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홀릭 - 예술가들의 광기 어린 예술혼, 정신과 전문의 정유석의 심리학 에세이
정유석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어떨 때 그 사람 '속'이 궁금해질까. 지긋지긋하게 속 썩이는 아들놈, 나를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친구, 너무너무 사랑하게 된 그 사람, 나에게 늘 친절하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한 나의 동료.... 

어찌 되었건 그 속이 궁금한 사람들은 내 삶에 매우 중요하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오랜 기간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었다. 더 이상 그게 궁금해지지 않게 된 것은 나이를 먹으며 내가 성숙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내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됐기 때문일까.  

김기덕이나 홍상수 영화를 보면 그 감독이 보인다. 나는 '작가주의 영화'라는 말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뜻인가 보다 하고 짐작을 해 본다. 대개의 소설가나 화가나 영화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온전히 날것으로 자기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가려진 작가를 더듬어 읽는 것이 작품을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기덕은 어떠한가. 미안한 이야기지만 가끔 김기덕이 영화를 찍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사람, 살인자가 되었거나 정신병원에 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그의 영화는 아픈 것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다. 모든 소설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지는 않겠지만 많은 작가들이 자기 안의 아픔과 넘쳐나는 이야기들을 주체하지 못해 작품을 해낸다고 생각한다. 김기덕은 세상에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보여주지 않으면 안될 만큼 아픈 '내'가 많은 사람 같다. 그 상처를 영화로 만들어서, 자기가 자기를 화면으로 들여다 보면서 치유를 하고 있지 않을까. 마치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 스스로가 감추고 싶을 만큼 많이 고통스러운 상처를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하고 울게 하고 풀게 하는 것이 그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인 것처럼. 김기덕은 상처가 많지만 자기 스스로 그것을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김기덕에게 영혼을 치유하는 약은 영화이다. 

예술가들은 그런 면에서 하늘의 축복을 받은 이들임에 틀림없다. 살면서 받은 상처를 모든 이가 말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을 쓸 수 있고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그런 자기치유의 무당과 같은 능력을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개는 자기 상처를 스스로 핥기 위해 글을 썼고 그런 과정에서 덩달아 많은 사람들의 상처가 함께 치유가 되었다.  

물론 상처가 치유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예술 활동 하는 이들이 모두 자기 작품으로써 구원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문학은, 예술은 그들의 질곡이 되어,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삶을 미쳐가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재능으로 저주이기도 했으리라. 

글쓰기의 치유능력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삶의 고통에서 문학 속으로 유체이탈에 성공한 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예세닌의 시에서 톨스토이의 필력에서 고독하나 맑게 씻기는 영혼들을 본다. 저자가 조금만 더 따뜻하고 문학적인 필체로 아팠던 예술인들의 혼을 보듬었더라면 글 읽는 마음이 더 행복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대체로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어서 얻은 과제, 그리고 아직 풀리지 않은 과제 하나가 있다. 심리학을 알면(제대로 알든 어설피 알든) 사람을 볼 때 자꾸만 저 행동은 분열적 망상, 저 행동은 투사, 저 남자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저건 알콜성 치매, 저 아이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기미가 좀 있고 저 아이는 애착 형성에 실패한 유분증.... 따위의 평가를 하는 것, 이것이 과연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궁금증이다. 대개 학문은 이해의 바탕이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노릇을 하는 것이니 알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 그러지 못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때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름답다, 가엾다고 느끼는 것이 더 따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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