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하늘말나리야 - 아동용,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책읽는 가족 1
이금이 글, 송진헌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픽사에서 나온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머릿속을 뒤집어 본다, 뭐 그런 뜻이다) 맨 마지막(엔딩 크레디트 끝나고 나서 나온다)에 사춘기 남학생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스포가 될까봐 구체적으로 말은 안 해준다. 직접 보시라.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별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고 격렬하게 아무 생각도 않는다.” 쯤 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맘때 남학생들은 다 그런가? 오랜 동안 남학생을 가르친 입장에서 남학생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라고 편들어 주고 싶지만.... 미안한 얘기지만 수업 시간에 우리 학생들은 말귀를 참 못 알아먹는다. 멍 때릴 때도 진짜 많다. 말이 짧다. 그러니까 저런 만화가 나오는 거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건 아니지만.

하지만 그러다가도 쉬는 시간만 되면 갑자기 뇌가 활성화되는지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나가면서 갑자기 어려운 단어들을 마구 쏟아낸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 자아탐구가 필요한 시기라고.” “됐어, 어디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그래?” ~ 1인데 그런 언어를 구사한단 말이지? 돌아보면 머릿속에 축구와 게임밖에 없을 것 같은 아주 귀엽고 아주아주 개구쟁이처럼 생긴 친구가 그런 말을 한다. 남자 중학생은 단순하다, 소년들은 어휘력이 짧다, 남자애들은 생각이 없다, 이건 모두 편견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4시간에 걸쳐 읽었다. 조용히 각자의 새 책을 두 손 고이 받잡고 읽기 시작할 때의 그 순정함은 거의 흰 장갑 끼고 규장각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꺼내드는 유생들이다.

여러분, 두 손을 들어 보세요. 바지에 쓱쓱, 손바닥의 땀을 닦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 봅시다. 내년에 후배들에게도 읽혀야 하니까요.” 하란다고 다 따라한다. 짐짓 자기들도 조심스러운지 선생님, 책 겉에 있는 띠지는 어떻게 해요?” “버리세요.” “? 진짜요?” “선생님, 쟤 책 접어요. , 그거 새 책이야아~.” 경건하다가 못해 난리부르스다.

소설에는 세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소희, 미르, 바우. 바우는 엄마가 돌아가신 충격 때문에 선택적 함구증을 앓고 있다. 소설 시작하자마자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용어가. 조용히 분위기 잡기 시작할 무렵에 누군가 속삭이듯, 누군가에게 묻는 건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선택적 함구증이 뭐지?’

나 들으란 건가? 가서 설명해 줘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누군가 또 속삭이듯 설명해 준다. ‘,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말하는 거야.’ 그러자 여기저기서, 저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또 속삭이듯 말해주는 아이들. ‘말 못하는 거야, 그거, 충격 받아서.’ ‘근데 가족이나 친한 사람한테는 말할 수 있어.’ 얘들아, 다 들리거든?

보통 수업 시간 같으면 20분 간격으로 활동을 바꿔야 집중하는 중1 소년들이 30분 넘게 책에 몰두한다. 물론 이 재미난 책을 읽으면서도 죽어라 진도 안 나가고 옆 친구가 어디 읽고 있나 힐끗거리는 아이들이 있긴 하다. 책은 한 페이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안드로메다로 영혼을 우주여행 시키는 친구들도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몰입도면 책이 꽤 재미있다는 뜻이다.

 

동화라고 해야 할 만큼 소설은 쉽고 재미있지만 문장도 구성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특히 소희의 마음이 자꾸 지핀다. 이야기는 미르 사건 중심으로 가지만 요즘 흔히 간과하는 청소년들의 정신적 성장부분을 소희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바우와 소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깊은 신뢰감이다. 청소년기에 이런 정신적 교감은 매우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있을 것 같은 신뢰감. 말하지 않아도 읽히는 마음......

미르 엄마와 바우 아빠의 교감도 눈에 띈다. 아이들 눈으로 볼 때 어른들의 우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두 어른이 혹시 서로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오해가 있었지만 미르나 바우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어른들에 대한 이해도 확장된다. 두 어른은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과 낮고 겸손한 삶의 철학으로 친구가 된다. 신영복 선생이 말했던가, 입장의 동일함이 소중하다고. 동지란 그런 것이다. 동지는, 연인이나 친구와는 다른, 매우 깊고 진한 관계의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좋은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성장소설이 빠지기 쉬운 위악(거짓으로 , 못된 척 하는 것)’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고 훈계를 하려 들지 않지만 지향을 보여주는, 좋은 성장소설이다.

 

45분 수업 3시간 동안 책을 읽는데 매 시간 10분 정도 남기고 간략히 그날 읽은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두었다. 내가 기대한 모습은 열심히 책을 읽은 만큼 조용히 글을 쓰는 모습이었지만 이때다 싶게 아이들은 토론을 벌인다. ‘(소곤대며) , 너 몇 쪽까지 읽었어?’ ‘126’‘, 진짜? 100쪽도 못 읽었는데?’ ‘근데 말이야, 소희는 바우한테 왜 그렇게 말했을까?’ ‘, 아냐, 그건 둘 사이에 오해가 생긴 거구, 장미꽃은 말이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 학생들은 그날 읽은 만큼 자연스럽게 독서하고 대화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 궁금하니까~.

책이 재미있으면 억지로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독후감도 그렇지 않을까? 이야기를 간직하고 싶어서, 이 감동 어딘가에 나누고 싶어서, 즉 자기 안에서 넘치는 이야기를 주체할 수 없어서 일기장에 적는다면 그게 최고의 독후감이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독후감에는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공감이 많이 됐다.’ ‘바우, 소희, 미르의 우정이 부러웠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리고 수행평가 평가기준을 말해줄 때 내가 아이들이 쓴 독후감에 대한 독후감(나의 감상)’을 들려주면서 여러분, 진짜 재밌게 읽었다는 글이 많네요.” 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입을 모아 ~짜 재미있었어요. <어린왕자>는 좀 어려웠는데 이 책은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한다. ~, 이금이 선생님, 감사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