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7
오스카 와일드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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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소설인데 다 읽고 나니 뮤지컬을 한다고 한다. 매혹적인 소재이고 글인 만큼뮤지컬도 보고 싶어진다. 도대체 누가 그 아름(답다는)다운 도리언을 연기할까. 나는 김준수/박은태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그는 과연 도리언의 악마적 아름다움을 잘 표현할까 궁금하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서문에는 그의 예술관이 잘 나타나 있다. 유미주의라니. 아름다움만을 위한 아름다움이라니. 만약 정말 그렇기만 하다면 나같은 이는 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지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다. 내 딸의 표현을 빌자면 장황하기 그지없는 18세기 영국 상류층의 유미적 취향에 대한 묘사나 그들의 유희들이 불편하거나 역겨울 수도 있다. 이 소설을 근거로 유추해보자면 유럽의 예술은 귀족이나 상류층들이 하도 할 일이 없어서 추구하고 추구하며 발달해온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다행히도 역사 속에서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족적을 남긴 이들은 대개가 가난했기에 그런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이다(그 가난한 예술가들이 유럽 상류층들의 물적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는 측면은 물론 간과하지 말아야 하지만).

 

도리언 그레이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남아도는 시간과 돈을 유미적 탐닉에 쏟는다. 그가 한때 유럽에 내로라하는 자수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는 대목에서 나는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이건 작가가 상류층 한량들의 예술적이랍시고 두는관심사에 대한 비판인 건지, 아니면 본인이 표방했던 대로 정말 당시 귀족들은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본래 유미주의란 게 의미가 없어도 아름답기만 하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믿을 만한 것 아닌가?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는 그런 가치관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부분이 있을 것이다. 진정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삶이 건강하지 않았음을 자기 삶으로 입증했으며, 바로 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그런 삶의 한계를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도리언의 멘토인 헨리 경의 말 자기 인생의 구경꾼이 되는 것이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지요.” 대로 도덕과 윤리가 우리를 옭죄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결코 아름다울 수만은 없음도 보여주지 않았는가?

 

오스카 와일드가 했던 말, “바질 홀워드는 제가 생각하는 저의 모습이고 헨리 경은 세상이 바라보는 저의 모습이며 도리언은 제가 되고 싶어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은 이 책을 쓰기 전에 한 말일까, 나중에 한 말일까? 무슨 불길한 예언처럼 도리언만큼 비참하게는 아니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삶도 망가지며 끝났다. 어떤 잉에게는 그 비극적 결말조차 일종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스카 와일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질질 끌려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고 슬픈 길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간 것일까?

삶의 보수성을 지닌 나같은 사람은 그나마 이 책의 가치를 세상에 덮어버릴 수 있는 악은 없다라는 교훈을 주는 것으로, 모든 부와 명예와 인기와 자족을 누리던 인간류에게 당신 영혼의 뒷면을 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책을 덮는다. 안타까운 것은 현실의 도리언들은 결코 그런 서늘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평생 부와 명예를 누리다가 죽거나,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여도 끝까지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발뺌을 한다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들에게도 비밀의 방에 그들 영혼을 반영하는 초상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 ‘천진악의 대명사인 박모 씨를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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