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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자유문학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아침 일어나면 내가 맨 처음 맞닥뜨리는 것은 '선택'이다. 지금 눈을 뜰까 아니면 삼십분 쯤 더 잘까, 오일클렌징을 할까 아니면 가루클렌징만 할까, 바로 아침을 먹을까 아점으로 먹을까, 이메일을 먼저 확인할까 홈피에 들어와볼까-
우린 모두 자신이 계획하지 않은 어떤 테두리 안에서 학생이거나 학생이 아니거나, 남성이거나 남성이 아니거나 또는 백수이거나 백수가 아니거나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선택들-또는 피치못할 상황들-이 모이면 성향이 되고, 그런 성향이 관계 속에서 노출되면 성격이 될 것이다. 하루키의 이 헷갈리는 소설은 '사실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이기도 한'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습관에 따라 선택을 하게되고 그 습관이 자신을 이루는 본질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혈액형을 분석해보고, 사주도 보고, 별자리를 뒤지고, MBTI 검사를 받는다. 내 습관이 정말 나한테 주어진 '운명'이 맞는지 누군들 한 번은 의심해보지 않았으랴. 그리하여 구도자들은 그 '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를 찾고 심리학자들은 무의식을 분석하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자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걸거다.
나 역시 죽는 순간까지 '나'가 무엇인지 태양계 변두리에 있는 이 혹성에서 뭘 해야하는지 잘 모른 체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라는 존재를 형성한 습관이 내 '지금 여기'에도 엄연히 드러나 있다는 거. 결국 사는 법을 미처 배우지 못하고 태어났어도 모두들 제가끔 살아가게 돼 있다는 거. 그것이 중력이든 자력이든 결국엔 수억겁의 '지금 여기'들이 결국엔 '나'를 이룬다는 변함없는 사실.
그래서 결말은 대체 어찌 됐다는거야, 스미레가 돌아왔다는 거야 말았다는 거야? 이런 하루키스러운 모호함이 나는 싫단 말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