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내린 눈이 녹아도 흔적 없이 녹을 때지만 그늘진 곳엔 여전히 눈이 쌓여있었다.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미끄러울 수도 있으니 눈을 치우자는 얘기가 나왔다. 바람이 차다. 차도 너무 차 칼바람이라고 한다. 뜨뜻한 아랫목에서 그깟 빙판쯤이야 하면서 지지고 싶은 날이다. 과장님까지 움직이니 아랫목 타령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2년 전의 나였다면 안 할 궁리를 하며 딴청을 부렸을 것이고 1년 전의 나였다면 일을 하면서도 시종일관 궁시렁댔을 것이다.
온갖 장비들이 동원됐다. 삽, 괭이, 부삽, 쟁기. 도구들은 생김새와 쓸모가 다르건만 오로지 얼음을 깨는 용도로만 쓰였다. 삽을 눕혀서 몇번 해보다 끝으로 톡톡쳐보기도 하고 삽질하듯 얼음을 깼다. 괭이 역시 낮게 종종거리듯 얼음 위를 건드리며 균열을 냈다. 며칠 된 얼음은 이래도, 이래도 하면서 자꾸 버티며 쉽게 깨지지 않았다. 삽을 눕혀서 좀 세게 쳤더니 얼음이 조금씩 깨진다. 모여진 얼음은 싸리 빗자루로 쓸어모아 화단에 부었다. 누군가 내년 봄에 화단은 물 고플 일이 없을거라고 흰소리를 한다. 얼음 조각이 튀고 허리는 아프고 손발은 진즉 얼어 있다.
노예처럼 살기로 작정한듯 찍소리 없이 지내고 있는 누구는 미친 분노를 쟁기에 실어 보도블록까지 깰 기세로 힘을 쓴다. 누구는 왔다갔다하며 설렁설렁 거들고 누구는 계속 주말 텃밭에서 오랫동안 일하는걸 이야기하며 '얼른 칭찬해줘, 잘한다고 해줘.'란 냄새를 진하게 풍겨댔다. 내가 신뢰하는 누구는 군말없이 일하다 가끔 담배 한대 피어물고 혹은 소리를 높여 일을 시키며 계단 아래까지 얼음을 깨내려갔다. 나는 그를 신뢰하므로 그가 담배를 피든 자꾸 나보고 그래서 점심 먹었다고 할 수 있겠냐고 채근을 해대도 그런가보다 한다.
공구는 정확하다. 삽에 눈을 담아 화단에 뿌릴 때 앞이 아니라 옆으로 해서 넘겨야한다. 안 그러면 그러모은 얼음이 도로 땅에 떨어지거나 손목이 삐끗할 수 있다. 앞으로 해서 얼음을 버리다 손목의 힘줄 하나가 찌릿했다. 정교하지 않은 삽이 보내는 정교한 신호. 쟁기는 쟁기대로, 니퍼는 니퍼대로, 롱렌치는 작은 녀석이 헷갈리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쓸모만큼의 일을 한다. 소리가 이상하고 뭔가 어긋나면 문제점을 찾는다. 케이블선을 니퍼로 벗겨 스피커에서 나는 잡음을 해결하고 드릴이나 드라이버로 마무리한다.
과장님은 나보고 더 있다가는 감기 들고 여자가 할 일이 아니라며 자꾸 들어가라고 한다. 다른 분은 그거 해서 밥 먹을 수 있겠냐고 한다. 나는 다만 입 하나로 일 거들며 대단한 치하를 하는 듯 구는 사람들이 주위에 없어선지 뭐든 상관없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얼음을 다 깨고 부직포를 깔았다. 11m에 13000원이다. 누구는 싸다고 하고 누구는 공금이 아니라면 싸겠냐고 싸울 기세로 덤빈다. 누구는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고 잘 다녔으면 좋겠다하고 누구는 다시 또 눈이 오면 어쩌냐고 오만상을 찌푸린다.
다시 눈이 오면 부직포를 걷어내고 눈을 쓸어야 한다. 그 날도 춥고 손이 시려울 것이다. 하지만 비질을 하고 삽질을 하다보면 그쯤 추위야 별로 문제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