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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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에 관해 떠오르는 두 사람

글꼴에 관심이 많았던 제자가 있었다. 중학생 때 이미 타이포그래피 전시회를 쫓아다니곤 했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하다가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 영상과 영문을 접했는데 거기서 남의 대학에서 청강(도강)한 타이포그래피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외에는 학급문집이 만들 때가 아니면 글꼴에 관심 가질 일이 뭐 있었으랴. 다만 나는 이 책을 우연히 펼쳤다가 유지원의 글 솜씨에 매료되어 책을 집어 들었다. 공부의 깊이도 남다를 텐데(내가 모르는 영역에 이토록 해박하다니!)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기 공부를 입증할 현장을 찾아다닌다니 더더욱 매력적이다. 게다가 이렇게 글을 잘 쓰나. 그냥 문장이 훌륭한 수준이 아니다 제시하는 방향성도 좋고 감성도 뛰어나다.

 

훈민정음의 진보성

3 국어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가르친다. 복간본이 잠깐 나왔을 때 거금 20여만 원을 들여 그것을 사고 도서관에도 신청해서 사둔 적이 있다. 해례본의 어제서문은 왕이 직접 쓴 것이다. 저자는 한글창제는 지식 민주화를 의미한다고 했다. 한글 창제에 대해 진정한 백성 사랑이다, 아니다, 통치 수단으로 쓰고자 했다, 아니다 다양한 논쟁이 있지만 분명 백성의 힘을 고려하고 다가간 진보적 행위였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정인지의 서문을 보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체적 사고방식이 돋보인다.

 

세종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14, 5세기) - 정인지 훈문정은 해례본 서문

사방의 지역마다 자연의 풍토가 다르다. 따라서 지역마다 사람의 발성과 호흡도 달라진다. 그러니 언어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글자 또한 서로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억지로 같게 만들려고 하면 조화에 어긋난다.”

 

서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예술성

딸애가 영화를 보다가 웃는다. ‘헬베티카체로 쓰여진 간판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게 아마 우리 궁서체 비슷한 것인가 보다고. 그들도 우리처럼 고풍스럽고 조금은 진부하고 진지할 때 쓰는

서체가 있는 모양이다. 모든 예술작품도 결과물만이 아니라 만들어진 과정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서체가 만들어진 과정, 그 노고, 거기 얽힌 사회문화적 이야기들,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일이 새삼 즐겁다.

 

유니코드 그 신비로운 과정

한글 워드를 쓰다 보면 유니코드에 접속하게 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둔 적 없었다. 이 책에서 유니코드에 관한 부분을 읽고 일부러 들어가 보았다. 세상 모든 글자가 다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심으로 신세계를 발견한 듯하다. 사춘기 시절, 암호같이 신비로운 이국의 글자, 혹은 외계어에 접신하고 싶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써먹을 일 없을 유니코드 안 그 신비로운 글자들을 하나씩 베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스달 연대기>라는 드라마에서 작가들은 새로운 문자와 언어를 만들었다. 그 한계는 뚜렷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즐겁고 신비로웠을 것 같다. 퇴직하고 시간이 나면 꼭 해 보리라, 유니코드 따라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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