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공항에서
최갑수 지음 / 보다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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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은 대부분 외롭고

배를 띄운 밤바다같이 달을 내건 밤하늘같이

별빛 하나로도 생을 건너가는 사람이 있답니다

지금 사랑해야지, 우린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까

모든 꽃들이 시들고 모든 풍경이 사라져도

우리는 사랑했고 더 깊은 눈동자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작위로 예쁜 제목만 뽑았는데 마치 한 편의 시 같다?)

 

시인이라더니, 제목만으로도(차라리 제목이 더) 여운이 남는다.

사실 책의 제목 때문에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밤의 공항에서>라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공항이라는 말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안다. 게다가 밤의공항이라니.

 

나는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은 없지만 밤의 공항이 어떤 느낌인지는 좀 안다. 늦은 밤 공항에 도착해본 적도 있고 이 글 속 이야기처럼 공항에서 밤을 새본 적도 있다. 쿠바여행 갈 때 벤쿠버를 경유해야 했다. 새벽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어딘가에서 묵기에는 너무 애매한 시간이었다. 숙소에 묵어도 또 새벽에 나와 공항으로 이동을 해야 하니... 차라리 공항 라운지에 짐을 맡기고 오후와 저녁의 벤쿠버를 좀 즐기고는 다시 공항에 돌아와 밤을 새자, 이랬던 거다. 자그마치 스무 살 난 딸과 50대의 남편을 데리고 말이다. 우리의 인천공항을 생각하고 공항은 쾌적할 거라고 생각했다. 웬걸, 새벽엔 추웠고 의자는 모자랐고 의자마다 손걸이가 있어 눕기도 어려웠다. 겨우 누울 만한 의자를 찾아도 딸이나 나는 그나마 웅크릴 수라도 있었지만 키가 180에 육박하는 남편은 누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항에는 왜 이리 노숙하는 사람이 많은지. 여행객이 아니라 대부분은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이방인 노동자들 같아 보였다.

게다가, 새벽의 공항은 시끄럽고 냄새난다. 그렇지, 공항이 그리도 깨끗한 것은 사람 없을 때 청소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란 걸 왜 생각 못했을까. 화장실마다 청소하느라 들어갈 수가 없지, 화학약품 냄새는 지독하지, 무슨 기계로 이동하고 청소를 하느라 기계 돌아가는 소음은 엄청나지...

누군가에게는 그게 낭만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특히 여자 여행객에게는 공항노숙은 공포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당장 그 새벽, 와이파이가 될 때(쿠바는 인터넷 연결이 어렵다고 해서 남편이 서둘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하루 벤쿠버를 경유할 때를 대비해 아예 호텔 하나를 예약했다. 숙소 사정이 좋지 않았던 쿠바 여행에서 지친 몸을 조촐하지만 깨끗한 캐나다 호텔에서 누일 때 얼마나 좋던지. 여행은 낭만도 좋지만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는 좋은 잠자리가 필수라는...... 낭만과는 좀 거리가 먼 깨달음을 새삼스럽게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행기가 좋은 거다. 여행기에는 낭만만 남는다. 고된 일도 낯선 냄새도 두려움도 모두 사라진, 여행의 좋은 것만 남은 게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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