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민이 서럽게 울고 있는걸 보고 다가가서 품에 안고 그만 울라며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건 태연한 정적, 방안을 떠돌던 모든 소음도 사라져버렸다. 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보란 듯이 엄마가 나타나 자신은 이모란 존재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보이고 싶은 아이의 작은 몸짓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 역시 나만큼이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약았다거나 머릴 쓰는게 아닌데, 분명 그런게 아니라는걸 알고 있는데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줍잖은 기싸움도 아니었고, 골탕먹이려는 속셈도 아니었다. 이래도 너희 엄마냐고 따져묻고 싶었다. 이래도, 이렇게 네가 우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엄마를 사랑하는거냐고.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좁은 방에서 굳이 셋이 자겠다며 투닥거리다 서로 살을 맞대며 잠이 들었다.
나는, 자주 사라졌다 나타나는 이모란 이름의 변덕 심하고 제멋대로인데다 고지식한 사람일 뿐이었다. 외출이 잦고 가끔은 자신의 충동을 어쩔줄 몰라하지만 자기들이 사랑하는 엄마가 아닌 이모다. 이모인 주제에 너무 많은 것들을 보듬으려고 했다. 보듬어줄만한 깜냥도 안 되는 주제에.
하여,
나의 옥찌들은 도망친게 아니란 내 주장과는 별개로 어찌됐든 자기들 곁에 머문 엄마와 나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 선은 완고하고 정확해서 다른 모든건 이모와 가능해도 자신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잠냄새를 풍겨주고 싶을 때, 보드라운 팔로 누군가의 목을 휘감고 싶을 때는 예외였다. 애처로울 정도로 엄마를 찾는 두 아이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림을 그리고, 책을 보고, 뭔가를 읽어대는 이모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관찰자에 지나지 않았다.
으응, 이건 아주아주 견딜 수 없을 때니까, 지금은 그래도 괜찮으니까 옥찌들에게 해줄 말은 고쳐 적어야겠다.
모든 기대를 엄마에게서 충족하기 어려울때면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가끔은 나를 땜빵으로 써달라고 칭얼대야지... 첫술에 배부를리 없고, 내 밥통은 생각보다 크니까. 에이, 이 정도 크기로 되겠어라며 옥찌들이 놀리기 전에 배를 좀 더 늘려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