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올린 후에 새롭게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본다. 줄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쓴다. 리뷰에서도 친절하게 줄거리를 적는 사람은 아니지만.

 

  6개월 후에 윌이 무얼 하려는지 알게 된 루이자는 첫 나들이로 경마장을 택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전혀 달리 참혹한 실패를 가져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윌은 말한다.

 

"귀찮아도 나한테 물어봤더라면 말이요, 클라크. 딱 한 번만 이 소위 즐거운 소풍 계획에 대해 나와 의논을 했더라면, 말을 해줬을 거요. 나는 말을 싫어하고, 경마도 싫어한다고. 옛날부터 싫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한번 물어보지도 않았지. 그쪽이 나한테 시키고 싶은 일을 혼자 정하고 강행했잖소.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내 대신 결정을 해줬지."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그를 살게 해야 한다'는 강박과 초조함 때문에, 루이자는 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앞의 윌의 얘기 후에도 루이자는 그와 의논하고 묻기보다는 여전히 다 알아서 준비하고 짠~ 하고 보여준다. 하지만 윌이 정말로 원한 건 그게 아닐 것이다. 좋아하는 그녀가 열심히 준비했기에 받아들여준 것일 뿐이다. 

 

루이자가 6개월 후의 윌의 계획을 알게 된 걸 밝히고, 그가 어떻게 그런 결정까지 가게 됐는지 솔직하게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여행에서도 그런 대화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그런 얘기는 여행의 마지막 날, 윌이 계획을 실행하기로 한 불과 며칠 전에야 나누게 된다. 계획을 고수할 것이고,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 자리에 같이 있어달라는윌의 부탁에 루이자는 격하게 화를 낸다. 나 같아도 그 순간엔 기가 막히고 화를 낼 것 같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사랑만으로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자도, 그 당시 그녀를 응원한 나도 너무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건 아닐까? 현실의 윌은 외면한 채로다가.

 

성의 미로에서 윌이 루이자의 속마음을 듣고자, 그가 고백한 얘기가 있다.

 

-"이러다가 결국 어떻게 될까 나는 정말로, 정말로 겁이 나고는 해요."

-"사람들은 대체로 나처럼 사는 게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혼자 숨을 쉴 수도 없는 지경이 될 수도 있고, 말도 못 하게 될지도 몰라요. 순환계에 문제가 생기면, 팔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뜻이죠. 무한정 입원하게 될 수도 있어요. 지금도 사실 산다고 하기엔 형편없는 삶이지만, 클라크.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어떤 날 밤에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진짜로 숨이 안 쉬어지기도 해요."

-"그리고 이런 거 알아요? 아무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 아무도 두렵다든가, 아프다든가, 무슨 멍청하고 뜬금없는 감염으로 죽게 될까봐 무섭다는 애기는 원치 않아요. 다시는 섹스를 할 수 없고 자기 손으로 만든 요리를 다시는 먹을 수 없고 절대 자기 자식을 안아볼 수 없게 되면 기분이 어떨지, 그런 걸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 휠체어에 이렇게 앉아 있다보면 가끔 죽도록 답답해져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고 싶어진다는 걸,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다 밝은 면만 보고 싶어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야 하는 거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재앙에도 밝은 면이라는 게 있다는 믿음이 꼭 필요한 거죠."

 

이 얘기를 들은 후에 루이자가 자기 얘기를 하자 윌은 그녀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았다. 그 순간에 루이자는 윌의 고통과 불안을 봐줄 여유가 없었겠지만, 나중에라도 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면 어땠을까. 윌이 불안하고 두렵고 울부짖고 싶은 마음을들 더 토해낼 수 있게 해주고 나서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줬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궁극적인 결정을 막지 못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제 마음을 알아주고 들어준 사람이 있었다는 위안은 컸을 것이다. 내가 루이자라면, 그런 후회가 남을 것 같다. 여행 후 화가 나 그를 보러 가지 않은 그 짧은 며칠도 나중에 생각하면 얼마나 아깝고 후회가 되었겠는가.

 

 내가 지나치게 극중 상황에 깊이 몰입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몰입 때문에 책을 덮고 나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채 아파하고 있다.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읽고 나서 이래보기도 참 오랜만인 듯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지 감성이 메마르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었다. 책을 봐도, 영화를 봐도 감동이 잘 오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이런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아직은 감성이 살아있었구나,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이 감정을 다시 또 겪을지 어떨지 궁금하다. 여하튼, 윌과 루이자, 내 가슴에 계속 살고 있는 아픈 연인들, 조금만 더 품고 있다가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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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 교수이자 시인인 저자가 독일어 문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서 그 소회를 적은 책이다.

시, 더욱이 외국 시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왠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여전히 이 책의 시인들도 낯설고 발췌된 시들도 낯설다.
릴케, 괴테, 카프카...낯익은 그들의 글은 아주 오래전에 소설 한 권씩 읽은 정도?
내용은 머릿속에 거의 없다.

이 책을 초반에 읽을 때는 그랬다.
독문학을 전공하고 평생 그 작가들을 사랑해온 저자가 이 여행에서 받는 감격이 이해는 됐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와닿지 않았다.
나는 그 작가들을 사랑하지도 않고 심지어 알지도 못하므로.

계속 읽어나가다 보니, 작가들의 살아온 삶을 유추해보면서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문학을 하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의 고뇌와 현실적 아픔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시를 쓰고 싶은데 억눌러야 했던 전영애씨의 욕구에 대한 생각도 함께 해본다.
그게, 그녀가 뭐에 이끌리듯 시간을 쪼개가며 이런 여행을 하는 거랑 연관이 되는 것 같다.
살아있는 작가 라이너 쿤체와의 만남으로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려하는 조짐에 저자에게 응원을 보낸다.

책 속에서 '간절함'이란 단어를 보았다.
시인들의 간절함, 저자의 간절함.
그리고 내 안에 들어있는 문학적 간절함.
거기에 더 다가서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펑 하고 터지는 건 아니지만 살살 바람이 들어가며 발동 걸리기 직전의 기분이랄까.
발동 걸리게 할 계기를 잘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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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1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 시, 번역된 것으로 읽으면 원전과 많이 차이가 납니다. 외국어 잘하는 사람들이 시심이 뛰어난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그 반대지요. 번역시는 될 수 있으면 원어로 된 시를 같이 두고 음미하는 것이 시 감상의 좋은 방법입니다. *^
 

1월 책모임에서 토론할 책으로 김경집의 <생각의 융합>을 읽고 있다.

초반엔 어렵게 느껴졌지만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의 역사적 사건들과 인문학적 인물들이 만난다.

따로따로 존재할 것만 같았던 세계사의 사건들이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그것은 현재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지금 나의 모습을 성찰하게 한다.

 

1장. 콜럼버스, 이순신을 만나다 ; 시공간을 초월한 역사와 역사

2장. 코페르니쿠스, 백남준을 만나다 ; 과학과 예술

3장, 에밀 졸라, 김지하와 만나다 ; 정치와 인권

까지 읽었다.

 

분량이 있는 책이고, 재미있지만 술술 읽어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와 세계사, 시사에 워낙 무지한지라 모르는 용어, 사건, 인물들이 자주 나온다.

검색하고 책에 적으면서 읽으니 공부가 된다.

정말 무식하고 무관심했다는 반성을 하고, 새로 알게 된 진실에 놀라며 읽고 있다.


3장에는 드레퓌스 사건이 나온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생각난다.

그 책을 떠올리면 왜 그 사건만 생각이 나는 건지? 다시 읽어보고 싶다.

연관되는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게 하는 <생각의 융합>이다.


호메로스와 제임스 조이스,

히딩크와 렘브란트,

나이팅게일과 코코 샤넬과 푸틴,

두보와 정약용과 김수영

 

앞으로 이들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두 챕터에 걸쳐 인문학에 대한 단상이 이어진다.

이제 읽어나갈 이 뒷부분도 기대된다.

 

 

다 읽고 나서 흥미로운 책이었다고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한다.

또 다른 독서와 공부에 대한 자극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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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틈틈히 조지 오웰의 《1984》를 e북으로 읽었습니다. 고통스럽고 끔찍했습니다. 글로는 제대로 정리를 못할 것 같습니다. 배경지식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김민영ᆞ황선애의 《서평 글쓰기 특강》을 읽으니 《1984》를 종이책으로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후에 토론이나 글쓰기를 해야 읽은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글쓰기는 잘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하니까요.

한번 읽은 책을 바로 다시 읽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책 읽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읽어야 될 책은 수두룩하다는 강박 때문입니다. 막상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은 적으면서 말이지요.

이번에 이 책을 제대로 정리해 놓지 않으면, 무수한 다른 책들처럼 '내가 이 책을 한번 읽어봤다'는 자랑 말고는 기억에 남는 게 없을 게 뻔합니다. 훗날 다시 읽어볼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고요.

종이책으로 읽어 보면 같은 책을 e북으로 볼 때와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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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단다. 배우자를 고를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다시 재현하려는 무의식이 작동한다고 한다. 뭔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으니까 그 일을 다시 겪으려 하는 걸 게다. 해결이 안되면 재연 또 재연...이겠지.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재연을 하려고 그를 만났을까? 또한 그는?

이미 우리는 선택을 해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그 이유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을.

 

나의 아빠 같은 사람을 고른 것일까? 말이 적고 마르고 책임감은 있을 것 같은 남자. 그런 것 같다. 나는 엄마를 닮았고.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엄마 같은 사람을 고른 거겠지? 그는 아버지를 닮았고.

우리는 이미 선택을 했고,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나는 엄마랑 닮은 그 부분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말로 사람을 뒤트는 것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남편에게는 조심하려고 하는데 아이에게는 너무 쉽게 그 각오가 깨져버린다. 폭포수처럼 분노의 언어를 퍼붓는다.

 

마음만 먹는다고 될 일은 아니다. 몇 년간 저지르고 후회하고의 반성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걸 보면. 이 지긋지긋한 되물림을 어떻게 하면 싹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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