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과에서 일하는 분들은 기본급이 적다며 ‘일상적으로’ 초과 근무를 한다. 같은 과여서이기도 하고,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은 최저 수준이라 나도 덩달아 회사에 눌러붙어있다. 이렇게 페이퍼를 쓰면서. 양심이란게 있다면 자그만 흠집이라도 난걸까. 몇 주 이러고 있어 익숙해질만도 한데 아직도 불편하다. 집단 파업이라도 해서 우리의 입장이란걸 보여줘야하는건 아닐까.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못하고 까라면 까라는대로, 움직이고 있다. ‘대물’의 고현정처럼 ‘나는 거수기가 아니에요, 나는 앵무새가 아니에요, 진실을 알아겠어요’라고 당차게 말하는건 꿈도 못꾼다. 왜냐면,

 나이 들면 다 그래서이기도 하고, 풍족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내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된지 얼마 안 된데다 지금 이곳에서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던 분들의 친밀감은 ‘지금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나’란 회의를 부채질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끈끈하다. 괜찮아, 일부러 그러는건 아닐거야, 좀 친해지면 나아지겠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참견하며 귀찮게 하는 것보다 이편이 더 나아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번씩 겪는 일들에 눈물이 핑 돈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서러운건 서러운거고, 이런 일들이 쌓이다보니 그동안 내가 사회성 없다고 징징댔지만 그건 별게 아닐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내게 일정 정도의 관심을 보이고, 먼저 손 내밀면 뜨겁게까지는 아니어도 습관적으로나마 손 내밀던 사람들과 있었던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요즘 들어 자꾸 J씨가 보고 싶다. 그는 먼 나라에서 잘 살고 있을까. '광년'이의 ‘광’은 미칠 광이 아니라 '빛광'이었던게 아니었을까.

 낯선 도시의 적응 안 되는 회사에선 초과 근무를 하거나 회식을 할 때마다 고기를 먹는다. 고기를 안 먹다보니 못먹게 되어버린 난 버섯이나 마늘을 구워 먹는다. 마늘을 너무 먹어 이제는 사람이 될 지경이다. 어제도 마늘과 파절이, 고추까지 몽땅 먹고선 집으로 돌아오는데 후우, 숨 쉬는 냄새에 아찔해지고 말았다. 이런 순간 아찔하고 말다니. 기습 키스를 한 것도 아닌데.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내 정체를 드러내주는건 남들의 시선과 남들의 시선에서 부딪혀나오는 나에 대한 생각일지 모르겠단 것. 듣고 싶은 말은 일은 절대적으로 조금 하는데 월급은 제일 많이 가져가는 상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원래 그게 맞는거 아니냐며 여유 가지며 일하는게 더 괜찮은거 아니냐는 친구의 말. 오랫동안 직장에 있어야 하는데도 월급을 얼마 못받는 내 처지를 개선해야한다는 친구의 말. 올드독의 TV 살롱 카툰에 나온 정성일씨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우정으로부터 진리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가능성을 공유하려는 것이다.'란 생각까지 스치면 이 친구랑 다시 연락이 된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얼마쯤 실감하게 된다.

 저녁마다 목욕을 하고 몸의 그늘진 부분까지 말리고 나면 건조해선지 이곳저곳이 간지럽다. 로션을 바르기 귀찮다며 간지러운 곳을 건성 건성 긁적거린다. 얼마간은 괜찮다 긁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면 다시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긁어댄다. 결국은 가려운 데가 빨갛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사정을 봐주지 않고 긁고 나서야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하는 일은 대체 어떤 간지러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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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11-0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어느 도시에 있는건가요? 광주? 전주? 어쩐지 주로 끝나는 도시에 있을 것만 같은 예.감. ㅋㅋㅋㅋ
나는? 나는?? 먼나라 살고 있는 나는? ㅋㅋ 안보고 싶나요? 흥

일은 조금하는데 월급은 많이 가져가는 상사.
우연히도 나도 오늘 친구랑 그 이야기했어요. 친구는 그건 타파해야 할 지점이 아니라 지향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하는 얘길 하더군요. 모든 사람이 동사무소 직원처럼 널널하게 일하며 적당한 월급을 받는 거, 상사처럼 조금 일하고 돈은 많이 받는거. 그렇게 되면 참 좋겠죠.

나의 오늘 저녁 메뉴는 콩나물국, 두부조림, 샐러드, 생선구이였어요. :)
난 아직 못먹는 지경은 아니고, 가끔 무척 고기가 당기면 먹지만 나도 요즘 많이 안먹고 있어요.

Arch 2010-11-09 16:04   좋아요 0 | URL
치이~ 어떻게 알았지! 캐나다 가서도 사그러들지 않은 뽀탐정의 기운이라니. 뽀는 가끔 보고 싶어요. 자주 보고 싶으면 속상하잖아요.

내 얘기가 그 얘기였어요. 그런데 복문에다가 두서가 없어서 뭔소린지 못알아먹게 된거죠. 에잇! 널널하게 일하면 좋겠어요.

버라이어티한 식단인데. 저는 도통 고기가 안 당겨요. 물고기 눈을 봐버려서 생선탕을 못먹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막 만두는 먹고, 오징어 눈도 먹고. 풍신난 것 같아요.

다락방 2010-11-0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도 고기 못먹고 뽀도 고기 잘 못먹고 미잘은 잘은 모르겠지만 고기를 안먹는 것 같고
아! 역시 나만 육식녀인가요. 난 왜이렇게 육스러울까.. 그런데 너무 고기 먹는 남자는 싫어요.

전 가끔 진심으로 내가 일은 안하면서 월급을 너무 많이 가져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요. 월급이 많아서가 아니라 늘 빡세지 않아서요. 이런 얘길 하면 친구들은 아니라고 월급은 더 가져가야 한다고 하지만.. 전 무슨 트라우마나 컴플렉스로 똘똘 뭉친 사람 같아요.

어쨌든 결론은 페이퍼 좀 자주 쓰라는 겁니다, 아치.

Arch 2010-11-09 16:09   좋아요 0 | URL
'육덕지다'란 말은 '너무 마르지 않고 보기 좋고 건강한 정도로 살이 있는 몸매를 일컫는 말.' 이런 뜻이 있대요. 왠지 생각나서.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무슨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못먹게 되어버렸어요. 미잘은 차도남이라 고기 먹더라도 조금만 먹을 것 같아.

어떤 사람들은 '빡세야' 열심히 사는거라고 느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다락방은 일 조금만 하고 그 시간에 정말 빡세게 남자를 만났음 좋겠어요. 섹시한 목소리 챙겨서!

다락방의 당근은 제가 페이퍼를 쓰게 하는 힘을 준답니다.

비로그인 2010-11-0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으..
좀 맵고, 짜고, 약간 쓰고.

다음엔 덜 맵고, 덜 짜고, 약간 달콤한 <아치(님) 통신> 을 기다리겠습니다. ^^..

Arch 2010-11-11 11:06   좋아요 0 | URL
흐~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바람결님 고마워요

양철나무꾼 2010-11-1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arch님의 글들이 읽고 싶어 들어왔는데...
제가 못 읽은 새 글이 '뽀나스'로 있었네요~^^

가려운 곳에 오일을 발라 건조함을 막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다여~!!!

Arch 2010-11-18 09:52   좋아요 0 | URL
뽀나스는 정말 좋아요. 덤처럼! ^^
이제 가려움은 좀 덜해요. 고마워요. 양철나무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