 부끄럽고도 그리운 나의 자화상이 보인다. 그리곤 죽음보다 강렬한 나르시즘에 빠져 야상곡에 귀를 기울이며 해가 좀 더 늦게 뜨길 기원하며 이불을 몰아쥔다.

 가끔 그런 잡생각에 머리가 아파 잠이 깰 때는 이런 통속적인 글귀에 마음의 비계 덩어리를 실어 이글이글 구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덜 굽혀도 내 살이고 바싹 타도 내 살이기에 햇살 맑은 날 다시 보면 비록 역겨워 지더라도 그런 화식(火食)을 빙자한 인육의 카니발도 썩 괜찮은 행위다. 그리곤 맘의 홧톳불에다 대고 이렇게 얘기하면 오늘의 숙면은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고기는 익혀 먹되 야채와 같이 먹는 습관을 들이며 될 수 있는한 많이 씹어 위에 부담이 되지 않게 하고 탄 부위는 먹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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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tsam 2007-09-0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계붙은 삼겹살.
잘 얻어먹고 간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