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기대했다. 강의 자료에서 읽은 것만큼이나 좀 더 세부적인 내용과 탄탄한 논리로 GMO에 대해 설명해주길 바랐다. 강사는 20분이 넘어서야 강연장에 왔다. '멀리서 오니까 그럴 수 있지. 어서 GMO에 대해 알려줘, 마구 흡수해줄테야.' 나는 엄청난 의욕을 불태웠다. 1940년대 산업화로 농약이 등장했다는 얘기부터 시작한다. 화학식이 나오고 GATT가 등장한다. 화학기업이 사회 환경적 요구로 더 이상 농약이나 화학비료의 판로를 찾을 수 없고, 새로운 시장도 없자 생명공학쪽으로 방향을 선회, 생산비 낮고 친환경 농사(작물 자체에 살충, 제초 성격을 넣어)를 지을 수 있는 GMO를 개발하게 됐다는데까지 설명이 끝났을 때 강의를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나있었다.


 GMO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 나온건 기본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서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과 관계를 뒤죽박죽 섞는 것도 모자라 부연에 부연, 예시까지 드느라 강의는 미치도록 질질 끌었다. MSG를 설명하는데 차이니스 푸드 신드롬 얘기가 나온다. 어떤 연관이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모든게 다 그런식이다. 드라마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주주총회, 우리사주 얘기가 나온다.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진다. 간략하게 얘기하고 생략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뻥튀기한다. 산업혁명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는걸 두고 농촌에 일손이 모자라게 해서 농약을 쓰게 하려 했다며 농약 회사들이 화학공장을 세워 도시로 사람들을 유입했다고 갖다붙인다.  


 큰 틀에서 보면 서로 통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리우 선언에서 교토 의정서, 어젠다 21과 UR에서 GATT, WTO, FTA의 연결고리를 찾을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게 GMO가 생긴 이유라면 말이다. 하지만 해석은 자의적이고 시간은 부족하고 이야기는 산만했다. 도저히 참고 들어줄 수가 없었다. 강의가 끝날 시간이 돼서 끝났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3시간을 기본으로 강의하기 때문에 시간을 안 준다면 안 왔을거라며 개의치 않고 1시간을 더 한다. 


 물론 이 분,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데도 우리나라 어떤 사람보다도  GMO 공부를 많이 했다. 문제의식과 사명감은 존중한다. 그렇지만 강의가 너무 지루하다. 혹시 내가 다 떠먹여주는 강의, 빈틈없이 준비된 설명만 바라는걸까. 내가 뭔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문제인걸까. 아니면 처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걸까. 다시 책을 봐도 강의의 잔상이 남아있어서인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책도 강의와 다를바가 없다.


 무르지 않는 GMO 토마토 '플레이보세이브 토마토'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고 과정을 거친다.


 

GMO 토마토가 상품성이 없어져 더 이상 종자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일상생활을 예로 든다. 토마토 1킬로그램을 살 경우 하루면 다 없어진다. 하지만 대형할인점에서 5킬로그램짜리를 발견하면 더 싸고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먹으면 되니 많이 산다. 이렇게 산 토마토는 수십 번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일반 냉장고에서는 오래가지 못하니 채소와 과일을 오래 보관하기 좋다는 김치냉장고를 산다. 냉장고가 두대면 전기요금이 올라간다. 전기를 많이 쓰니 할증이 붙고 싼값에 장을 봤다 하더라도 아낀 돈이 결국 전기요금으로 나간다. 

 '게다가 냉장고가 늘어나면 그만큼 음식을 더 사게 된다. 결국 대용량 토마토는 더 많은 야채나 과일을 팔고 덤으로 냉장고까지 팔아주는 2중의효과를 기업에 안겨준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인 셈이다. 이것이 토마토에 숨은 진짜 가치이다.'


 이게 뭔가. GMO 토마토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를 얘기하다 토마토의 숨은 진짜 가치로 결론을 맺는다. 이게 토마토의 숨은 가치인지 남들처럼 김치냉장고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 맘 때문인지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나는 그보다 더 심한 논리적 비약과 은폐와 딴짓을 수도 없이 벌여왔다. 하지만 이건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사서 보는 책이다. 게다가 강의는 또 어떤가.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다 필요한 얘기니 참고 들으란  태도도 별로였다. 알고 있는걸 제대로 설명할 줄 모르고 알려고 하는 것 만큼이나 전달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것도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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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05-1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저는 요즘 우유대신 두유를 먹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다가 두유가 온통 GMO콩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어요. 세상에 GMO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어요. 네. 결국 한살림 두유 주문했어요. 엉엉. ㅠㅠ 근데 토마토의 숨은 가치라니 빵터짐 ㅋㅋㅋㅋㅋ 표지에는 왜 못그림이 있는건지 궁금해요.

Arch 2012-05-10 17:36   좋아요 0 | URL
GMO 콩이 아니어도 두유에 나름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더라구요. 이걸 먹어, 말어. 먹을 때마다 고민이에요. 한살림 두유는 시중 제품보다 2배 더 비싸더라구요. 약과 사다가 이것저것 샀더니 금세 몇만원 나와서 후덜덜.

혼자 공부해서 그런지, 원래 전공이 아니어서 그런지 너무 광범위하고 맥락없고 이것저것 다 갖다붙여서 쉬이 피로해졌어요. 못그림은 GMO를 먹느니 못을 먹겠다. 이런게 아닐까 싶은데.

다락방 2012-05-1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치, 공부하는 아치. 히히.

Arch 2012-05-10 17:37   좋아요 0 | URL
나 공부한다고 좋아하는 다락방, 우리 다락방~ ^^ 강의 완전 기대하고 기대했는데 잉~

Arch 2012-05-1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povertymatters.net/4950881
강의 요약본

nada 2012-05-1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마토의 숨은 가치.. 정말 빵 터지네요.ㅋㅋ
근데 논리력이 떨어지는 저는 앞의 GMO 토마토 이야기는 어느새 잊고
뒤에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확률이 놓아요.-.-
아치님은 은근 논리적이라니까.

유머가 곁들여진 강의는 좀 산발적이어도 괜찮던데.
지루한데다 산만하기까지 했다면, 앉아 있기 괴로웠을 것 같아요.

텃밭 농사랍시고 조금 지어보니, 종자의 중요성을 알 것 같아요.
시장에서 사는 모종도 이게 근본이 어떤 녀석일까.. 를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Arch 2012-05-11 11:5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럴뻔 했는데 3시간 강의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은근논리아치? ^^

정희진 선생님 강의가 그래요. 따로 큰줄기를 파악 못하는데도 되게 재미있어요.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게 아닌데, 강의도 선천적으로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아, 다음 까페에 씨드림이란데가 있어요. http://cafe.daum.net/seedream
저는 자주 가지 못했지만 토종종자를 나눠준다고 해요. 모종보다 직파, 이런 얘기를 들어선지 나중에 아담한 텃밭 농사를 한다면 직접 씨를 뿌려서 지어보고 싶어요.

산나물 2012-07-12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충격입니다. ^^;;; 저 얼마전에 김은진 교수님 강의듣고 감명 받았었거든요. 정말 아는게 많은 분이구나.. 전체를 보실줄 아는구나...(근데 좀 얘기가 기네..) 요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맞아요. 아치님 말씀 들으니 그렇기도 하네요. ^^ 전 이말들으면 이말같고 저말들으면 저말같은 사람이라.. ㅎㅎ 근데 도저히 덧글을 안달수가 없어서요. 새로운 시각.. 감사합니다 ^^

Arch 2012-07-16 11:29   좋아요 0 | URL
아! 산나물님, 반가워요.

그분 강의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아요. 저랑 맞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 GMO 전문가에게 강의를 듣는다고 책까지 준비하고 귀를 쫑긋 세웠는데 기대보다 별로여서 실망한 것 같아요. GMO에 관심 있다면 '먹지마세요 GMO'란 책을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