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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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의 <백년만의 고독>을 고등학교 때 읽었던가? 그 이후에도 바르가스 요사, 보르헤스, 네루다 정도나 읽었으려나.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문학에는 왠지 모를 친숙함 같은 게 있다. 그러고 보니 중남미 문학은 아니지만 그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읽히려고 산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먼저 읽어본다. 제목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세대 간 정서적 이해를 말하려나, <고슴도치의 우아함>처럼 편견을 넘어서는 이야기려나. 읽기 전 작가에 대한 소개글과 이 소설이 나온 배경을 보니 혹시 남미의 혁명적 상황을 다룬 정치 소설이려나. 하지만 그 어떤 예측도 다 빗나갔다. 오히려 처음부터 뜨거운 아마존의 열기가 느껴지는 이 소설은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읽었을 때의 어리둥절함이 떠오른다. 물론 그보다는 주제도 명쾌하고 인물도 이야기도 훨씬 매력적이지만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읽었을 때의 찝찝함이 다시 생각난다...)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묵직한 태도와 철학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조르바가 가진 마초적인 면모에서 여성적 소외를 느꼈던 섭섭함은 볼리바르에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강인한 사람이지만 유연한 사람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암살쾡이를 죽이려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세계의 질서’. 그러나 자연이 가지고 있는 질서에 대한 경외를 버리지 않는다. 둘 사이에 흑백논리적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다. 자연은 그대로 자신의 흐름이 있고, 거기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결코 오만해서도 자연을 이기려 해서도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살아내야 하는 생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자연을 정복하려거나 짓밟을 생각은 없으면서도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노인과 동물의 싸움의 장면은 묘하게 경외감을 부른다.

<노인과 바다>는 너무 어렸을 때 읽어서 노인이 왜 남는 것 하나 없는 참치잡이를 하고 그 뼈다귀를 끌고 돌아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연애소설>에서는 그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인생이란 게 성공과 행복이 목표가 아니라 생명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땅에 생명을 지고 나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 풀꽃, 벌레, 동물,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말이다. 소설 속 노인과 동물은 둘 다 그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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