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착할수록 기대할수록 욕망은 미친 듯 몸뚱이를 불리기 시작한다. k팝 스타를 보고 싶은 마음은 쥐알만 했는데 노트북의 다운과 애플 컴퓨터로는 도저히 다운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빵빵 터져주자 오로지 그것 하나만 보길, 그게 단 하나의 소원인양 애면글면한다. 스도쿠 한판을 4분 안에 끝내길, 테트리스로 달이 되고 별 등급이 되길 바란 것처럼 무용하고 모자란 욕심들이 끝도 없이 늘어진다.
* 예전 페이퍼를 보면서 이건 좀 숨기고 여긴 고치고 이건 아예 없애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깝다. 짧든 길든 잘 쓰든 못쓰든 몇년 전의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페이퍼를 단촐한 서재로 만들 생각으로 없앤다는게. 혹시 아는가. 예전 페이퍼에 반해 매일같이 서재를 들락날락하며 글을 읽고 있을 사람이 있을지.(망상이 심각한 수준) 하긴 요즘처럼 뭘 끄적여도 재미가 없는 글만 쓰는 때에는 그나마 예전 페이퍼-자꾸 예전예전하니 한 오백년 서재질을 한 것 같음-라도 있어야 면목이 설지도.
* 다시 심리게임 이야기.
a랑 오만가지 이유로 싸우면서 심리게임이 자꾸 생각나 이건 또 어떤 게임인가 골똘하게 된다. 예컨대 a가 내게 귀염을 떨 때 나 역시 그의 귀여움에 맘과 몸을 한껏 열어젖히면 아무 문제가 없다. 헌데 귀찮거나 갑자기 '나는 누구인가'에 빠져있을 때, 배가 고플 때, 피곤에 쩔어있을 때는 게임이 시작된다. 같이 맞장구 치거나 더한 귀여움으로 상대의 오바를 사전에 막는 방법도 있지만 그마저도 내키지 않는다. 훠이훠이하거나 내 기분을 짧게 말하면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너 잘 걸렸다' 게임을 하려고 폼을 잡기 시작한다.
왜 너는 내 기분 하나 못맞추냐(그건 아무도 못맞출거다)에서 시작해 왜 자꾸 라면을 먹는지, 쓰레기를 누가 버리는가란 문제까지 후다닥 배열을 정렬해 공격 태세를 갖춘다. 급기야는 애먼 까뮈를 누가 챙기냐, 우리에게 미래가 있냐까지 나오면 슬슬 a도 '보자보자하니 누굴 보자기로보나' 게임을 할 준비를 한다. 이때 내가 심리게임을 잘한다면 한숨을 푹 쉬며 그만하자고 할 텐데 나는 a를 도발하고야말고 결국 서로 상처를 받는데까지 이르고 만다.
심리게임의 강점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하는 말과 행동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게 하는 점이다. 다만 그런다고 내가 사람들을 더 잘 대하거나 심리게임을 잘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심리게임의 문제는 게임하는 사람들 사이의 진심이 보였을 때, 게임이 아니라 진짜 싫어서 짜증을 내고 맘이 식어서 토를 달기 시작할 때 생긴다. 이럴 때는 내가 무슨 게임을 걸든 상대가 독창적인 게임을 생각해내든 백전백패. 게임의 '게'자도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부정과 윽박지름의 심리게임 대신 진심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일이다.
심리게임 책에 대해 얘기할 때면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란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또 책은 제대로 읽지 않는다. 맨날 화이트 부인과 화이트씨 얘기만 읽는 듯.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대화가 통하는 사람. 얌체같지 않고 어느 정도 눈치 있는 사람. 과장 화법을 지양하고 자기 얘기만 늘어놓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랑만 얘기하고 싶다. 이렇게 사람을 가려서 사귀니 친구가 별로 없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도 소신을 힘껏 발휘하는 모난 부분 때문에 다른 사람과 껄끄러운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까칠함을 적대시하며 어떻게든 조직의 일원으로 만드려는 이곳의 부드러운 압력 덕분에 나는 차라리 눈을 감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박수를 치면 정력에 좋다는 말을 하며 고등학생들의 박수를 독려하는, 성장기의 청소년은 오로지 생식기능만 있다는 듯 구는 선생이란 작자에게는 (강의 맥락과 상관없이 걸그룹 동영상을 보여주며, 열정이 보이나요, 가슴이 좋나요. 이러고 있다) 좋은 낯으로 못대할 것 같다.
이런 글을 쓴 건 다 이 책 때문이다.
감정에 대해 얘기하며 다른 사람의 맘에 안 드는 점을 참을줄 모르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배척된다는.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이 문제로 고민할 것이다. JJ 말대로 계속 비슷한 문제가 찾아온다.
* 카펫이며 소파에 오줌과 똥을 싸대는 까뮈(까매서 까미인데 까뮈란 이름이 더 좋길래)에게 며칠 목끈을 매서 일정한 반경에서만 움직이도록 했다. 목끈이 있는데도 식탐을 못이겨 먹는 소리만 들리면 목이 아플 정도로 팽팽하게 당기길래 어제 저녁에는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잘 매지지 않는 어깨끈으로 바꿔줬다. 오늘 아침, 밥 먹을 준비를 하며 꼼지락대는데 까뮈는 꿈쩍도 않는거다. 식사 준비를 마치고 먹으려는데 말끔한 얼굴로 기지개를 쭉 피며 까뮈가 이불 속에서 나왔다. like a virgin처럼
어깨끈은 이불 속에 팽개쳐져 있었다. 어떤 반전보다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