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나무꾼님 덕분에 문학동네 이벤트를 하는걸 알고 있었지만, 책에 대해, 특히 소설은 더 몰라서 맘을 접었다. 헌데, 오늘 시간이 무척 남는데다 옆에서 김병만 닮은 동료가 자고 있고, 그가 뿌린 파스 냄새가 사무실에 가득해 도취할 만한 일을 찾다(헉헉.. 무슨 이유가 이리 길어!) 장바구니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 배불러라. 얼마만에 장바구니를 채우는건가.

 요즘 읽고 있는 장정일의 신간, 빌린책/산책/버린책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많이 발견했다. 장정일이 장엄한 결론이라고 말했던 아마존 인류학 보고서<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라던가 양식의 탄생을 다루고 있는 <돈가스의 탄생>, 창녀란 문구가 들어간 책을 통해 본 노년에 대한 감동적 정의란 서평에 나온 책, 일본 공산당 당원수를 급격하게 늘린 <게공선>, 더 리더에서 문맹을 다룬 부분과 연관된 <유니스의 비밀>까지. 우선 그 중에서 제일 읽고 싶은건 

 
 <돈가스의 탄생>이다. 가볍지만 계속 가볍지만 않을 것 같은 책.

 
돈가스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메이지유신이 불러온 '요리유신(요리혁명)'의 상징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1,200년간 유지되어온 육식 금기가 천황에 의해 깨지고, 빵과 같은 서양 음식이 일본에 도입된다. 서민들 사이에 남아있던 육식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문물이 조화를 이루면서 카레라이스, 고로케, 단팥빵과 같은 음식들이 등장하게 된다. (알라딘 책 소개 중)

 
필터님이 리뷰에서 인용한 구절도 재미 있다.

 서양요리를 먹으러 온 손님들은 나이프와 포크로 입안을 찔러 피투성이가 되는 악전고투를 벌이곤 했다. 고기조각을 나이프로 찍어서 함께 입안에 넣고 씹다가 빼는 바람에 입술을 베어 피를 보는 일도 있었다. 또 수프를 마시는 법도 몰라서 접시를 들고 된장국 마시듯 들이켰다가 가슴에서 무릎까지 온통 뜨거운 수프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책 속에서)

그리고 언제든 기회만 되면 꼭 보리라 생각한 최규석의 책
 달리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진심의 탐닉>에서 최규석 인터뷰의 말미에 김혜리가 그의 홈페이지 글들의 단정한 문장 얘기를 했다. 꼼꼼히 잘 씹은 생각들이 간결한 문장으로 나오는건 당연한 얘기.
 여전히 <습지생태보고서>의 몇몇 구절들은 반짝인다. '재미가 없는건 작가가 게으르기 때문이'지만 재미있기만 하고 의미가 없는 것 역시 작가의 게으름 탓이라면 그야말로 부지런한 작가가 아닐까.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보면 이 작가가 작품 초기부터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본 <4000원 인생>의 일러스트는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래서 이번 신간을 꼭 보고 싶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이 나왔다는 소리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소설을 읽을만한 시간이 부족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만큼 멋쩍은 거짓말은 없는데)게다가 그동안 은유보다는 직유가, 상징보다는 논리적인게 더 와닿아서 가벼운 단편소설 말고는 읽고 싶은 책도 없었다. 이번 이벤트를 통해 표지가 무척 인상적인 문학전집들을 일별하면서 이 중에 어떤걸 고를까 고민됐다. 댓글에도 남겼 듯이, 난 이 책들을 정말 모르니까.

 책소개를 하나씩 읽어내려가다가 이 책이 제일 맘에 남았다. 게다가 저 표지라니, 아찔하다.

 남편의 빈자리를 딸이 대신해줄 것을 기대하며 딸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간섭하는 어머니와, 그에 억눌려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보이며 욕망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출하는 딸 에리카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모녀의 비정상적인 관계 설정을 통해 어머니와 딸 혹은 여성 사이에도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지배로 인해 에리카는 사디즘뿐 아니라 마조히즘 성향도 갖게 된다.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아버지가 쓰던 면도칼로 자기 몸을 베는 행위를 통해 자해를 하는 권력자와 그 고통을 감수하는 순종적인 피지배자라는 두 가지 자아를 연출하며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드러낸다. 이런 에리카에게, 어느 날 제자인 대학생 클레머가 남성으로서 접근해오기 시작하는데… (알라딘 책소개 중)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란 물음으로 이어나가도 될 것 같은데 구판의 리뷰를 보다가 생각보다 책 읽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접하고 살짝 겁이 난다. 책을 읽고 <피아니스트>도 봐야겠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책보다 영화가 좋았고, <밀양> 역시 영화가 좋았는데 이 책은 어떨까. <한국영화 최고의 10경>에 보면 <빈집>에서 억압된 여성의 구원이란 도식을 김기덕이 어떻게 영리하게 비켜갔는지 나온다. 이 책도 비슷한 상황인데 어떻게 전개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가장 사고 싶은 책 <사랑, 그 혼란스러운> 
  이름은 어렵지만 잘생긴 독일 작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이 책에는 <사랑을 믿는 이들을 위한 위험한 철학책>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사랑이란 감정을 뇌과학에서 진화생물학, 심리학, 철학에까지 이르도록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낭만의 위험성과 현대의 사랑, 정말 남자와 여자는 다를까에서 이상화된 사랑의 도식까지 밝히는건 물론이다. 이 책은 알게 모르게 사회화된 사랑이 아니라 과연 내가 믿는 감정은 어떤건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문자를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을 준다.

 그런데 아직 이 책을 갖고 있지 않다. 도서관에서 몇번을 빌려서 읽는 맛에 푹 빠진건 거짓말이고, 생각만큼 책 읽는 진도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말 갖고 싶다.

 이렇게 네권해서 50,470원.

 독서의 계절이니까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데 그건 뭐, 이벤트 한다고 퇴근 시간 한참 지났는데 사무실에 앉아 페이퍼를 쓰는걸 이벤트 당선자 선정하는 분이 알아야 인정받고 그러는거지. (<---얘, 은근 압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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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0-19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사랑, 그 혼란스러운』 을 가지고는 있지만 읽다가 포기한 상태에요. ㅎㅎ

Arch 2010-10-20 10:51   좋아요 0 | URL
알고 있어요. 전 정말 재미있는데... 다락방이 지난번에 인용한 구절 이제야 봤는데요, 아아 그렇구나 싶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확 받아들이게 되고 그래요.

양철나무꾼 2010-10-20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다행이네요~
전 두권 읽었어요.
왠지 반은 눈 높이를 맞출 수 있을 듯 하여...^^

Arch 2010-10-20 10:53   좋아요 0 | URL
헤헤, 이게 다 양철나무꾼님 덕인걸요.

Forgettable. 2010-10-20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피아노치는 여자.. 힘드실텐데?!!! ㅋㅋ 전 다 읽었지롱요~
처음엔 엄청 힘들지만 한 2/3를 힘겹게 읽으시면 그 나머지는 훌훌 읽히더라구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체 자체도 엄청 특이해서 -_- 열심히 읽다 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를 독자에게 이해시키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될거에요.

전 감독때문에 원작이 있다는 걸 알기 전부터도 영화 보려고 했었지만 책 읽고 나서는 왠지 보고 싶지 않아져서 결국 안봤어요. -0- 앞으로도 안볼거에요.

2010-10-20 12:16   좋아요 0 | URL
음. 이 책을 먼저 읽으면 영화는 안 보고 싶어질 것 같아요. 영화를 먼저 본 저는, 책에 좀 끌리는군요. 그렇지만 2/3를 힘겹게 읽어야 한다니...^^; 영화는, 좋지만, 힘겨웠어요. 근데 생각이 가끔 나는, 뒤끝 있는 영화였어요.^^

Forgettable. 2010-10-20 10:08   좋아요 0 | URL
전 책의 내용이 영상으로 펼쳐진다는 걸 상상하니 정말.. 안땡기더라구요. 하하

원래 보기 힘든 영화가 나중에 계속 생각나죠. 그래서 미카엘 하네케랑 라스 폰 트리에 (친구랑 이 감독 얘기하는데 라즈 봉 트리얼 이라고 발음하더라고요. 그렇게 발음하는 걸까요?) 감독들을 제가 좋아하는데.. 나이들수록 볼 용기가 점점 사라져가요. ㅎㅎㅎ

Arch 2010-10-20 10:57   좋아요 0 | URL
겁주기는! 그렇지만 벌써 기대되잖아요. 이건 뭐, 이벤트에 당첨되고 나서 일이지만.

nada 2010-10-2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전 뭔가 쎄빠지게 고생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듯해요.
취직하셨군요, 아치님!
업무 시간에 글이 더 잘 써지지 않아요?ㅎㅎ
아치님 글 자주 볼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대기대.^^

Arch 2010-10-20 11:48   좋아요 0 | URL
정말 결론이 장엄한가요? 아, 책값이 너무 비싸요.

그럼요, 업무ㅜ 시간은 따로 작정 안 해도 창작 욕구가 (응?) 솟아요^^
꽃양배추님이야말로 팬들을 위해 글을 좀 써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