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나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행동하는 매혹적인 생명체를 목격했다. - 저자가 바닷가 갯벌에서 생명들의 움직임을 보며 한 말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우울증의 기분을. 아니, 대학 갓 입학한 무렵, 정말 세상이 회색빛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가 우울증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기억한다. 시대의 아픔에 끌려가고 매 맞는 동기, 선배 들을 보며 내 근원을 알 수 없는 우울증이 부끄러워 어찌어찌 의지로 극복했던 것 같다. 그나마 다 돌아보니 그랬더라, 이지 그땐 우울증이라는 말을 흔히 입에 담지도 않았던 시절이니까.

요즘도 가끔 이유를 모를 우울이 덮칠 때가 있다. 설명할 수 없다. 무슨 일이 나의 우울 호르몬을 건드렸는지, 그게 그렇게까지 칙칙할 일인지, 논리적으로는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이 안 된다. 나 자신이 납득되지 않으므로 누군가에게 나 요즘 우울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땐 잠을 많이 자든지 일부러 맛있는 걸 마구 먹어대든지 아님 청소를 한다. 우울이 급습할 조짐이 보일 때 내가 먼저 선공격하는 거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런 경계에 있을 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있거나 자신이 관리할 방법을 가진 사람은 그나마 다행인 경우임을 나도 잘 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것도 공감. 이 책의 지은이 에마 미첼은 마치 동아줄(정신줄)을 붙잡고 이 생의 하루하루 매 시간시간을 견뎌내는 심정으로 숲을 헤매고 글을 쓰고 어찌 됐든 살아내왔을 거다. 책에서는 우울증 증세를 마음 속에서 비합리적이고 무의미하지만 도무지 가라앉을 줄 모르는 압도적인 자기혐오와 비판이 폭발한다. “난 무가치한 인간이야.”라는 머릿속 요란한 소음이 들린다라고 표현한다. 내가 청소를 하며 우울감을 날려버리는 것처럼 에마 미첼은 자연을 사랑하는 이라 새를 보러, 새 풀을 만나서, 바람을 맞으러 나갈 힘이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우울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날은 정말, 아무것도 못할 텐데 말이다.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나서면 도파민이라는 뇌 시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일시적인 흥분을 느끼게 한다(채집 황홀).

 

사실 나는 이 책 속 그림들, 내가 좋아하는 작은 풀싹들이나 새들의 흔적이 좋아 읽기 시작했지 우울함에 관한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도 책은 저자가 찾아 헤맨 숲과 들판과 바닷가 이야기를 담았다. 우울은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니 맘껏 읽으시라. 나도 아껴 읽었다. 같이 산책 나가는 기분으로, 같이 반딧불이를 찾아 나갔다가 모기에 뜯기는 기분으로, 같이 숲 스케치를 나가는 기분으로, 같이, 마당에 새들을 부르려 모이를 늘어놓는 마음으로. 삶에 치여 숲에 갈 시간이 없는 나는 이 책으로 습기어린 숲 향기를 대신 체험한다. 고맙다. 나도 우울한 날 많아, 동의하는 이 기분, 그리고 나 대신 자연을 산책하는 그의 노력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