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레TV
에서 무료 영화를 훑어보다가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 전에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영화 줄거리가 전에 없이 끌렸다.
아무래도 요즘 내가 좀 극한 상황에 처해서 그러할 것이다.
현빈, 이보영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 그들은 여느 드라마에서 보았던 꽃남 꽃녀의 모습이 아니다.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고, 형은 도박에 빠져 사채를 쓰다 자살을 한다. 이 빚은 고스란히 만수에게 돌아온다.
어머니는 실종되고 사채업자들이 찾아와서 협박을 한다. 결국 과대망상증에 걸려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된다.
정신병동에 있는 현재와 그 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암울한 과거를 영화는 교차로 보여준다.
치매 어머니가 각종 고지서들을 돈이라 생각했던 것처럼, 만수는 종이에 금액을 적고 자기가 사인만 하면 전세계 어디서나
돈을 쓸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정신병동 수간호사 수경은 주치의의 연인이었다 버림 받고, 아버지는 직장암 말기에 위태로운 상황이다.
병원비로 이미 빚을 지고 있고 월급에까지 차압이 들어온다.
만수는 그런 수경에게 천만원짜리 종이를 건넨다.
아버지 간호와 돈 걱정에 얼빠진 채 감정없이 병원일을 해오던 수경에게 만수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정신병은 착하고 여린 사람들이 걸리는 것 같다. 남을 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를 해치는 것이다.
그것이 자해나 자살이 아니더라고, 밖으로 표출시켜야 했을 분노와 원망을 자기에게로 돌리다보니 정신이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영화 <화차>도 생각나고, 처참하고 암울한 마음으로 영화를 지켜봤다.
만수가 이 정신병동을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가 된다.
(실제로 정신이 돌아왔는데도 나가고 싶지 않아서 안 돌아온 척 한건지 확실하진 않지만, 난 그렇게 보고 있다.)
여기는 친구도 있고 맘편하게 햇볕과 바람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가면 치매어머니와 사채빚이 기다리고 있다.
그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나 같아도 외면하고 또 외면하고 싶을 것 같다.
그래도 결국 그는 퇴원을 한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목숨을 이어가던 수경의 아버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미 병원생활이 의미가 없는 말기암인데도 가족의 미련으로 병원생활을 고집하는 것에 나는 회의를 갖고 있다.
항암치료가 과연 암에 걸린 사람을 더 나은 방향으로 치료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경은 아마 어머니도 안 계신 것 같고 형제도 없는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세상 천지에 고아가 될 것이기에 어떻게든 아버지를 보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이해는 되지만
결국 죽음은 오고야 마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병원을 그만두고 나가는 수경의 얼굴이 그제서야 조금 편안해 보인다.
가난한 자들에게는 아픈 게 더 아프게 다가온다. 남의 일이 아니니까 이 영화가 더 아프다.
현빈과 이보영. 예쁘고 잘생기게 나오고 싶은 마음 버리고, 힘 빼고, 배역에 충실하게 빠져서 아팠던 것 같다.
이 암울함을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기에, 평도 별로고 흥행도 안됐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외면하지 않아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슬플 때 슬픈 음악이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처럼, 암울한 상황에서 암울한 영화가 이상하게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