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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상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꼭 한번 읽어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다가 영적인 발전 단계를 보여 준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연휴에 도전했다. 1300페이지가 넘어 과연 연휴안에 읽을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막상 이틀만에 끝내고 나니 아쉽다. 이틀동안 베르크호프 요양원에서 7년을 보낸 한스 카스토르프와 함께 했다.
그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곳이다. 평지의 삶에서 보이는 역동과 욕망과 성취와 경쟁이 없다. 대신 평화와 질서와 규칙이 있을 뿐이다. 나른한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몸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평화.... 사람들이 휴식과 여가에서 추구하는 진정한 쉼이 있는 곳이다. 세상의 모든 온갖 근심 걱정 다 내려놓고 그저 주어진 틀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쉼과 안식이 계속 이어진다면..... ? 무력함에 잠식 당하겠지.
공기가 희박한 고원지대라고 하지만 왠지 그곳의 공기는 접착력이 있을 듯 하다. 그 곳에 발들인 사람들의 발길을 한없이 붙잡는.... 그건 비현실적인 평화와 안전이 주는 나른함이다.
냉철하게 생각을 해 보자. 의미를 묻지만 않는다면 평지에 이루고 싶은 일도, 잊혀지지 않는 인연도 없다면 편안함과 질서와 규칙이 있는 그 곳에 머무르는 것이 왜 문제인가?
한스는 열려 있었다. 새로운 배움에 대한 갈급이 있었다. 세템브리니와 나프타, 그리고 페퍼코른의 만남에 적극적이었던 건 그냥 어떤 편견도 구체적 지향도 없이 스스로 즐겁게 배웠다. 그러나 그 배움을 써먹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그들 보두 세템브리니와 나프타, 페퍼코른 모두 그저 흔히 말하는 세속의 성공과 영향력 같은 건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그냥 죽어갔다.
삶의 의미를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먹고 사는 걱정에서 해방된 상태에서의 자유로운 공부. 하지만 구체적 목표나 목적은 없다. 나쁘지 않지 않은가? 무엇을 꼭 이루어야 하고, 자신이 공부한 걸 어디다 써 먹어야 하고, 뭔가를 알려 주어야 하고....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한스가 그 위에 머물렀던 건 쇼샤 부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랑이 떠나가고도 그는 남았다. 내려가야 할 이유가 없기에. 그렇다면 전쟁터에 나가 총알받이로 쓰러지는게 그의 목표가 될 수 있었으려나.... 아마 그곳이 전쟁터였기에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한스는 어느새 저승에 더 가까이 가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