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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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원의 <글자 풍경>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 있다. 이렇게 지적이고 감성적이면서 글도 맛깔나게 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독자로서 아주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글은 읽은 적 없어도 이름만 들어도 너무나 잘 아는 이처럼 느껴지는 물리학자 김상욱. 이렇게 두 사람이 쓴 책을 집어들게 만든 것은 유지원 덕분이지만 <뉴턴의 아틀리에>를 통해 김상욱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을 마치고 바로 김상욱의 책을 주문했으니까. 학문의 세계는 고독하고 핍진할 터인데 언제 이렇게 사유와 감성의 꽃들을 피웠나, 이들은. 게다가 그들의 세계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미학의 세계를 알려 주는 솜씨까지 지녔으니, 고마운 일이다. 김상욱은 물리학자의 눈으로 미술의 세계를, 유지원은 자신의 영역인 글씨와 미학을 언급하는 중간중간 물리와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나는 독서를 하며 기억할 만한 문장들을 노트북에 다시 모아두는데 두 분이 모두 미학과 물리학을 함께 언급하는 바람에 누구의 글인지 헷갈려서 일부러 두 개의 파일로 따로 정리했다.

 

우선 김상욱부터. 그의 전공인 양자물리학을 주로 언급하는데 이건 도무지 이해가 가는 영역이 아니다. 이해하려 들지 않으련다. 그냥 놀라운 건, 그 과학의 세계가 인간사와, 미술의 세계와 접목이 된다는 것. 가령, 양자역학은 '중첩'이란다. 공존할 수 없는 두 상태가 공존하는 것. 한 사람이 동시에 두 도시에 있는다든지 등. 이렇게 말하면 과학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대표적인 예로 르네 마그리트 그림을 들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엔트로피 증가(다 흐트러지니까)의 치명적 귀결은 죽음이라고 말할 때 김상욱은 물리학으로 철학을 말한다. 칸트의 주관적 보편성을 근거로 미술작품을 보는 이들마다의 다른 견해를 수렴하기도 한다.

 

그는 1610년 갈릴레오가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들을 발견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혁명은 자세히 볼 수 있게 될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학과 미학과 역사는 이렇게 통섭된다. 나처럼 과학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 인문학도인 사람들이 김상욱이나 최재천, 정재승을 좋아하는 이유이리라.

 

그리고 다음은 그의 말 중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은 부분이다. 소통을 위한 언어와 수학(과학), 예술의 관계에 대해서라면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왜 수학과 예술이 존재하는지 설명해준다. 우주는 수학과 물리학의 방식으로 기술된다, 인간은 수학과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것을 예술로 표현한다. 그래서 예술은 언어로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고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분석할 수도 없다. (위그너가 지적했듯이) 우주가 수학으로 잘 기술된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지만 인간이 언어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예술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진짜 놀랄 일은 우리가 언어를 가지고 이 정도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이응노 화백이 옥고를 치른 일, 그리고 그가 이후에1980년 광주를 <군상>으로 그린 일을 언급하면서 그가 말한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자. 학생들에게 여럿이 함께의 의미에 대해서 알려줘야 한다면 다음 문장을 읽힐 것이다.

이름이 존재를 보장하지 못한다. 더구나 이름은 자의적이다. 하지만 이름은 존재에 의미를 준다. 동양에서 형상은 문자가 되고 문자는 의미가 된다. 하나하나의 이름 없는 의미들이 모인 군상들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춤이 될 때, 그 춤은 또다시 하나의 형상이 되고 문자가 되고 의미가 된다. 이렇게 우리는 이름을 쟁취한다.

 

함께 힘을 모으는 일의 중요함을 자연에 빗대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면,

정찰벌이 이주 장소를 찾다가 좋은 장소를 발견하면 춤을 춘다. 그걸 본 다른 정찰벌은 그리로 이끌린다. 이렇게 몇몇 후보지들이 경쟁을 시작하여 많은 벌들이 선택한 곳이 이주장소로 정해진다. 집단지성을 이용하는 것.

 

그 외에도 이 책에는 김상욱의 어록이라 말할 만한 구절이 꽤 많다.

 

-시민사회의 성립이 개인의 자유에 많은 가치를 부여함.

-현대물리학은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어 보는 것에서 시작됨.

-눈에 보이지 않는 극미의 세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에서는 하나의 물체가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 있고 보는 행위가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

-그리스 문명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파르테논이라는 건축물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

-복종을 얻으려면 무력뿐 아니라 권위도 필요하다.


그리고 유지원이란 사람(물론 글로만 만났지만), 이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이다. 공부하는 사람,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 글 잘 쓰는 사람, 그리고 사진 속에서 본 그녀는 멋지기까지 했다.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졌다. 게다가 글은 연구자들 중 자주 보이는 연구자 특유의 편협함이 없다. 공부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활동을 하는 사람이며 다양성에 대해 열린 태도가 더욱 멋지다. 그는 독일 작센에서 만난 친구들에게서 당위에 저항하고 편견에 질문하고 다양성을 각별하게 존중하는 태도를 보았다 한다. 공부가 말 그대로 삶의 공부가 되는 그런 삶을 사나 보다, 이 사람은.

 

유지원의 <글자 풍경>이 오롯이 자기 자신의 전공분야를 미학적으로 풀어냈다면 김상욱과 함께 쓴 이 책은 미학과 과학의 접점을 보여준다. 때로 나는 이게 누구의 글인가 헷갈리기도 했다. 물리학자 김상욱이 미학을 말하는 것은 취미의 영역인가 싶으면서도 유지원이 물리학을 논하면 어, 이 사람 이런 영역까지 언급하나? 놀라기도 했다. 나의 감정이입 탓이리라 생각한다.

유지원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에 대해 일단 알게 된다는 것은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어서 알기 전과는 나의 의식이 비가역적으로 달라진다.’라고 말한다. 공감. 공부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문장이다. 책을 읽고 뭔가를 알아가는 일이 주는 희열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탐구형 인간.

 

그리고 그가 유머에 대해 한 말 유머란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도 여유를 갖고 주위를 넓게 둘러보며 균형을 잡는 힘. 한 발 물러서면 시야가 넓어진다.’에도 격하게 공감했다. 주변에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 혹은 별 것 아닌 누군가의 유머에 따스하게 반응해 주는 이들은 한결같이 균형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늙으면서 유머가 좋아지고 그런 사람들이 좋아지는 것도 그런 삶을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은 왜 미학이 아니란 말인가?

 

요즘 스페인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서인지 유럽 언어들에서 알파벳 철자들이 단어로 응집되어 의미를 형성했다면, 동아시아 언어들에서는 하나의 소리 덩어리가 하나의 의미 단위를 이루며 인식되었다(동아시아 글자들이 네모 안에 들어간 이유)’ 라는 대목이 마음에 짚혔다. 우리 말 은 그 모양이 빛 같다면서 한글은 소리의 느낌과 글자의 모양이 체계적으로 일치하는 글자라고, 게다가 음성상징 (소리에 포함된 이미지- 하긴 <>이라고 발음하는 순간의 빛남이 느껴지지 않나)이란 것도 있다면서.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 언어라고 없을 리 없다. 언어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때 발견되는 것이리라.

 

다음은 유지원의 글 속에서 얻은 반짝이는 말이나 지식들이다. 모두 무언가 삶의 태도와 철학을 반영하는 듯한 말들, 그리고 무엇보다 시적인 표현들이다.

-자시니 축시니 하는 시각은 특정 지점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 구간

-유럽 언어의 무지개(+아치) 물성을 담아 표현한 것이지만 우리말은 +지게()’, 물이 만든 둥근 형상이라는 뜻

-독일어에서는 책 읽는 일과 포도 수확하는 일을 모두 레젠(lesen)’이란 단어로 씀.

-영어에는 가산/불가산 명사가 있지만 일본어에는 없음. - 태도가 언어에 반영됨.

-오늘날의 우리 문서는 왜 수직/수평으로만 작성될까? 옛문서에는 그에 자유로웠던 것들이 있었음.

조선의 필사본이나 그림에는 거꾸로 선 사람이나 건물도 있고 방사선으로 쓴 글씨도 있음(불교 등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에도 있음)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차피 효율의 독서가 아니다,

-우주에 완전한 침묵이란 없다. 모든 것은 노래한다.

 

마지막으로, 유지원의 글 중에는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극장이 공간의 음 전달이 탁월하다는 내용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읽은 유시민의 여행기에도 젬퍼 오페라 극장 이야기가 나온다. 극장 자체가 드레스덴에 등장한 네오콘들에 반대하면서 반인종주의 시위를 했다던가... 이래저래 언젠가 꼭 여행해 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이렇게 책은 자꾸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싶게 해준다. 다른 말로 바꾸면, 자꾸만 살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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