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Ludwig Van Beethoven - Piano Sonatas Nos.30,31 & 32 / Rudolf Serkin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작곡, Rudolf Serkin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일본 작가 하루키는 그의 에세이집에서 루돌프 제르킨과 루빈스타인을 비교한 적이 있다. 하루키의 평에 따르면 제르킨은 진지하고 심각한 느낌을 주는 인생을 살았으며 그러한 삶이 그의 피아노 음색에 묻어 난다 하였다. 물론 루빈스타인은 그와 반대되는 대척점의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서술하고 있다. 제르킨의 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앨범은 하루키의 에세이집을 보기 전에 산 것이다.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에서 풍기는 조금은 진지한 아름다움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유명 연주자들의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 녹음을 몇개 사들였었다. 처음 들었던 연주는 폴리니와 박하우스의 연주 였는데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는 연주였다. 연주 시간도 많이 다른 두 앨범은 베토벤 후기 소나타를 조금 더 매력적으로 들리게 하였고 그 후에도 빌헤름 켐프의 연주와 굴다의 32번 연주를 사서 듣곤 하였다. 그리고 이 제르킨의 연주는 거의 마지막에 산것 같다.

 기실 연주자의 개성이 뚜렷하지 않는 한 음악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아름다움은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제르킨의 진지함과 수도자적 삶이 묻어난다는 이 피아노 연주 또한 내겐 오히려 유쾌하게 들렸다. 한음한음 진지하지만 곡 자체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아름다움과 맞물려 그의 피아노 연주는 묵직함 보다는 발랄함으로 느껴졌다. 특히 32번 2악장의 중간의 푸가부분(맞는지 몰겠다)이 시작되는 그 변화점에서의 발랄함은 혼자만의 싸움을 하였던 베토벤이라는 사람의 얼굴에도 귀엽다는 말을 할 수 있을것 같다는 느낌도 주었다. 진지하기에 유쾌한 이 음반은 그래서 꽤나 들을만 하다. 그리고 점점 동곡에 대한 여러 음반을 구매하는 것은 그리 좋은 취미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거늘 연주자의 개성에 신경 쓰고 음색에 신경쓰다 보면 작곡가가 들려주는 본질적 아름다움의 명료함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뭐든지 비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점에서 나또한 그런 비평가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머리 아픈 일이다. 음악을 분석하는 일은 연주자들이나 평론가들이 할 몫.. 나같은 감상자들은 그냥 향유하면 될터이다. 이 음반은 자켓도 예쁘고 연주도 좋으므로 굳이 다른 음반과 비교 청취하지 않아도 될듯하다. 일상을 무난히 영위하는 것도 어려워 지는 세태에 굳이 본인이 향유하는 취미에 까지 엄밀한 노력을 기울이는 건 심력(心力)의 고갈을 가속화 할지 모른다. 음악의 신인 아폴론또한 이 농밀한 태양볕 아래서 음악을 분석해서 듣고 있다보면 제가 거처하는 그 태양에 저주를 퍼부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의 음악은 아폴론의 총애를 충분히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음악은 아는 것 없이도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특히 이 후기 소나타는 모를수록 더 아름다운 것 같다. 후기소나타에 대한 분석을 한 여러 글들을 보고 난 후 이 곡들을 잘 안듣는 내 자신을 보면 정녕 그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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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8-2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음반은 제르킨의 말년 DG녹음과는 많이 다를 듯 하군요...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는 다들 좋아라해서 저 역시 여러종을 가지고 있어요.폴리니,제르킨,리히터,아라우,박하우스...정작 구하고 싶은 건 유라귈라의 음반인데 이건 정말 없더군요.

바밤바 2007-08-30 09:44   좋아요 0 | URL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 정말 좋죠~ 저도 이 리뷰 쓰고 나서 다시 또 들어보고 있는데 시간에 따라 들리는 것이 다르네요~ 백건우 아저씨가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는 연륜이 쌓인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진정한 작품의 본질에 닿을 수 있을거란 말을 93.1에서 했던게 기억 나네요. 감상자에게도 연륜이 있어야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