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들이 쏟아진다 창비시선 376
정재학 지음 / 창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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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은 1996년 등단해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시인이다. 그는 우리 학교 사회 교사이기도 하다. 그가 유명한 시인이라는 것을 동료교사들도 학생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유명세를 떠나서 그저 순수하게 시만 읽어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시인인지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모더니즘의 젊은 기수라는 평을 받는 그의 시는 결코 쉽지 않아 대중적으로 읽히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초현실적인 꿈을 옮겨놓은 듯한 그의 시집 <어머니는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광대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는 어른도, 또 문학을 전공한 이들도 취향에 따라는 선뜻 읽기 어려울 수 있으니 중학생인 우리 학교 학생들에는 좀 난해할 것이다.

 

때때로 학생들이 따라와 묻는다. 정재학 선생님이 정말 시인이냐고. 그렇게 묻는 학생들에게는 그의 <모음들이 쏟아진다>를 권한다. 뭔가 괴이하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가득한 앞의 두 시집보다 그의 세 번째 시집은 순해졌다. 학생들이 공감할 만한 학교 이야기<정재학 밴드>도 나온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그는 어렸을 때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단다)는 시 곳곳에서 곡조를 뿜는다. 주로 재즈와 클래식의 분위기이지만 한창 사춘기에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흑판> 시리즈다. 교육문제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지만 백일몽 같은 환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수업 중 판서를 하다가 갑자기 뭔가 물컹하더니 손이 칠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흑판(1)>

 

수업을 하던 교사가 자신의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또 다른 폭력의 현장이었던 학교의 피비린내는 21세기에도 근본적인 면에서는 지워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학생 개인의 비참함에 감정이입하는 교사의 시선은 그가 시인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대체 우리가 얼마나 더 죽어야 어른들이 정신 차릴까 - 흑판7). 때로는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사람으로 자라나라고 부추기는 것 같은 학교, 혹은 교육 시스템, 혹은 교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하고(여러분은 친구들에게 어떤 종류의 식물과 같나요 - 흑판6 ),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사과는 더 이상 사과가 아니었다. 나무도 더 이상 나무가 아니었다 흑판5).

 

정재학의 시는 때로 아름답고 때로 신랄하다. 어린 아기에게도 아름답고 착한 동화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그림책을 읽어줘야 하는 것처럼 사춘기 소년들에게 정재학 시는 윤동주와 김소월에 머물던 교과서 시의 세계에서 그 외피를 넓혀줄 것이다. 특히나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라면 곁에서 따뜻하고 뜨겁게 숨 쉬는 시인 선생님의 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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