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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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읽었는데 누군가 연필로 밑줄을 쳐놓은 흔적이 있는 게 아닌가. 교사가 빌렸을 텐데 밑줄을 치다니? 하면서도 그 부분을 읽어 보았다. 기억하고 싶은 급한 마음이었을 터일 텐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제가 저희 반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했던 것은 너희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선생님이 자유롭게 계속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교장선생님이 특별하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에서 나무랄 데 없이 잘 해야 한다.”

이 일로 제가 깨닫게 된 것은 어떤 교사가 학교에서 정한 교육적 관례에 이의를 제기하려면 우선 학교 관리진이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관행에 잘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너선 코졸을 좋아하는 면 중 하나는 그가 매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지혜로운 교사이고 지도자라는 점이다. 위의 구절도 그런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좀 씁쓸했다. 이 책을 빌려갔던 어떤 교사 - 나의 동료교사 혹은 후배교사일 그...-는 코졸의 실천성을 읽기보다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에만 주목한 것일까?

 

우리나라에도 실천성을 담보한 좋은 교사 출신 운동가가 꽤 있다. 저술이나 강의로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우리 교사운동의 한계를 보여주지만 앞으로는 아마도 그런 방향으로도 많은 분들이 활약을 하시리라. 아직 우리에게는 '정치투쟁'이 교육 문제 해결에 더 유효했기에 많은 교사운동가들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조너선 코졸은 우리에게 별로 없는, 교사들이 학교 현장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활동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그는 거시적인 실천에만 앞장서는 사람이 아니다. '천상 교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예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상적인 교사의 조건에 학교와 사회를 이상적인 곳으로 바꾸려는 변혁의 의지와 능력, 학교 현장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려는 의지와 능력, 철학 있는 수업을 구성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과 깊이, 수업을 잘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과 지적 수준 등도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변화 발전의 가능성을 믿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행보를 기다리며 지켜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 모두를 갖춘 사람으로 보인다. 교사가 이 모두를 가질 수 없다면 적어도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이라도 가져야 한다. 혹은 거꾸로, 저 모두를 가지고 있다 해도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는 교사를 하지 말하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공립학교 붕괴는 남의 일이었다. 적어도 2008년 이전에는.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일제고사를 시행하고 자율형 사립학교를 세우면서 많은 이들은 우리도 미국꼴이 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걱정은 5,6년만에 현실이 되고 있다. 조너선 코졸이 지적하는 학업성취도를 중시하는 미국 공립학교의 문제, 사립학교로 특화되어 상대적으로 슬럼화되는 공립학교의 문제, 학교가 거대해지면서 아이들은 쓰레기 취급받는 문제들이 우리나라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아래 글에 나타난 '운동장을 없애고 휴식시간을 없앤 이야기는 학업성취도 평가가 시행된 초기, 쉬는 시간 10분을 5분으로 줄이겠다고 난리를 폈던 우리나라의 어떤 초등학교 이야기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수많은 도심의 공립학교는 성취도 평가를 통해 성취도가 낮은 학교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다. 지원금 삭감을 포함한 제재를 받게 될 것이므로 사설 시험 준비기관에 돈을 내고 학생들에게 시험 준비를 시켜 줄 것을 의뢰한다. 이렇게 시험 준비에 더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되면서 교수활동을 위해 쓸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든다.

시험을 잘 보는 기술을 연습시키느라 정작 교과내용 수업에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심지어 시험준비 시간을 위해 아이들 휴식 시간을 빼앗기도 한다(애틀란타에서는 계획적으로 아이들이 놀 시간을 줄이기 위해 운동장을 만들지 않는다. 시키고의 성적 좋은 부촌의 몇몇 학교를 빼고는 휴식시간을 없애버렸다).

 

또 다음은 코졸이 지적한 미국 바우처 제도의 맹점인데, 한때 '방과후학교 활성화를 위한 각종 지원금과 제도가 학교 현장을 휩쓸었을 때가 떠올라 씁쓸하게 읽힌다. 바우처 제도를 위해 내려온 돈을 써야 해서 학급마다 집은 어려운데 방과후학교를 신청하지 않은 아이들을 '색출'하고 방화후수업을 신청하라고 설득하느라 담임들이 애를 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단순하게 그래도 집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료로 공부할 기회를 주려는 제도이니 좋은 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본질적으로는 결국 자신들의 성과를 위해 예산을 쓰는 일에 불과하고, 가난한 아이들이 정당히 받아야 할 세금의 혜택을 '성취도평가' 혹은 특정학교 살리기에 쓴 잘못된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우처 제도의 맹점

표준화 시험(성취도 평가)로 인해 교육계가 시장 경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우처 제도.

이들은 공립학교의 실패와 불평등한 분리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바우처 제도 등을 도입하여 마치 가난한 집 아이도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난한 집 부모 역시 극소수이다. 가난한 아이들 부모 중에서도 바우처 제도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아니다.

헤드스타트(취학 전 빈곤층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조차 극소수이다.

학교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빈곤층 학부모는 극히 일부분이고 정부나 교육당국의 선전효과만 높다, 결국 학교 당국의 선택권만 넓어질 뿐(우리의 자사고에도 사회적배려자 전형이 있지만 선전하고 난 후 그 아이들은 대개 부적응하고 전출가는 경우가 많다).

바우처 옹호자들의 주장(학교 민영화를 지지하는 세력) - 사립학교나 혼합형 학교의 성취도가 더 높다는 주장을 한다. 바우처 자금은 학업성취도에만 맞춰진 측면이 있다,

 

조너선 코졸은 또한 '미니학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유치원~ 8학년 과정의 학교에서는 고학년이 보조교사 역할을 하면서 자기성장이 가능한 학교이다. 아이들이 '선배가 되면서 저학년을 위한 보조교사 역할을 한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나는 수업 중에 협동학습을 통해 조금 먼저 이해한 아이들이 친구들을 가르쳐 주는 방식을 활용하는데 코졸의 발상은 그것을 학교 전체로 확대시키는 양상이다. 친구나 후배를 '가르쳐주는' 방식은 도움을 받는 아이에게도 좋지만 가르치는 아이도 성장시킨다. 다만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학교나 교실의 인원이 적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코졸은 미국 공립학교가 대형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내가 정작 좋아하는 부분은 "교육과정과 규칙 규준 목록과 외부에서 정한 교육방법 등이 아무리 훌륭하고 현명해 보인다 해도 교사와 학생 사이의 공감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와 같은 구절, 그리고 다음과 같은 수업 장면이다. 나 역시 온갖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머리가 복잡하지만, 아이들과 어떻게 수업을 하고 학급운영을 할까 구상할 때 가장 행복하고, 그것이 현장에서 따뜻하게 구현되는 과정의 행복감 때문에 학교를 견뎌올 수 있었던 사람이다.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 중 하나는 다음 수업장면이다.

 

코졸이 랭스턴 휴즈의 시집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대부분이 흑인 아이들이었던 교실에서는 어, 지은이가 흑인이네!" 하는 술렁임이 일었다. 휴즈의 시 중 <지연된 꿈A Dream Deferred>을 읽어주자 한 아이가 다가와 어머니께 보여드리게 그 책을 빌려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고 다음 날 그 시을 외웠다며 반 아이들에게 읊어주었다....

아이들에게 흑인이 쓴 책을 보여주고 싶었던 교사의 열망, 아이들에게 누더기가 아닌 새 책을 읽게 해 주고 싶던 열망을 절절하게 말하지만 젊은 시절의 조너선 코졸은 이 일로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교육과정을 위반했다고...). 교육과정에 없는 프루스트의 시를 읽어주었을 때는 칭찬했던 교장이 랭스턴의 시를 읽어주었다고. 어이없는 미국 교육현장이라고? 우리에게는 통일을 가르쳤다고 탄압받거나 학교에서 쫓겨났던 교사들은 없었는가? 꽉 막힌 이념 혹은 편견의 벽을 부수는 일은 미국 교사에게나 한국 교사에게나 고난의 길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문제에 대한 큰 희생을 감내한 싸움들이 쌓이고 쌓여 그나마 부자들을 위한 교육당국의 전횡을 조금씩이나마 막아내는 것이다. 남의 나라 교육 이야기지만, 그리고 바로 지금, 최근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 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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