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연구
알프레드 알바레즈 지음, 최승자 옮김 / 청하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상담실에서 자살 예방 상담을 위해 자살에 관련한 책들을 여럿 구입해 놓고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명성은 오래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사랑하는 시인 최승자의 번역서라서 그의 훈기를 느껴서 더 소중했던, 정희진이 꼭 읽어보라 해서 궁금했던, 그러나 제목의 위압감 때문에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되어 책장에 오래 꽂혀 있던...

 

심리학 책인가 싶었지만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떠올렸다.흥미진진하다가도 접할 수 없는 서구의 문학 작품 이야기가 나오면 답답해지던 기억과 더불어.. 자살의 역사를 다룰 때는 인류학 서적 같기도 하다가 문인들의 작품을 논할 때는 (서구) 문학사이자 비평서로 보인다. 인용하는 문구들도 아름답지만 알프레드 알바레즈 그 자신의 문장들이 주옥같다. 무엇보다도 번역이 참으로 훌륭하다.

 

물론 원서를 비교하며 읽은 것이 아니라서 최승자의 번역이 훌륭하다는 평가는 절반만 맞는 것일 수도 있다영어투를 벗겨내고, 긴 문장의 호흡을 조절하면서도 저자가 하고 싶은 말,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을 살려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번역서가 감동을 줄 때는 역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봐야 한다. 이 책 초판은 82, 내가 고등학생 때 나왔으니 52년생인 최승자가 갓 서른을 넘겼을 나이 때였다. 그 나이에 이 무게를 이기고 이토록 아름답게 번역을 할 수 있었다니!

 

저자인 알프레드 알바레즈는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이다. 그 책을 쓴 계기를 자살이 어떻게 어째서 예술 창조자들의 상상 세계를 물들이는가 알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책은 자살을 문학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라 밝히고 예술가란 천성적으로 자신의 동기에 대해 대개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의식하고 또한 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므로 사회학자들, 정신병 학자들, 통계학자들이 놓쳐버리는 설명들을 제공할 수 있음직하다.’ 고 썼다.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로 책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그이의 자살이 준 충격이 책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실비아 플라스는  작품을 한 권으로 제대로 읽은 적은 없지만 서양의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하도 그의 이름을 자주 언급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친근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그이가 자살했다는 사실이, 그 아까움이, 그 절실함이 여성 예술가들의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자신의 예술 작품에 대한 성찰이 자신감이 아니라 불안감으로 다가왔을 많은 이들, 게다가 예술을 하기에 너무나 척박한 현실에 힘들었던, 여성이기 때문에 덧대어진 불편한 현실에 더욱 괴로웠던 모든 이들이 실비아 플라스를 사랑했을 것이다. 책은, 그이와 저자의 만남에서 시작하여 그이의 삶과 죽기까지의 고뇌나 현실적인 전전긍긍들을 담아낸다. 함께 문학을 논하던 지인의 죽음을 아주 가까이 접했던 저자는 결국 책 말미에 자신의 경험까지 담는다. 그 중간에는 냉철한 어조로 자살의 역사와 문인들의 자살의 역사를 담아내고 말이다. 심리학에서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도 이야기하고 자살론에 있어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에밀 뒤르켐의 사회적 자살론을 계속 끌고 가면서 문인들의 자살로 닿아간다.

 

학교에서 유독 예민한 아이들을 만난다. 나 자신도 예민한 편인지라 그들이 이 생을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백창우 식으로 말하자면 슬픈 사람(백창우 <한 때>)’으로 살아가야 하는 힘듦 말이다. ‘예민하다는 표현은 부정적으로 읽히지만 뒤집으면 섬세하다라고 긍정적으로 표현해 볼 수도 있다. 그게 없으면 예술이나 창의적 활동에 불리하기도 하니까. 물론 그냥 대충 살아도 좋으니 좀 무딘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힘들거든. 그런 학생들을 보면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그렇다. 기질은 자연이 주신 것이다.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게 불행한 기분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돕는 것은 주변의 어른들이 할 일이다.

 

자살을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본 것은 에밀 뒤르켐의 업적이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한 시각이라 여기지만 그렇게 보게 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니까. 특히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거의 1위를 내달리는 한국에서 자살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남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영향을 준다. 안 그래도 10, 20대의 젊은 시절은 우울하고 답답하고, 자살이나 자기연민의 위험이 많을 시기인데 여기에 객관적인 요소들이 덧붙여지면 치명적일 수 있다. 나 역시 그 나이 때 나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한때나마 나 하나쯤 죽어서 우주 속으로 사라져도 그만이라 생각했던 나 자신에 대해 내 부모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책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정말 죽고 싶어 한다기보다 죽고 싶다고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의 시도에는 실패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클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이라면 더욱. 책 초입에 언급했던 실비아 플라스에 대해서도, 그녀가 시도한 죽음은 일종의 인생의 도전이며 자신이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도전이었지 않았을까 저자는 헤아린다. (다른 유명인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그의 죽음이 신화화되고 왜곡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물론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자살을 택한 사람들이 많다. 내가 저런 상황이어도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것만 같은 절박한 죽음이 많다. 또한 뻔뻔한 사람은 자살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가져야 할 수치심, 염치, 부끄러움, 공포와 같은 감정이 순정한 사람이 아니면 자살을 생각조차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이 선택한 죽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죽음의 그림자는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이 죽음으로써 그에 영향받은 이들이 잇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악순환은 어떻게 끊어질 수 있을까. 물론 이는 닭과 달걀의 관계가 아니다. 가해자는 죽고 싶게 만드는 힘이지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 아니니까. 사회적 자살의 무거운 그림자를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특히나 우리 아이들을 숨 막히게 만들고 죽고 싶게 만드는 우리의 현실로 비추어볼 때 청소년들의 자살은 분명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다. 적어도 아이들이 죽고 싶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슬프고 아프게 죽은 이들의 영혼이 발할라에서 평온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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