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을유세계사상고전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읽어야지 하는 의무감은 있었고 사실 일부러 서점에서 번역을 비교하며 을유문화사 것이 가장 잘 되었다고 생각도 했더랬다. 하지만 솔직히 마구마구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솔직히 선입견도 있었다. 백성을 위한 책도 민주주의를 위한 책도 공화정의 대의를 논한 책도 아니요, 군주의 도(그것도 동양학에서 말하는 덕치나 하늘의 뜻을 받는 정치론도 아닌)를 논한 책임을 알고 읽고 싶을 리가 없었다. 다만 도대체 무어라 말하고 있기에 히틀러가 가슴에 새기며 읽었다는 것일까, 이것이 가비야운 처세론 책일리는 없는데 읽지 않고는 발견할 수도 비판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마침, 더 이상은 읽고 싶은 책이 없던 어느 공백기에 드디어 이 책을 마지못해 읽기 시작했다. 제일 앞의, 번역자가 쓴 글에서 마키아벨리를 애국자로 칭송하면서, 현대인도 꼭 읽어봐야 할 명저이기에 번역의 의무를 느꼈다는 부분을 읽고 좀 떨떠름했다. 통치를 위해 필요하다면 악행도 서슴지 말아야 함을 역설하는 마키아벨리의 애국주의는 내가 아는 민주주의적 애국과 거리가 멀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행하게 되는 오류가 아닌 의도한 악행 혹은 잔혹한 통치를 정당화시키는 그의 애국은 결국 왕정주의, 군국주의요, 현실에 부활한다면 파쇼와 가장 닮은 얼굴을 하고 있을 터, 그런 그를 칭송하며 이 책을 읽어야 하다니. 

그런데 읽으면서 점점 은근히 재미있어진다. 내용은 내가 이미 들어 알고 있는 바와 다르지 않다. 재미있었던 점은 첫째, 위선으로 선의 정치를 말하고 뒤로 악정을 펴는 군주 혹은 그의 가신들과 다르게 비난받을지도 모를 통치의 스킬들을 당당하게 말하는 마키아벨리의 '정직함'이다. 둘째는 이탈리아의 여러 군주들과 유럽 여러 나라의 상황을 비유하며 설명하는 이야기 속에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의 모습도 담겨있는 것이었다. 체사레 보르자가 자신의 권력을 잡는데 그 잔혹함으로 일조한 레미오 장군을 참혹하게 처단해 버리는 장면은 드라마틱하기도 하지만 내가 겪은 현실 속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을 본 적이 있어 무릎을 쳤다. 크고 작은 조직 속에서 자신의 가장 가까운 심복을(그가 자기의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느낄 때, 혹은 그가 조직원(백성)들의 원성을 집약적으로 받는다고 생각할 때) 가치없이 내쳐버리는 것을 무수히 목격했다.  

나는 좀 심술궂게, 내 가까이 볼 수 있는 몇몇 리더들을 마키아벨리가 예로 든 군주들이나 지도자들에 대입시켜가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설픈 선정을 베푸는 듯하면서 혹은 주변의 뛰어난 2인자를 믿어버리면서 자기 권력을 찬탈당한 군주들의 이야기는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면도 있다. 무엇보다도 백성의 마음을 잃은 권력자의 최후는 비참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할 때에는 비록 그것이 그러니까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군주가 되어라가 아니라, 당신이 권력을 지키려면 백성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일지라도 마키아벨리가 얼마나 영민한 사람인지를 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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