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의 바람은 일년 중 가장 근사하다. 해는 터질 듯 내리쬐고, 초록은 위험할 정도로 반짝이는데 아, 이 바람은 무엇일까. 몸에 남은 마지막 수분기마저 남김없이 앗아가고 기분을 정신없이 들뜨게 하는 이 바람은. 자전거를 타고 월명동 작은 도서관에 들러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 정이현의 풍선, 옥찌들 책으로는 명화로 보는 미술을 빌렸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월명산길로 왔는데 전에 학원 다니면서 다녔던 길이건만 오르막길에선 예상했던대로 마지막 숨처럼 헐떡이고, 내리막길에선 첫웃음처럼 웃어제끼기 시작하는데, 정말 여름인가, 여름의 바람이 이토록 청량해서 어쩌나 싶을 정도로 시원했다.  

 연두색이 고와보이기 시작하면 늙었다는거라는데  난 이 말을 들었을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연두가 정말 곱게 느껴졌다. 애늙은이의 징후보다 친근한 연두, 누군가의 이름처럼 다정한 연두. 역시 초록은 위험하다.

  

 식구들끼리 모여서 술을 먹다가 아빠 어렸을 때 얘기가 나왔다. 전에는 아빠의 단독 진술만으로 사실을 추정했는데 고모의 추임새와 적확한 기억력이 한몫해서 미화된 아빠만의 추억으로 남을 일이 없어졌다. 아빠는 평소에 민이 너무 장난을 친다고 말씀하셨지만 장난꾸러기는 따로 있었다. 고모 말씀으로는 아빠가 어렸을 때 당신보다 여섯살이나 어린 동생보고 산길을 지나 당도하는 친구집에 데려다주라고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어렸던 고모가 아무것도 모르고 아빠를 바래다 주고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가려고 하니, 아빠가 각시 귀신, 몽당 귀신, 우물 귀신 등등 생활 주변의 온갖 잡귀신들을 다 만들어내서 자긴 쏙 빠진 무서움을 고모에게 한아름 선사해줬다는 얘기. 아빠는 얼굴이 빨개지셔서 웃으시고, 고모는 좀 더 실감나는 느낌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재현을 해주시는데. 으흠, 모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보았다.

 아빠가 집에서 설겆이를 가장 더럽게 하는 사람 일순위로 날 지목했다. 두번째는 엄마. 둘째의 증언에 따르면 그래도 엄마는 세제를 사용하니 양반이라고 하는데 엄마는 여전히 이순위라는게 믿기지 않는 눈치다. 아빠 말씀을 들은 아치의 반응이야 당연히, 

- 더럽게 해도 하긴 하잖아. 

 술자리를 치우다가 남은 반찬을 통에 담고 있는데 젓가락을 이용해서 (도구 사용을 까먹은드끼) 담기 귀찮아 뚜껑으로 어줍잖게 음식물을 담고 있으니 고모왈, 

- 네가 여자냐, 남자냐. 

- 고모, 그건 여자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술을 먹고 얼마나 손과 발이 마비됐는지 정도의 문제야. 

 고모는 웃었지만 웃음 끝에서 씁쓸이 툭툭 떨어졌다. 

 아빠와 민은 약간의 긴장 관계. 평소에는 집안에 둘 뿐인 남자라고 챙겨주는게 예사롭지 않지만, 민의 장난기가 도를 지나치거나 삐지거나 떼를 쓸때면 둘의 아슬한 긴장관계는 깨지고 바로 적대적으로 돌변한다. 내일 순천으로 매실 따러가는데 민이 말썽을 피울 것 같다며 옥찌만 데리고 간다고 공표를 하시길래 내가 냉큼 

- 그럼 민이랑 자전거 타고 다녀야겠다 

라고 했더니 둘째 녀석이 

- 언니, 전에 자전거 타다가 바퀴에 민 발 꼈잖아. 

라고 했고, 이것을 들은 적대관계의 여진이 남았던 울 아빤, 

- 그럼 내꺼 안전화 빌려줄게. 못이 박혀도 망치가 떨어져도 문제없어. 

 아, 아빠. 

 

 * * * 

 그러니까, 뭔가 벽에 쿵! 부딪힌 느낌이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끈기가 부족한 나로선 꽤 오랫동안 서재활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오래하신 분들 죄송해요, 고작 1년인데.) 이제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전처럼 모임 얘기나 옥찌들 얘기만으로는 갈증이 난다. 더군다나 아치의 이중 생활을 친히 점검하는 가족의 눈이 있어 옥찌들 얘기 할때는 자기검열을 거쳐야만 한다. 알라딘 배포가 이 정도 밖에 안 돼서 한심스럽지만 나 혼자만 달아오르고 흥분되는 이야기들 말고 너에게도 즐거운 일, 너에게도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혹은 이왕 달아오를거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용어와 긴밀한 논리 구조를 갖고 싶기도 하다. 요새도 일기를 쓰다가 이거 페이퍼에 어떻게 올릴까 생각해볼 정도로 꾸준히 달아올라있는 아치지만 전처럼 '톡톡 나를 건드려줘요.'식의 글은 지양하고 싶다. 하고 싶다고 다 되는건 아니겠지만.  

 매실 따러 갔다가 온갖 벌레들한테 물려서 '긁어줘, 긁어줘.'란 소리가 들릴 정도로 몸이 간지럽다. 뭘 그토록 원하는지, 어떤 글쓰기를 나에게 바라는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긁느라 전보다 더 어먼 소리만 뱉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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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집에 들렀다가 아빠 환갑 얘기가 나왔다. 아빠께서는 맛은 별로여도 오리 요리는 좀 아니란 의사를 비친 와중에 J 의견은 어떤지 여쭸더니 대답은 안 하시고 누구 환갑을 그냥 지나쳤단 얘기만 하셨다.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종종 느끼는거지만 말의 교환이라기보다는 넋두리일 경우가 많고, 서로 동문서답인줄도 모르고 몰입하는걸 종종 보는데 J의 경우가 특히 더 그랬다. 옷매무새며 살림 솜씨며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데다 확고한 자기 믿음과 흠잡을데 없는 과거지사. J가 그럴 수 밖에 없다란 생각은 하면서도 J를 대할 때 마구잡이로 편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야기 와중에 누구누구와 J의 나이차가 10살 가량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난 J가 양육하는 손주들처럼 자꾸 조르게 되었다. 아아,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여고생처럼. 물잔에 따라준 맥주 거품이 넘칠새라 입에 갖다대며 다른때와 달리 고분고분 J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 21살 때였지. 그때 엄마가 환갑이 다 될 나이였거든. 환갑날에 사위를 보고 싶다는 엄마야 그렇다 치지만 선보러 나온 남자가 참 별로인거야. 엄마는 술, 담배 안 하니까 무조건 결혼하라고 성화고, 난 나대로 반항한다면서 고향집에 코빼기도 안 비쳤지.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달에 쥐는 돈은 만원 좀 넘었을 때였어. 인조 눈썹을 가위로 솎는건데 내가 그런건 깔끔하게 잘하잖아. 그런데 개수를 못맞추니까 돈은 안 되고, 위가 안 좋아서 병원 다니느라 돈은 안 모이고. 그래도 3년 일했다고 나온 퇴직금으로 그 당시 제일 비싼 옷을 할머니한테 해드렸어. 누구누구 만났을 때? 지금에서야 누구누구도 얘기하지만 속절없이 생배를 앓았다고 하더라. 내가 위가 안 좋으니까 밥 한공기로도 하루를 먹었거든. 그러니 고봉밥을 먹는 누구가 너무 밥을 많이 먹는게 창피해선 자꾸 자기 양보다 적게 먹은거지.  

 아주 오래된 얘기인데 손에 닿을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지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다시 맥주를 홀짝홀짝 들이켰다. 

- 너희 아빠가 한 성격 하는데다 그런 아빠를 꼼짝 못하는게 할머니잖냐. 할머니 성격이 보통 아닌데 어떡하겠니, 오빠한테 붙잡혀서 어영부영 결혼을 했지. 그런데 결혼 후부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기는거야.  누구가 귀가 좀 얇아 어디가서 무슨 소리를 듣고 오면 날 때리기 시작했던거지. 노름에 손대기 시작하니 한달에 일주일 밖에 코빼기를 안 보이고, 무슨 일만 생기면 날 패대기치니.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참. 

  하루는 등에 피가 철철 날 정도로 맞아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겠더라고. 오빠를 찾아가서 이혼하고 싶다고 통사정을 했지. 그런데 그때 동네에서 우리 형제를 4형제판이라고 해서 우애 깊기로 소문이 나있었거든. 오빠가 단칼에 말하더라고.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어떡하겠니. 꾹 참고 사는 수 밖에. 너희 오빠 태어나고 세월 지나니 매질은 좀 덜해졌는데 내가 그동안 맞은게 너무 억울해서 못살겠는거야. 그래서 너희 큰엄마 찾아가서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고 물었지. 언니가 그러더라. 소주 한병을 주면서 이거 먹으면 죽는다고. 그거 먹고 이틀만에 깨어났지. 그때부터 가끔씩 이렇게 술을 먹게 돼. 술 먹으면서 다시 매질이 시작됐고, 내가 할 수 있는건 취하는 수 밖에 없었어. 왜, 대들지 않았냐고? 말로는 다 했지. 그런데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더라고. 너희 누구누구가 등치가 크니까 상대가 안 됐지. 어느 날엔가는 문을 잠그고 때리기 시작하는데 장에서 이불을 죄다 끄집어내서 이불을 둘둘 말고 이를 악물고 버텼어. 그편이 좀 덜하니까. 엄마가 알았을 때는 정말 창피해서 목숨이 딱 끊어졌으면 좋겠다고 싶더라. 시어머니가 눈치 채고선 누구누구를 때릴 때도 있었지. 그래, 그때쯤 미친듯이 쏟아지던 매가 좀 덜했던 것 같기도 하네. 

 해드리고 싶은 말들을 꾹꾹 삼키며 툭 치면 눈물을 한가득 쏟아낼 것 같은 J를 바라보았다. 늦은 시간까지 안 자는 손주들 뒷바라지에 장난처럼 아이들 보느라 폭삭 늙었다며 웃음 짓는 J. 나 역시 말할 수 없고, 영영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이야기들을 꾸욱 눌러 놓고 다시금 건배를 했다. 

 - 지금이라면 한대만 때려도 사진 찍어서 신고하지 가만 있간. 요새 들어 가끔 누구가 그래. 참고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난 하나도 안 고마운데 말야. 

 바보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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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0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버진 형제 넷에 막내 여동생 1 해서 다섯남매예요.
우리 고모는.. 시누가 넷인 으리짜한 집안으로 시집가서 엄청난 시집살이에 명절은 고사하고 친아버지 제사때도 친정에 다니러 잘 못오셨어요.. 우리 어머니가 맨날 그래요..
'니네 고모가 총기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데, 지금 봐라.. 넉나간 사람 같잖니.. 일년에 친정 하루를 못오게 그 구박을 하고, 종래에는 자식 다키워놓고 살만하니 그 홀시어머니가 앓아누워 똥오줌 받아내고..'
때리는 것만 폭력도 아닌듯 해요... 저희 고모는 말씀을 거의 안하세요.. 눈을 보면 텅 비어버린 사람의 그것이거든요..

참, 어젠 옆자리 동료가 자기 와이셔츠를 와이프가 다리고, 새벽 6시에 나오는 자기를 위해 더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차리는게 당연하다는 거예요. 집에 있는 사람이니까.. 어찌나 화가 나던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그러니 가정주부들이 우울증에 걸리는게 아닌가 싶어요. 음식하는거 좋아하는데, 내가 음식해주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랑 살면 하기 싫을 거 같아요..

아 왜 횡설수설하지..

Arch 2009-06-05 23:46   좋아요 0 | URL
당연히 정돈된 말로 표현할 수 있는게 없을 것 같아요. 휘모리님 얘기도 그렇지만 난 어떨땐 차라리 여성해방을 직업을 구하는게 아니라 가사의 가치를 다르게 보는 작업으로 했다면 더 성공적이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24시간 풀가동 서비스의 진수를 보여주는 가사 노동을 가족 구성원 중 엄마나 아내가 아닌 사람이 떠맡아서 할 수 있는 구조는 어떨까란 생각도 들고.

가사가 어찌 당연한지, 당연한걸 못해서 얼마나 구박받는 사람들이 많은지 옆자리 동료도 알까요? 아니면 지가 한번 해보면 그런 소리 안 나올까요. 왜 이런식의 얘기는 역지사지여야만 되는건지.
아, 술 먹고 댓글 달면 좀 그렇죠. 좀 그런 댓글 달고 있는 것 같아...

뷰리풀말미잘 2009-06-0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내공이 깊지 못해서 그런지 이런 얘기 들으면 혈압이 막 올라요. 아, 뒷목 땡겨.

휘모리님 댓글 읽다가 생각난건데.. 헉, 와이셔츠!!!!

Arch 2009-06-05 23:47   좋아요 0 | URL
어어, 미잘 뒷목 땡기면 안 되는데... 고개를 깊숙히 숙이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보아요.
미잘, 내공 문제가 아니라 감수성과 예민함의 차이니까.
사실 뒷골 땡기는 미잘을 내가 참 좋아해요^^

다락방 2009-06-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더우먼이든 슈퍼맨이든 뭐든 좋으니 되고 싶어요. 아주 먼곳에서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소머즈가 되어도 좋겠구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그런데도 꾹꾹 참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구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또 타인이 갑자기 끼어들어 그자리에서 그 사람을 구해낸다고 해도, 그게 정녕 '구해지는' 걸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욱, 하는 제 성격으로는 나쁜놈들은 그냥 발로 차고 엄청나게 때려주고 싶은데요. 간혹 양 팔을 다 뽑아버려도 좋을 것 같구요. 피를 철철 흘리게 하면서 고통받고 있는 나쁜놈들에게 "이건 다 니가 그동안 나쁜짓을 저질렀기 때문이야"하고 말해주고 싶어요.

미안해, 라는 말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요. 다들 미안해, 라고 말하기전에 얼마나 심한 짓들을 하나요. 미안해,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는거에요. 미안해, 라는 말은 또 얼마나 무책임한가요.

Arch님 글은,
내가 아주 잘, -잘 이라는 표현은 이상한가요?- 읽고있어요.

Arch 2009-06-08 22:56   좋아요 0 | URL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읽고 계시구나.. 나만 넋두리 하는건 아닐까 생각했더랬죠.

타인의 고통에 대해 좀 더 성찰을 하고자 수전 손택의 책을 읽지만 자꾸 나 자신의 입장만 들이밀고 있단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누군가를 구해준다는 것, 내겐 참 요원한 일이에요. 견디라거나 그 상황 자체가 너라는 말이 옳은건 아닌데 섣부르게 나서는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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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6-04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명도 끝내주는데 연주는 정말!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민이 서럽게 울고 있는걸 보고 다가가서 품에 안고 그만 울라며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건 태연한 정적, 방안을 떠돌던 모든 소음도 사라져버렸다. 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보란 듯이 엄마가 나타나 자신은 이모란 존재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보이고 싶은 아이의 작은 몸짓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 역시 나만큼이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약았다거나 머릴 쓰는게 아닌데, 분명 그런게 아니라는걸 알고 있는데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줍잖은 기싸움도 아니었고, 골탕먹이려는 속셈도 아니었다. 이래도 너희 엄마냐고 따져묻고 싶었다. 이래도, 이렇게 네가 우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엄마를 사랑하는거냐고.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좁은 방에서 굳이 셋이 자겠다며 투닥거리다 서로 살을 맞대며 잠이 들었다. 

 나는, 자주 사라졌다 나타나는 이모란 이름의 변덕 심하고 제멋대로인데다 고지식한 사람일 뿐이었다. 외출이 잦고 가끔은 자신의 충동을 어쩔줄 몰라하지만 자기들이 사랑하는 엄마가 아닌 이모다. 이모인 주제에 너무 많은 것들을 보듬으려고 했다. 보듬어줄만한 깜냥도 안 되는 주제에.  

 하여, 

 나의 옥찌들은 도망친게 아니란 내 주장과는 별개로 어찌됐든 자기들 곁에 머문 엄마와 나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 선은 완고하고 정확해서 다른 모든건 이모와 가능해도 자신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잠냄새를 풍겨주고 싶을 때, 보드라운 팔로 누군가의 목을 휘감고 싶을 때는 예외였다. 애처로울 정도로 엄마를 찾는 두 아이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림을 그리고, 책을 보고, 뭔가를 읽어대는 이모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관찰자에 지나지 않았다.   

 으응, 이건 아주아주 견딜 수 없을 때니까, 지금은 그래도 괜찮으니까 옥찌들에게 해줄 말은 고쳐 적어야겠다.

 모든 기대를 엄마에게서 충족하기 어려울때면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가끔은 나를 땜빵으로 써달라고 칭얼대야지... 첫술에 배부를리 없고, 내 밥통은 생각보다 크니까. 에이, 이 정도 크기로 되겠어라며 옥찌들이 놀리기 전에 배를 좀 더 늘려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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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6-0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조카들이 그리 애뜻하다는게 부럽네요. 전 나이차 나는 친구정도의 관계인듯 해요. 감정도 그 이상은 아니고.. 흠 우리어머니가 저보고 차다는 이유를 알겠네요 --;;
다정한 아치님 ^^

Arch 2009-06-03 22:46   좋아요 0 | URL
엄마들은 대개 자식들을 차갑다고 하는 모양이에요. 저도 찬 딸인걸요.^^
다정한 아치는 참~ 그래도 좋은데요!
 

 중학교 때였다. 봉사부장인 S가 봉사활동으로 고아원에 갈거라며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다. 갈까 말까 하다가 난 안 가는 쪽으로 맘을 굳히고 S에게 얘기를 했다. S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왜냐고 물었다. 그러고보니 내겐 '왜'가 없었다. 나는 '그냥 싫어서'란 답을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을 굴러다니면서도 불편한 맘이 가시질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싫어의 끝에서 S가 나를 비난하는 눈빛을 읽었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고, 난 S에게 전화를 걸어 변명을 했다. 

 - 그러니까 아이들이랑 금세 정이 들었는데 헤어지기가 어려울 것 같고,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누군가 앞에서 울거나 어떻게 헤어져야하는지 모르겠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제와 생각하니 곧이곧대로 반반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 변명을 위한 변명이었다. 난 그냥 가기 싫었던거다. 내가 댄 이유에 S는 공감을 표해줬고, 난 좀 더 굳히자는 생각에 악의적으로 내가 얼마나 표현에 서툰 사람인지를 강조했었다.  

 난 내가 의무감을 갖거나 해야한다의 궁지에 몰릴 때면 항상 그때 일이 생각난다. 

 노무현 전대통령을 추모하는 동안 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알라딘에 접속했다. 예전처럼 브리핑의 글들을 다 읽고, 화제의 서재글도 꼭꼭 씹으며 그들 슬픔에 공감하고 아파했다. 물론 달라진게 있긴 했다. 내 서재를 닫았고, 어떤 댓글도 달지 않았던 것. 처음은 추모의 표현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난 소통불능의, 어쩌면 내 스스로가 강요하는 틀 안에서 근근히 삭는 중학교 때 그 아이에서 한뼘도 자라지 않은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알라딘 뿐만 아니라 다른 사이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즐거워하는 댓글을 보면서 부지불식간에 생기는 반감에 당혹스러워했다. 모두가 슬퍼해야할 때는 아닌데 왠지 스스로의 행위 자체의 보상심리까지 작용한 좀 더 집요한 거부감이었다. 물론 이런 감정을 표현하진 않았다. 엄연히 모두가 슬퍼할 수 있듯이 그렇지 않을 다른 쪽의 입장도 있는거니까. 게다가 일부에서 감지되는 '강요된 슬픔'의 기운이 분명히 월드컵 때의 것과는 다름에도 불편 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슬퍼할 때라고 한 페이퍼가 무색할 정도로 난 그다지 슬프지 않았던거다. 이걸 문제라고 할 수 있겠냐마는 나는 누구보다 노무현을 좋아했고, 지금 상황에서 제일 절실한건 단지 대화하려는 그 시도 자체였다는 것임을 갈망하면서도, 글쎄,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지도, 맘을 한뼘씩 내려놓을 때마다 주저앉으며 망연자실하지도 않았다. 나의 상황에 기인한 열패감 때문일 수도 있고, 죽음 외의 다른 연관된 것에 맘이 쓰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혹은 지금이 아닌 한참 후에 방학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우듯 속절없이 발을 동동 굴릴지도.  

 그래서 표리부동한, 슬퍼해야할 때라고 내건 맘이 무색할만치 밍숭맹숭한, 그럼에도 다른이에게 슬픔을 강요하는 내 맘의 영역이 감지되자 그건 참 어떻게 다뤄야할 감정일지 알 수가 없어진거다.  

 중학교 때의 내가 모든 것을 다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어쩌면 난 값싼 동정심과 자신의 기분으로 소비되는 자선에 반감을 갖았던 것 같다. 혹은 정말 도덕적 감수성이나 베풂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거나. 혹은 그 당시의 불안한 상황에 비춰 맘의 여유가 안 난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아무도 찾지 않아서 조금은 멋쩍게 다시, 돌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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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3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3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3 2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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