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글쟁이로 꼽히는 데이비드 세다리스. 데이비드 세다리스의 전설은 시카고의 작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자신의 일기를 읽어주는 데서 시작되었다. 어처구니없는 그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볼륨을 높이며 빵빵 웃음을 터뜨렸고, 결국 '세다리스 타임'은 전국 방송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전 세계인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는 20주 동안이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전 세계 300만 부가 판매되는 등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에세이집이다. 이 작품집에는 일상의 시시콜콜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세다리스 특유의 유쾌함이 잘 녹아들어 있다. 뉴요커들과 파리지앵들을 모독하는 즐거움, 위선적 교양을 거부하는 세다리스의 가족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알라딘 책소개 중

 씨네21에서 즐겨보는 이다혜의 도서 소개에서 봤을 때는 시큰둥했다. 화장실 유머는 너무 지독하잖아! 그런데 얼마 전 다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한겨레21에서 봤던가. (그런데 왜 다 21이지?) 이다혜씨가 다른 동료에게 이 책을 소개했는지 아니면 출판사의 홍보력이 대단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잡지에서 다른 것보다 도서 소개를 먼저 보고 요 근래 두개의 잡지를 자주 봤다고 치더라도 두번이나 노출되는건 우연으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좀 그렇다. 게다가 에세이 아닌가. 
 아래 두 책만큼 재미있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책이 달랑 두권이라는건 좀 별로다. (재미있는 책 좀 추천해주세요!)

 

 

 


 '지식채널e'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개인적이고 사소한 보고서. 김진혁씨의 책이라 기대했는데 지식채널 시리즈에서 보아온 감성지식 이야기는 없다. 다만 저자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겪은 일과 깨달아가는 과정이 나온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 각각 다른 입장을 갖고 있지만 보편적인 감성에선 누구나 차이를 뛰어넘어 동의할 수 있다는 점, 진짜 슬픔을 고민하다 소외된 이들을 다룰 때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아야겠다는 것 등등. 분노가 문제의식으로 바뀌면서 무기력한 감정에 대해 다룬 다음의 내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이 불편하다며 '남의 일'에 외면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분노가 감정적 배설로 끝나지 않고 이성적인 ‘문제의식’으로 자리 잡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고민 끝에 알게 된 것이, 분노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으면 쉽게 배설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후 소외를 낳는 배경을 거론할 때 절대로 몇몇 가해자를 직접적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꼭 지목해야 할 경우에도 가해자를 내용의 ‘주인공’ 자리에는 놓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는 ‘화풀이’의 대상을 명확하게 찾기 어렵게 되고, 그처럼 배설되지 못한 감정과 에너지는 문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쓰인다. 결국 자기가 느낀 감정에 대해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제작진은 그처럼 시청자가 분노를 문제의식으로 승화시킬 준비가 됐을 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구조적 문제 한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다 승화되지는 않는다. 일부 분노는 승화되지도 못하고 배설되지도 못한 채로 내면에 남는데 그건 일종의 ‘무기력함’일 것이다. 아무리 문제의식을 가져봤자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는 데서 느끼는 절망 말이다. <지식채널e>를 보고 느끼는 ‘먹먹함’이라는 감정도 바로 이게 아닐까. 그러나 이 ‘무기력함’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은 다름 아닌 소외된 이들이 체험하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소외된 이들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그 입장에서 그들이 느끼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무기력함을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체험할 수 있다. 소외 문제에 있어서도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 경험하는 것이 훨씬 나은 법이고, 이는 문제의식이나 비판의식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핵심적이다.

 
   

   '진짜 할바를 찾아서'는 물론이고 근사한 음식보다는 소박하고 추억이 담긴 음식 얘기를 하는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은 재미있다.     

 그 중에서 특히 괜찮았던건 동화에서 나온 음식 얘기를 하는 부분이었다. 분명히 어렸을 때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문고판으로 읽은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이디가 염소젖을 먹는 부분은 기억이 안 나는거다. 다행히 펭귄문고에서 적은 단어로도 하이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었다. 나무에서 나는 바람 소리를 듣고, 밤하늘을 보길 바란 하이디. 하지만 눈을 뜨면 할아버지네 집이 아닌 프랑크푸르트였다.


He carried Heidi up to her bedroom and put her on the bed.
"You're all right now." he said.
"Tell me, child, Where did you want to go?"
"I was at home, in grandfather's house" said Heidi
"I could hear the wind in the trees, and I wanted to look at the night sky. So I ran to the door and opened it. I do it every night. But when I wake up, I'm here in Frankfurt"

 다시 돌아온 하이디는 염소젖을 먹고 세상에서 이것보다 맛있는건 없다고 했는데, 염소젖을 직접 먹어본 요네하라 마리에 의하면 비린맛이 강해서 그다지 맛있는줄 모르겠다고 했다.

Heidi drank her milk and said,   "Nothing in the world is as good as our milk."

 이 두 구절이 좋았던건 (얇지만 영어로 된 책을 끝까지 읽은 기념은 예외로 하고) 하이디가 피터네 할머니를 생각해서 흰빵을 몰래 숨긴거며 알프스의 할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는 맘이 한 단어씩 또박또박 읽혔기 때문이다. 만약 한글로 된 동화를 읽었다면 이만큼 좋지 않았을 것 같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1-04-15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리풀말미잘님이 '개콘보면서도 안 웃는 인간이 이 책을 보고는 웃었다'라고 극찬을 하기도 한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는 저는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책까지는 아니었는데, 아치는 정말 좋았는가봐요. 자주 언급하네요. '죠반니노 과레스키'의 [까칠한 가족]을 추천해주고 싶은데, 아치 그 책 벌써 읽었네요. 그런데 내내 읽겠다고 결심했던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아직 안읽었죠? 그거 진짜 웃겨요. 재미있어요. 이 참에 꼭 읽어봐요, 아치.

아치, 원서 읽는 여자로구나. 멋지다.

저기, 저 위에 [나도 말 잘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궁금해요. 나도 읽어볼래요.

Arch 2011-04-15 12:05   좋아요 0 | URL
다락방은 그걸 어떻게 다 아는거죠?
네~ 까칠한 가족은 정말 '읽었는데' 재미있지 않았어요. 빌 브라이슨의 책도 읽었는데 미국 횡단기는 괜찮았지만 '나를 부르는 숲'은 잘 기억이 안 나요. 다들 너무 재미있다고 해서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봐요.

오, 다락방 원서라니요! ㅋㅋ 단어 몇개 안 되는데 완전 웃기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원서 읽는 여자라고 자랑하고 다녀야지~

네, 저도 읽어보려구요!

hnine 2011-04-15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위한 스테이크>는 재미있으면서 저에게는 페이소스도 함께 안겨 준 책이었고 '세다리스'의 책은 재미있어요. 말씀하신 그대로 뉴요커들과 파리지앵들을 모독하는 즐거움, 위선 꼬집기, 허세 까발리기가 주특기이지요.
다른 책들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고요.

Arch 2011-04-15 12:09   좋아요 0 | URL
책이 재미있다는건 몇개의 구절, 어느 부분에 한정된 것 같기도 해요. 돌이켜보면 저는 전에도 말했던 것 같지만 '개를 위한 스테이크'에서 개가 나온 부분보다 국제통화를 하는데 아이가 유치원에서 생긴 일을 말하는 그 부분 있잖아요. 그게 재미있었어요. 역시 재미는 작정하고 웃기려는 것보다 가감없이 상황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hnine님, 어떤 페이소스였는지...

읽으셨군요! 저는 책 소개 때문에 더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아, 너무 기대하면 안 되는데~

hnine 2011-04-15 21:23   좋아요 0 | URL
음...개를 위한 스테이크를 읽으면서 나오는 웃음과 세다리스의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웃음이 같지 않았거든요. 개를 위한 스테이크를 읽으면서 나오는 웃음이 어딘가 허탈하고 씁쓸한 웃음이었다면 세다리스의 책을 읽으면서의 웃음은 그야말로 '푸하하~~' 웃음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표현력이라니 참...(귀엽게 봐주세요~~ ^^)

Arch 2011-04-16 18:13   좋아요 0 | URL
아, 더 기대돼요. 이 갈증을 뭘로 풀어야할지...

치니 2011-04-15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 e의 고민은 정말 우리 모두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구나.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굳이 책으로까지야, 이런 생각이었는데.

21을 다들 붙인 이유는 다소 싱겁지만 21세기라서 그런 거 아닐까 싶구요. ㅎ

Arch 2011-04-15 12:12   좋아요 0 | URL
아, 그런데 적극 추천하는 책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식채널e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과정이었는지가 궁금하다면 읽어도 좋은데 제가 인용한 부분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차지하는게 아니라서.
책 소개는 정말 어려운거군요. 차라리 이 책 관심있어요! 이러는게 훨씬 맘 편할 것 같아요.

싱거운 그 이유가 정말 이유일 것 같아요.

nada 2011-04-15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식견문록>에서 할바 이야기가 제일 인상 깊었어요.
할바란 이름도 좋지만, 터키꿀엿, 이렇게 불러도 꽤 귀여운 느낌이 들어요.ㅎㅎ

어릴 적 <소공녀>의 세라 방에 하나둘 채워지는 탐스런 물건들과 점점 훈훈해지는 방에 대한 묘사가
완전 황홀하고 달콤했던 기억이 나거등요.
그래서 원서를 사서 읽어봤는데, 그 느낌이 안 나는 거예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늙어버려서 그런가 봐요.
아치님은 저랑 반대네요. 원서가 더 좋으셨다니.

하이디가 피터네 할머니를 생각해서 흰빵을 몰래 숨긴거며 알프스의 할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는 맘이 한 단어씩 또박또박 읽혔기 때문이었다.
<-이 문장 완전 사랑스러워요.ㅎㅎㅎ

Arch 2011-04-16 18:19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까 할바란 단어도 참 좋았어요. 저도 꼭 한번 먹어보고 싶은 맛이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 박복했던건지 그런 기억이 별로 없어요. 소공녀도 언제 한번 도전해봐야지!(불끈)꽃양배추님 원서라고 하니까 자꾸 웃겨요. 왜냐면 이 책은 비기너들을 위해서 몇개 안 되는 단어로 지은 책이거든요. 아마 원래 지었던 책을 읽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거에요.

그 말은 과장님 칭찬에 단련된 저라도 왠지 쑥쓰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