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1권 - 개화기편,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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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는 1870년까지 지속되었는데 1866년에서 1868년 사이에 나타난 순교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 우위였다는 점이다. 이 기간 중 검거된 천주교도 407명 중 남녀 비율은 남자 셋에 여자 하나였지만 배교하지 않고 순교한 수는 78명으로 남녀 비율은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었다. 이는 여자의 신앙심이 더 깊었다는 증거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있다.
1866년에 처형된 베르뇌는 "조선 민중의 성격은 매우 단순하여 사리를 깊이 따지길 싫어한다. 성교의 진리를 가르치면 곧 감당하여 믿음에 들고 어떠한 희생이라도 무릅쓴다. 하지만 진리를 풀이하면 잘못 알아듣는다. 특히 부녀자들과 천민층 남자들이 그러하다."고 했다.
1868년 감옥에 갇힌 학식 많은 여신도 한성임은 "미련한 여인들은 겨우 한 구절의 성서만을 외우고는 바로 세례를 받는다. 그리하여 천당에 갈 줄 알고 기꺼이 죽임을 당한다. 마치 불꽃 속에 뛰어드는 부나비들과 같다."며 우매한 부녀자들의 값싼 신앙 태도를 한탄했다.
이규태는 "이처럼 터무니없이 빈약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서도 그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고 웃으면서 죽을 수 있었던 신앙심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96쪽

그것은 한국 여성이 대대로 감수해온 수난의 역사를 모르고는 이해하기 곤란하다"며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한국에 천주학이라는 신교가 들어오자 한국 여성들은 오랫동안 막연하게 그려오던 탈출구에 눈을 떴다. 유식하고 무식하고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억눌려온 '모럴'에 저항했고 또 그토록 가혹한 고문을 감당해냈으며 사지를 찢기우면서도 웃으며 죽어갈 수 있었다. 즉 교리엔 무식하면서도 신앙심이 깊었던 것은 한국 여성이 당한 사회적 구속에 대한 반발이요 저항이었다. 천주학은 말하자면 그 레지스탕스에 어떤 계기를 만들어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96 이어서쪽

-최재우의 효수와 동학 탄압-
역설적이지만 서학은 물론 동학에 대한 이러한 탄압은 조선 조정이 자신들의 죄, 즉 민생을 도탄에 빠트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걸 시사하는 건 아닐까? 민생을 도탄에서 건져낼 수 없는 무능이, 언제든 민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 제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망국의 씨앗이 싹트로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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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대야에서 토종닭을 사와서 백숙을 하신다고 하시길래 내가 한댔더니 비위생적인 표정을 지으면서(그런 표정이 있다면!) 저리 가라는 손짓을 하셨다. 방에 들어와 음악 틀어놓고 백년 정리해도 정리될 기미가 안 보이는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탁, 탁, 닭을 토막내는 소리가 들리는거다. 다용도실을 사이에 두고 아빠에게 타전을 때렸다.

- 아빠, 백숙 닭은 그냥 넣는거 아냐? 

- 그러냐? 해본지 오래 돼서 모르것다. 

- 으, 닭볶음도 아니고 그걸 왜 토막내. 으. 

- 이왕 토막낸거니까 마저 다 토막내야겠다. 

- 아빠, 내가 한댔잖아.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는줄은 알아? 

- 몰라. 오래 돼서. 

- 그럼 왜 하신다고 한거야. 으..  

 으으거리면서 향후 3-4개월 정도 우려먹을 흠을 잡았다는 사실에 눈이 뾰족해져선 부엌으로 나갔다. 뭔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를 열자 발가벗은 닭이 훼손되지 않은 자신의 몸 그대로 물 속에 있었다. 아빠가 토막낸건 닭다리 끄트머리와 똥집 등등. 왜 거짓말 하셨냐고 하니까 그냥, 재미있잖아, 해버리신다. 으. 늙은 딸이 으으거리면서 방 밖으로 나와 한두마디 거든 다음에 들어가는 소모적이나 재미있는 일을 아빠가 놓칠리가 없다.

 탕국 끓이실거냐니까 오카이라고 하시는 울 아빠. 요리사다. 맛의 비밀은 '이거 아니면 안 돼'인 조미료에 있지만.  

 어제는 바느질을 하면서 황소만한 여자들이 넷, 다섯(여기에 옥찌도 포함시킨다니!)이나 있는데 남자가 바느질을 한다며 성토를 하시고, 오늘은 말끔하게 청소를 하는 틈틈히 자기 외의 모든 가족이 지저분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식으로 몰아갔다.

 대체로 무해하나 가끔은 짜증스럽고 견디기 힘든 가족. 전에 J님과 얘기하긴 했지만 익히 알고 있는 '행복한 가족', 'sweet house'는 신기루같은거라 거즘 당도했다고 직감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 결국 없단 소리다. 혹은 용케 나의 눈과 손과 입과 귀를 맹렬하게 피했는지도 모르고.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이란 단편집 첫 소설을 보면 딱 우리 아빠같은 사람이 나온다. 처음엔 공선옥씨가 우리집에서 아빠를 따로 취재해서 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판박이처럼 닮아있는 아빠. 소설 속의 아빠도 손 하나 까딱할 때마다 '여자들이'를 입에 달고 사셨다.  

 나의 아빠가 아니고, 나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세상 누구에게 보일 수 없는 예의와 정성을 갖고 당신들을 대했을지도 모를 여자를 딸로 갖은 나의 부모. 부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요전번에는 그간 싸이월드에 올려놓은 가족의 동영상을 엄마랑 보면서 찧고 까분적이 있다. 엄마는 우리가 누누히 엄마의 특성이라고 말해온 것들을 직접 대면했을 때의 낯섦으로 영상을 바라보다 기껏 '살쪄서 못쓰것다'란 소리만 하고선 주무시러 들어가셨다. 이제 좀 나아질만도 한데도 여전히 표현력 없는 엄마다. 기껏 해주는건 약간 미운 말. 반찬을 잘 드시는 아빠를 보고는 나물을 더 꺼내라고 부탁하면서, 

- 야야, 나물 쉬기 전에 아빠 좀 더 드려. 

 어쩜!  

 그런데 나도 그런걸. 나도 우리 엄마 딸인걸. '당신이 잘 먹으니까 내가 요리하는 보람이 있구려. 맛있게 먹어요 흠흠.' 이런건 나로선 천지개벽하기 전에는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대화법이라는걸 엄마보다 내가 더 잘 안다. 다른 가족이 부럽다. 다른 엄마 아빠 동생이 부럽다는건 오래 전에 뗀줄 알았는데 가끔 난 나 모르게 나의 가족들이 따스한 불빛 아래서 저녁을 먹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럼 좀 어떤가. 나의 가족도 여전히 나의 모든 부분을 이룬 토대로 잘, 꾸준히, 씩씩하게 살고 있는걸.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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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6-14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청승맞아.

hnine 2009-06-1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달콤하다가 슬퍼지는 것, 그게 사랑이래요?
열번 쯤 듣고 있어요.
좋은데요.

Arch 2009-06-15 22: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청승은 뷁! ^^
질베르토의 다른 노래도 참 좋답니다. 타고난거예요. 가수는,
 

 싸이월드엔 행복한 사람들만 있다. 그들은 슬프거나 우울한 얘기는 싸이월드에 올리지 않는다. 화사하고 밝은 순간, 자신을 가장 빛나게 하는 사건과 일화들만 싸이에 올린다. 어쩌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일상을 설렁설렁 적어내려가는 서재가 내겐 준싸이월드쯤 될 것 같다. 알라디너와 나는 즐찾과 가끔의 비밀댓글, 꾸준한 방문 등등으로 준일촌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외양뿐 아니라 글의 내용 자체도 내게 내재한 도발적이고 섹시하면서도 고지식한 부분보다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만 보여주려고 한적이 더 많았다. 누구에게도 어필하지 않는거라면 차라리 혼자 즐겁게 떠드는쪽이 더 낫다란 생각을 했는지, 우울할때면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먼지를 들이마시길 즐겨서 글 쓸 시간이 없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아니니까.

 나는 떳떳하다까지는 아니어도 별로 상관없을거란 생각에 동생들에게 서재를 알려준적이 있다. 옥찌들 이야기를 같이 봤으면 좋겠다란 생각이었지만 사실은 일종의 자격지심과 틈틈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동생들이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니 그저 한번 보고 말았구나 하고선 넘겼는데 지난 일요일에 나의 이중생활을 들키고 말았다. 

 가족끼리 늦은 아침을 먹을 때였다. 엄마가 있다고 다른 때보다 더 보채는 민으로 인해 가족들이 모두 예민해져 있었다. 누구 하나 민의 마음에 공감하지 않았고, 이 녀석이 또 그런다는식으로 몰아부치는 말만 툭툭 불거져나왔다. 나는 동생이 민을 좀 더 달래주길 바라면서도(난 눈꼽만큼도 아량을 보일 생각이 없으면서.) 그 전날부터 못견디게 짜증스럽기만한 아이의 존재가 견디기 힘들었다. 식탁 의자에 앉지 않고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다 다시 와서 보채고 떼를 쓰는 민을 밀치고 매를 들거라며 위협을 했다. 민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심하게 떼를 썼고, 누나까지 밀쳤다. 누적된 짜증과 서걱거리는 입 안의 밥알, 그럼 안 되는거였는데 난 좀 더 세게 민을 밀쳤다. 민은 넘어졌고, 더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동생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제서야 민을 달랬다. 그 사이에 약올리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타박하는 엄마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돌아온 막내가 한소리를 했다. 

 너무 심한거 아니냐고, 아이를 왜 밀치냐고, 알라딘에 쓴건 다 가식이라고. 

 무슨 말을 했더라. 너는 곧 떠날거라 잘 모르지만 매일 겪는 우린 힘들다고 했던가, 동생이 통제하지 못한 상황을 내가 대신 나서서 조정한다고 했던가, 관여 안 하면 그만인 너랑 입장이 다르다고 했던가... 그러다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위협을 가하고 폭력을 쓰는건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데(피해자의 폭력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이다.) 난 자꾸 내 입장을 동생에게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동생 말이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촉발된 감정 대립에서 물러설 수 없다란 생각에 더듬거리듯 우물쭈물대면서 앞으로 내 블로그엔 들어오지 말란 말만 도장찍듯 내뱉고는 방으로 숨어들었다.  

 후회되고, 미안하고, 민망했다. 양육은 모두가 같이 책임지는건데 나 혼자 옥찌들 대장노릇을 한다며, 나 자신이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돌아온 내게 아이들은 곁을 두지 않았고, 전처럼 손을 꼭잡아주며 노래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장난을 치지도 않고, 나와 같이 있는 것을 딱히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거의 1년만에 본 막내 이모를 더 따르고 좋아한다. 동생을 향한 애착은 다른 형태로 더 심해졌고, 안정과 회피 어쩌고 나름 분석을 해대지만 공감 능력조차 터무니없이 부족한 나로선 늘 제자리 걸음이었다.  

 동생 말이 맞았다.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지민이 떼쓰는걸 못마땅해하는 아빠가 더 큰 폭력으로 아이를 제압하기 전에 취한 조치라고 하기엔 과했다. 난 지민이 맘에 들지도 못하고 잔소리만 늘어놓기만 했다. (전에 hnine님 서재에서 전 잔소리 안 하는 이모인걸요, 한건 대체 무슨 객기였는지. 나도 귀가 따가울 지경인데.) 대체 뭘 믿고 통제 운운이란 말을 함부로 뱉은걸까.

 싸이월드엔 행복한 사람들만 나온다. 어쩌면 난 옥찌들과의 얘기를 통해 '행복한' 의태어를 보여주려고 기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서재에서 로그아웃한 후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충동적이고 의지박약에 못돼먹은 아치로 돌아가면서.   

 둘째는 그래도 언니가 반성하고, 다시 잘해보려고 하잖아란 위로를 해줬다. 반성도 하루이틀이지, 마일리지 쌓는 것도 아니고 반성 목록만 한무더기다. 앞으로는 반성 사절이다. 반성을 빌미로 세끼 밥 까먹듯이 고해성사를 바친 후 다시 변화없는 것보다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나와 관계를 바꿔나가야겠다.  

 휴, 별처럼 예쁘지도 않고 가짓수만 늘어나는 무수한 다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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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6-12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포 작은게 집안 내력이었고만. 애 쫌 밀쳤다고 가식은 무슨. 우리땐 빗자루로 맞는날은 햄볶았어 이것들아!

Arch 2009-06-12 02:25   좋아요 0 | URL
내가 못살아. 왕배포쟁이. 미잘, 안 자고 뭐해요!
잠 안 오면 릴레이 영월 후기도 괜찮겠다.^^

뷰리풀말미잘 2009-06-12 02:26   좋아요 0 | URL
후기좀 쓰고 싶은데 영 시간이 안 나네요. 댓글놀이나 하다 잘까 했더니 무슨 댓글 하나 다는데 20분이 걸리죠? 군산 인터넷은 느린가?

Arch 2009-06-12 02:45   좋아요 0 | URL
엄훠, 지는^^
미잘님은 1분만에 달아놨다고 지금.. 이러시는거죠?
아, 나는 미잘이 시간을 내서 후기를 쓰면 아주아주 멋지고 재미난 후기가 쑥~ 빠져나올 것 같은데 말이죠.

hnine 2009-06-12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해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도 역시 이중 생활. 안그래도 어제 남편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알라딘서재에는 hnine이라는 이름의, 나와 이름은 같으나 실체는 다른 그런 인물이 하나 있는 것 같다고. 사람의 진심은 말보다 글에서 더 풍겨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고요. 그런데 한마디 변명을 하자면, 본의는 아니었다는 것 쯤? 말보다 오히려 고르고 다듬어 쓰게 되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게하는 것 같아요. (제 아이의 소원이 엄마가 소리좀 지르지 말라는 것인데, 서재 지인들 중 많은 분들이 저는 아이에게 소리 한번 안 지르는 사람인 줄 알고 계신 분이 계셔서...이젠 정말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

Arch 2009-06-13 00:32   좋아요 0 | URL
지금 민이가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다 큰 녀석이 까꿍 놀이를 하고 있어요. 밥 먹고 근처 도서관으로 마실 나가기로 했거든요. 갔다와서 더 얘기해보아요.
휴, 다녀왔어요. 옥찌도 이모가 화내면 무서우니까 화내지 말라고 말했고, 그림 그릴 때 유독 저를 화난 표정 짓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요. 처음엔 서운했는데 오죽했으면 그럴까 싶어서 자제하고,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설명해주려고 노력해요. 육아 철학은 왜 개발되지 않았을까요. 쩝.

2009-06-12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토랑 2009-06-1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남겨주신 글 보고 서재 마실왔어요..
저두 제자식 밀쳐놓고..건 별로 반성안하다가..-_-;; 신랑이 그러는거 보고 허걱 급반성했지요..

Arch 2009-06-13 00:35   좋아요 0 | URL
마실 좋은데요.^^ 토토랑님 리하이~(이건 좀 된 용어 같아요.)
양육자가 둘인 이유가 따로 있는게 아닌가봐요.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보이는 경우가 있을테니까요. 그런면에서 막내가 직설적이었지만 여러모로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2009-06-12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6-13 00:37   좋아요 0 | URL
그럼요. 무의식중이 아니라 아주 미워서 살짝 돌 정도의 상태였어요. 어른이었다면, 타인이었다면에 대해서 생각해봐요. 그럼 아주 다른 경우가 됐을 것 같아요. 내 맘대로 해도 되는 상대란 없는데 아이들한테는 기깔난 연장자 행세를 해대니 말예요.

순오기 2009-06-1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만에 들러 무지개보고 쨍했는데~~ 바탕이 어두워서 글씨 보기 힘들어서 패스예요.ㅜㅜ

Arch 2009-06-13 23:52   좋아요 0 | URL
피이^^
 

 

산 속에 핀 도라지꽃

하늘의 빛으로 물들어 있네.

옥색 치마 여민 자락

기다림에 물들어 있네.

물들었네.

 

도라지꽃 봉오리에

한줌의 하늘이 담겨져 있네.

눈빛 맑은 산노루만

목축이고 지나가네.

 

비취 이슬 눈설미에

고운 햇살 입맞추고

저녁 노을 지기 전에

꽃봉우리가 오므리네.

 

꽃입술에 물든 하늘

산바람이 비켜가네.

꽃송이에 담겨진 하늘만

산그늘이 젖어 있네.

젖어 있네.

 

산 속에 핀 도라지꽃

기다림에 젖어있네. 우- 



 옥찌들과 시립합창단 공연에 다녀왔다. 프로젝트로 노랫말이 나오는데 너무 좋은거다. 이런 노랫말을 짓는 사람은 하루종일 도라지꽃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를 기다렸을거야,란 생각은 즉설적이고, 즉흥적이며 지극히 자의적이기까지 하다는거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이런 노랫말을 지었단 말인가. 여기에다 도라지꽃 사진까지 올린다면 주책 몇바가지는 되겠지만, 역시 아치인지라 좀 그럴거야란 생각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올린다.  

  

 노래도 듣고, 산속의 도라지꽃까지 봤으니 혹시 당신도 나도 멋진 것까지는 아니어도 코끝을 간지럽히는 몇줄의 글 정도는 적을 수 있지 않을까.

 내 맘의 강물도 어찌나 좋던지 집에 오자마자 한번 불러보려고 노래를 찾고, 악보를 찾아 보았다. 악보는 뭔가 고도의 컴퓨터 기술을 요하는 작업을 통해 닿을 수 있었고,(구매하거나 프린트 과정 자체가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러고도 컴맹은 절대 아니란다. 왜? 다운로드 받아서 프로그램 설치할 수 있다고! 클릭 몇번이면 옥찌들도 할 수 있는걸 말이다.)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는 반음이나 박자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혹시나 싶어서 안 버리고 놔둔 고등학교 때 음악책을 보니 떡하니 이 노래가 실려있는거다. 그러니까 스리슬쩍 익히고 듣고, 그때 밀쳐뒀거나 별 감흥이 없었다는건데, 이렇게 좋은걸 이제 알았냐며 불만이 여간 아닌 야심한 밤의 아치이더라.  

 가곡, 못알아들을 가사에 나로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분야.
 팝송, 대체, 왜, 굳이, 팝송이냐고.
 시, 은유법과 직유법의 세계. 가끔씩 환유법과 제유법, 주제를 찾아내는 지난한 여정. 
 옥찌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이 모든게 허물어지 듯 바뀌어버렸다. 아직 서른이 되지도 않았는데... 

 가곡의 노랫말이 좋아지고, 팝송을 외워서 불러보기도 하고, 시를 낭송하고 외우고 쓰면서 조금씩 달뜨기 시작했다. 그럼, 옥찌들에게 갖은 책임감도 과잉 의식이었지 실제의 관계는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았다. 옥찌들에게 이모가 어떨때 제일 좋냐고 물었더니 같이 놀아줄때란다. 옥찌들이 좋아하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해내면서 요즘 아이들이 나와 소원하다고 궁시렁댔다니.  

 군산의 아치, 나른하게 젖어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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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6-12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치님이 놀아줄때가 제일 좋은데.

Arch 2009-06-12 01:02   좋아요 0 | URL
자, 지금 제일 좋겠군요. 후후(건방진 숨쉬기)

뷰리풀말미잘 2009-06-12 01:26   좋아요 0 | URL
아이 건방져. ㅎㅎ

Arch 2009-06-12 01:52   좋아요 0 | URL
그 아이는 또 누구길래 그렇게 건방질꼬.

뷰리풀말미잘 2009-06-12 02:06   좋아요 0 | URL
너죠.

Arch 2009-06-12 02:25   좋아요 0 | URL
그렇군. 나군 나야... 나군에서 학군이 생각났어. 잘때가 됐다는거지.

Forgettable. 2009-06-12 09:04   좋아요 0 | URL
아 재미있다 언어유희 ㅎㅎ

Arch 2009-06-13 00:39   좋아요 0 | URL
뽀님, 미잘이 워낙에 재치있고 센스있어서 제가 얼핏 따라하기만 하는데도 이렇다니까요.

hnine 2009-06-12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라지꽃, 처음 실제로 본 날, 놀랐어요. 생각보다 너무 예쁜거예요. 그 단순한 형태와 (그래서 그리기도 쉽잖아요)색깔로도 그렇게 눈에 확 들어올 수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arch님에게는 확실히 아티스트 기질이 있으신듯 ^^
(시 낭송 또 안 올리세요??)

Arch 2009-06-12 19:50   좋아요 0 | URL
저도 깜짝 놀랐어요. 게다가 가사는 정말 아, 너무 멋져요. 뒷북이 확실하겠지만.
아티스트? 이잉~ 재가공쪽에 가깝죠. 요즘 김두식 교수의 책을 보다가 질적 연구가 나랑 참 잘 맞겠다란 생각을 하긴 했는데. 창작은 참.
시낭송, 잇히^^

프레이야 2009-06-1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라지 꽃 저 색깔 넘 예뻐요.
좋은 공연 갔다오셔서 나른하게 젖어드셨어요? ^^

Arch 2009-06-12 19: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네에, 나른하게 푸욱 젖어들었어요. 정주지로서 군산에서 전 더 많은 문화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