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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물레 - 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녹색평론>의 창간자인 김종철 선생님이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에콜로지란 무엇인지, 또 진정 생태적인 삶과 인간 본성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등 20년 전에 씌어진 것들부터 7-8년 전에 씌어진 것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로 재미있게 엮으신 글이 가득하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왜 밥그릇에 밥풀을 남기면 안되는지, 왜 더운 날씨에 부채질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지, 바나나나 자몽같은 맛좋은 과일의 실체는 뭔지, 아무리 싼 물건이라도 반드시 아껴써야 하는 이유는 무언지, 동물 고기를 많이 먹으면 왜 안좋은지, 농부가 어째서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직업인지- 지금은 구체적인 근거들이 떠오르지 않아 그런 것들을 배웠다는 것만 뇌리에 남아있지만, 그때의 배움이 지금껏 내게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만큼은 또렷하다.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학교나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다시 들어볼 기회는 없었기 때문에 (그런 초등학교에 다녔던 것은 천재일우의 행운이다!) 아주 더운 여름날, 교복 차림에 손부채질을 죽어라 하던 친구들을 보면서 희미하게 느끼던 안타까움 내지는 연민에 묻혀, 내가 배운 것들도 서서히 내 표면 의식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 졸업 후 우연히 접한 '오래된 미래'라는 책 한 권은 의식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어린 시절 내 배움들을 다시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펌프가 되어주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경쟁과 폭력의 방법으로 살아남는 게 익숙해진 세상에서 그런 소수자의 선택과 불편을 감내하는 것은 어린 나에게 무척 버거운 일이었지만 내가 배운 것은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흙과 자연과 공생과 가난한 삶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시절 이후, 거의 20년만에 멈추었던 그 공부가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김종철 선생님의 책은 이 시점의 나에게 가장 단순하고 정확하고 명쾌한 교과서였다. 어린 시절 막연한 직관으로만 '아, 그렇구나!' 했던 일들이 과학적인 사실들을 근거로 더욱 뚜렷해지면서 실제 내 경험과 관련해 체화되는 모습을 볼 때 에콜로지 훈련을 일찍 시작할수록 우리 삶이 더 풍성해지고 더 평화로워질거란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대부분의 글에서 한결같이 결론으로 내놓고 계신 '자발적이고 선택적인 가난'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한다. 이것은 단지 갖고있는 물질을 모두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더 많은 돈, 더 좋은 차, 더 큰 집, 남들보다 잘나가는 삶에 대한 동경... 이런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당당하게 NO! 할 수 있는 삶이란 뜻에 더 가까울 것이다.
관심사가 그래서인지 주변에 점점 귀농하는 사람들이나 생명운동 하는 지인들이 늘어난다. 아직은 도심의 편리와 이기에서 쉽사리 사슬 끊고 나아갈 깜냥이 안돼 그저 부럽고 동경스런 삶이지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흙과 나무, 강이나 바다라는 게 자명한 이상 언젠간 나도 점점 커져나가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길 때가 오지 않을까. 물론 그 전에 '인간다운 삶'에 대한 내 철학이 제대로 성숙해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