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나에게 건네는 말 - 내가 왜 힘든지 모를 때 마음이 비춰주는 거울
고혜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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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 칼 융

안으로 뛰어들지 않고 세상을 향하는 길은 없다. - 칼 융

 

융의 말은 모두 네 안의 무의식과 그림자를 주의해서 살피라는 뚯인 것 같다. 오늘 날에는 개인을 중시하는 근대화를 거쳐 개인의 열등한 부분과 욕망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 시발점이 융이었다. 물론 융 이전에 우리에게는 질척거리는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고 선언한 프로이트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실체에 좀 더 섬세하게 다가가고 인간답게, 의미 있게 무의식의 존재적 가치를 논한 융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은 융의 이론 중에서도 꿈의 의미에 대해 고혜경이 특별히 정리한 책이다.

 

나는 나의 직업적 필요에 의해서도 심리학책을 열심히 읽고 있지만(학교에서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사실은 나 자신 많은 꿈을 꾸고, 즐기고 의미를 부여하고 때로는 영감을 얻기 때문에 내 꿈이 궁금해서라도 꿈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다. 당연히 꿈 분석에 공을 들인 융 이론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을 수밖에 없다.

 

고혜경은 혼자서 꿈을 다루고 싶다면 예술 작업을 추천한다. 꿈을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꿈 내용을 기반으로 시를 쓰거나 춤으로 표현하는 등’. 나는 드문드문 일기장에 기록하던 꿈을 이 책을 읽은 이후부터는 아예 한 파일로 따로 저장하며 기록하고 있다. 다양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융 식의 해석을 찾아보기도 하고, 심지어 인터넷에 떠도는 동양식 해석(불이 나면 돈이 들어온다든지, 죽은 사람을 보면 좋다, 이런 해석을 보면 해석은 얕은 것 같아도 어딘가 분석심리학적 요소가 있다. 꿈은 반대라고 하는 것은 꿈이 주는 불길한 메시지가 사실은 당신 안에 풀어야 하는 불안, 욕망, 억눌림 등을 헤아리라는 의미와 상통하기도 한다.)도 찾아보면서 비교한다. 같은 꿈을 동양식, 프로이트 식, 융 식으로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책에서 나는 내 꿈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들을 찾아보았다. 가령, 나쁜 남자에게 쫓기는 꿈을 자주 꾸는데 그것에 대해 고혜경은 내 안의 억눌린 불안이 그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불안에 예민한 나의 성정은 그 자체로 날 불안하게 한다. 그렇게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나를 열심히 살게 하고 실수하지 않게 하고 글을 쓰게 만든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정체를 밝히라고 말하고 싶기는 하다. 그러고 보니 책을 쓰면서 이런 꿈을 덜 꾸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세우고 싶은 나의 존재감은 아마도 글 쓰는 일로 충족이 되는가 보다. 내 안의 거친, 상처받은 아니무스는 내가 낸 책 몇 권으로 양지 바른 곳에 얌전하게 드러나고 내 꿈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내가 많이 꾸는 꿈 중에는 꿈도 있다. 꿈속의 집은 나의 정신세계를 뚯한단다. 과거에는 위태로운 집, 잠기지 않는 문, 그 집에 누군가 침입하는 꿈을 꾸다가 점점 꿈속의 집이 넓어지더니 급기야 집안에 너무 많은 문이 있어 밤이 되면 잠그러 다니느라 애를 쓰는 꿈을 꾸곤 했다. 여전히 잠기지 않는 고장 난 문들이 많았고 집은 지나치게 넓은데 너무 많은 물건이 쌓여 있는 꿈, 때로는 물이 새거나 창틈으로 물이 스며드는 꿈을 꾸기도 했다. 마치 침대 머리맡에 10여 권의 책을 쌓아놓고 읽는 나의 현실생활의 습관과도 닮았다. 이 일 저 일을 벌여놓고 시간 날 때마다 조금 씩 조금 씩 수행하는 내 일처리 방식과도 닮았다. 결코 심심한 적은 없지만 영어공부 하다가 스페인어 공부 하다가 수를 놓다가 해금 연습을 하다가, 취미도 이것저것 내키는 대로 하는 내 놀이방식과도 닮았다. 가끔 나는 무언가를 이루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가 뭘까 궁금할 때가 있다. 영어공부를 한다면 하루 열 시간씩 6개월을 영어에 미쳐 살았다는 사람처럼 해야 효과가 있을 터이지만 나는 내키는 대로 하루 10, 20, 이런 식으로 공부한다. 물론 그렇게 곰실곰실 쌓아나가는 성과들이 의미가 없거나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꿈은 아마도 나에게 좀 더 굵직하게, 좀 더 큼직하게 삶을 경영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게 아닐까? 아니, 꿈은 경고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나의 전전긍긍을 그렇게 어수선한 집으로 보여주는 거라고 해석하는 게 맞겠지.

 

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내 모습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한다. 전의식을 반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현실과 다르게 보이는 현실인물들도 나의 욕구나 불안을 반영할 것이고 속에 만난 죽거나 죽이는 인물 역시 내가 현실에서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꿈속에서 보이는 위협적인 인물, 미운 인물들의 모습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의 위협요소이거나 스스로 싫어하는 모습이다. 그런 인물들을 만나면 물어보라고 한다. 왜 내 꿈에 나타났는지. 이름을 불러주고 말을 걸면 모호함은 정체를 드러내고 부풀려진 에너지는 수그러든다. 이와 같은 과정은 고혜경이 광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꿈분석 작업을 할 때도 한 말이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씻김굿처럼 죽은이를 불러 못다 한 말을 하게 하는 의례까 죽은 자뿐 아니라 산 자를 치유하는 좋은 행사인 것처럼 꿈속 인물 즉 나의 무의식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결국 현실의 나를 위한 의식이기도 한 것이다. 꿈은 대개 모호하게 끝난다. 누군가를 찔렀지만 그가 죽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어디선가 떨어졌지만 박살이 나기 전에 꿈에서 깬다. 그런데 저자는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열어보라고 한다. 꿈의 결론을 위해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은 무의식을 만나는 일, 너의 정체는 무엇인지 확인하는 일, 오래 묵은 불안 혹은 욕망을 들추거나 청소하고 해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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