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당한 천사에게
김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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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는 책의 서두에서 단호하게 잡문은 없다.” 라고 선언하고 이 글들을 시작한다. 어떤 소설가는 평생 신문 등에 잡문을 쓰지 않은 것을 자랑했다고 하지만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당히 자기 어깨를 내미는 문인들은 그런 순결주의를 오히려 경계한다. 문학은 세상을 바꾸려 노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필요하다면 잡문도 써야 하고 희망버스도 타야 한다. 시를 쓰던 가슴으로 높은 곳에 올라간 노동자들의 손도 잡아야 한다. 그걸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잡문이라고? 잡문이라 하면 오히려 세상의 아픔에 눈 돌리고 등 돌린 자들이 쓰는 글, 아니 곡학아세하고 폭군에 아부하여 글로 감투를 벌어보려 애쓰는 자들이 쓰는 글이 잡문이겠지. 김선우가 인용하는 조지 오웰의 말은 참 당당하지 않은가.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이다.

 

무슨 작품을 읽으면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앞으로 김선우가 쓰는 책은 모두 사서 읽겠다고 결심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시가 아름다워서 좋아했을 터이고 아마도 그토록 아름다운 시와 소설을 쓰는 이가 용감한 글들을 망설이지 않고 쓰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고 여겨져서 그랬을 터이다. <부상당한 천사에게>에 실린 글들은 아마도 신문 등에 올린 글들은 모은 듯, 나로서는 익숙한 견해들이이었다. 그는 여전하고 건재하고, 더 당당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앞으로 나올 그의 시나 소설들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문학의 순수성 운운하며 마치 그 길이 아닌 길로 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으름장을 놓는 이들에게 김선우는 하나의 살아있는 증거가 될 것이다. 문학의 진정한 순수성이 무엇인지를 입증하는.

 

김선우는 내게 대신 독서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 문인들은 아마도 글을 읽다가 필요한 문구를 만나면 따로 메모를 해두는 듯하다(나 역시 그런 메모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잘 찾지 못하고, 남의 말을 인용해 글을 쓰거나 말하는 것을 즐겨하지는 않는다). 김선우의 글을 읽으면서 독서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복습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은 내 머리 속의 정리되지 않은 책장을 잘 찾아가게 도와주기도 하고 때로는 새 책으로 책장을 채우게도 하는 좋은 책 친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했단다.“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빵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 부르지만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얼마 전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일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연민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연민이 동정에 그쳐 버리면 자선을 베푸는 이상인 아니라는 것. 힘들게 사는 이들을 돕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와 내가 같은 인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동전을 던져주는 구휼과 자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만약 뛰어난 의지와 이상을 구조화할 지적인 능력이 있는 이라면 무슨 주의자가 되어서라도 사람들의 맨 앞에 서서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목소리가 크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감성을 지닌 이라면 함께 하자고 호소하고 격동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나처럼 어떤 능력을 지니지 못한 이들도 연대의 이름으로 자기가 힘을 보태 세상을 바꿀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동전을 모아 나누어 먹는 일도 꼭 병행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엽말단만 바꾸는 일로 자기 위안을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층간 소음 꽃으로 해결하기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심해 꽃 한 다발을 사들고 올라가 보니 노부부가 살고 있더란다. 그리고 그 후 소음은 줄어들었고, 김선우는 그것이 꽃의 힘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평범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의 인정’, 그리고 서로에게 다가가기라고.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나는 사립 남자중학교만 30년 가까운 세월 근무해오고 있다. 드세고 단순한 남중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작은 아이도 많고 표현이 부족한 아이도 많다. 거친 언사와 드센 눈빛, 말하자면 싸가지 없고 무례한 아이들도 많이 만난다. 여교사를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성적(性的)으로 모멸하려 드는 어린 아이들도 꽤 있다. 물론 어려운 가정에서 힘들게 자라 자기 안의 좋은 성품과 잠재력을 자기 스스로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불쌍한 아이들도 많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만날 때 종종 책을 선물한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는 사진집을 건네기도 하고 지력이 높지만 세상을 거칠게 바라보는 아이들에게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책들도 건넨다. <어린왕자><연어>, 김용택이나 신현림이 선별한 시집도,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도 늘 내 책상에 꽂혀 있다.

 

조금 얇게 말하면,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잘해주려 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내가 저렇게 진지하게 만났던 학생 중에서 계속 함부로 행동했던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 물론 책 선물은 꼭 말썽꾸러기들에게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감성이 남달랐던 아이들, 고민의 깊이가 성숙했던 많은 제자들과도 함께 했다. 혹여 이 글을 읽는 나의 제자 중에 오해하는 이가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변명처럼 덧붙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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