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대야에서 토종닭을 사와서 백숙을 하신다고 하시길래 내가 한댔더니 비위생적인 표정을 지으면서(그런 표정이 있다면!) 저리 가라는 손짓을 하셨다. 방에 들어와 음악 틀어놓고 백년 정리해도 정리될 기미가 안 보이는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탁, 탁, 닭을 토막내는 소리가 들리는거다. 다용도실을 사이에 두고 아빠에게 타전을 때렸다.

- 아빠, 백숙 닭은 그냥 넣는거 아냐? 

- 그러냐? 해본지 오래 돼서 모르것다. 

- 으, 닭볶음도 아니고 그걸 왜 토막내. 으. 

- 이왕 토막낸거니까 마저 다 토막내야겠다. 

- 아빠, 내가 한댔잖아.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는줄은 알아? 

- 몰라. 오래 돼서. 

- 그럼 왜 하신다고 한거야. 으..  

 으으거리면서 향후 3-4개월 정도 우려먹을 흠을 잡았다는 사실에 눈이 뾰족해져선 부엌으로 나갔다. 뭔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를 열자 발가벗은 닭이 훼손되지 않은 자신의 몸 그대로 물 속에 있었다. 아빠가 토막낸건 닭다리 끄트머리와 똥집 등등. 왜 거짓말 하셨냐고 하니까 그냥, 재미있잖아, 해버리신다. 으. 늙은 딸이 으으거리면서 방 밖으로 나와 한두마디 거든 다음에 들어가는 소모적이나 재미있는 일을 아빠가 놓칠리가 없다.

 탕국 끓이실거냐니까 오카이라고 하시는 울 아빠. 요리사다. 맛의 비밀은 '이거 아니면 안 돼'인 조미료에 있지만.  

 어제는 바느질을 하면서 황소만한 여자들이 넷, 다섯(여기에 옥찌도 포함시킨다니!)이나 있는데 남자가 바느질을 한다며 성토를 하시고, 오늘은 말끔하게 청소를 하는 틈틈히 자기 외의 모든 가족이 지저분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식으로 몰아갔다.

 대체로 무해하나 가끔은 짜증스럽고 견디기 힘든 가족. 전에 J님과 얘기하긴 했지만 익히 알고 있는 '행복한 가족', 'sweet house'는 신기루같은거라 거즘 당도했다고 직감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 결국 없단 소리다. 혹은 용케 나의 눈과 손과 입과 귀를 맹렬하게 피했는지도 모르고.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이란 단편집 첫 소설을 보면 딱 우리 아빠같은 사람이 나온다. 처음엔 공선옥씨가 우리집에서 아빠를 따로 취재해서 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판박이처럼 닮아있는 아빠. 소설 속의 아빠도 손 하나 까딱할 때마다 '여자들이'를 입에 달고 사셨다.  

 나의 아빠가 아니고, 나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세상 누구에게 보일 수 없는 예의와 정성을 갖고 당신들을 대했을지도 모를 여자를 딸로 갖은 나의 부모. 부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요전번에는 그간 싸이월드에 올려놓은 가족의 동영상을 엄마랑 보면서 찧고 까분적이 있다. 엄마는 우리가 누누히 엄마의 특성이라고 말해온 것들을 직접 대면했을 때의 낯섦으로 영상을 바라보다 기껏 '살쪄서 못쓰것다'란 소리만 하고선 주무시러 들어가셨다. 이제 좀 나아질만도 한데도 여전히 표현력 없는 엄마다. 기껏 해주는건 약간 미운 말. 반찬을 잘 드시는 아빠를 보고는 나물을 더 꺼내라고 부탁하면서, 

- 야야, 나물 쉬기 전에 아빠 좀 더 드려. 

 어쩜!  

 그런데 나도 그런걸. 나도 우리 엄마 딸인걸. '당신이 잘 먹으니까 내가 요리하는 보람이 있구려. 맛있게 먹어요 흠흠.' 이런건 나로선 천지개벽하기 전에는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대화법이라는걸 엄마보다 내가 더 잘 안다. 다른 가족이 부럽다. 다른 엄마 아빠 동생이 부럽다는건 오래 전에 뗀줄 알았는데 가끔 난 나 모르게 나의 가족들이 따스한 불빛 아래서 저녁을 먹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럼 좀 어떤가. 나의 가족도 여전히 나의 모든 부분을 이룬 토대로 잘, 꾸준히, 씩씩하게 살고 있는걸.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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