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고 싶지 않다.
나는 혼자 들떠 일벌이는걸 즐, 아니 잘 한다. 맨날 긁어부스럼인데 즐거울리가 없잖은가. 일년 전쯤에 경향과 한겨레에 광고를 실어주면 어떨까란 제안을 한적이 있다. 굳이 광고를 실어야할까, 내가 신문을 보면 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있었지만 같이 할 수 있고 가시적인 내용물로 자극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추진했던 터였다. 신문사에 전화를 해보고, 의견을 모은다고 했지만 실행은 커녕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 일은 가끔씩 나로 하여금 부채감을 느끼게 했다. 요즘 난 아무데서나 부채감을 느낀다. 언젠가 꿈 속에선 서재 사람이 나와 그렇게 나대더니 뭘 한거냐고 따지는걸 듣고선 아무말도 못한채 눈만 깜빡였던 적도 있다. 그런데도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신문을 구독하려고도 안 했고, 한겨레와 경향 신문이 잘 지내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사랑한다 말해놓고, 사실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사랑한건 아니었다라고 말한 옛 애인들처럼 무책임하고, 감정만 앞세운 꼴이었다.
날이 습하고, 머리가 무거웠다. 늦은 점심으로 뚝배기에 찬밥을 눌러 누룽지를 끓여 먹고 있을 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이라면 열어주지 않았을거다. 한겨레에서 나왔다길래,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날카롭게 안 봐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서 나가봤다. 아저씨 손에는 한겨레 구독 신청서가 들려 있었다. 아저씨 난 백수라구요. 아저씨는 내 눈빛을 못본척 하시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ABC집계를 하고 있는데 실구독자수를 통해서 광고비가 책정되니 이번에 한겨레 신문을 구독하라는 거였다.
누룽지가 식고 있었고, 다시 머리가 무거워졌다. 단박에 돈 들어갈 때는 많은데 난 무일푼이란 생각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에 신문을 단행본 보듯이 샅샅이 봐서 맨날 밀렸던 기억도 부수적으로 떠올랐다. 신문을 안 보면 폐지가 될텐데 종이를 낭비한단 생각도 들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서서 아저씨가 하는 미디어법이며 조선일보의 ABC 조작 등등의 얘기를 들었다. 다른 신문 아닌 한겨레란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습하고 아릴 정도로 추운 날에 광주에서 이곳까지 지원을 나왔다는 아저씨의 말을 들어서였을까. 만사 귀찮아 늘어져있던 내가 무상 구독없이 일년 보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그깟 구독료쯤 군것질 안 하고, 자전거 좀 더 타면 충분하잖아란 생각이 들었다. 한달 구독료 낼 돈도 없겠냐는 배짱도 어디선가 툭 튀어나와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흥분하고 열내고 답답해하는건 정말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막상 내 돈이 들어가고, 내가 갖고 있는걸 조금 내놓거나 덜 가져야한다는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많이가 아니고 조금만 어려워서 난 내일부터 한겨레를 보기로 했다. 한겨레를 살리거나 아주 멋진 배경이 되어줄 수는 없겠지만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독자가 되어줄거다.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임혜지씨의 말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건 나처럼 이름없는 조약돌일 경우가 더 많아왔으니까. 참, 신문 하나 보면서 거창하다. 신문 두개 구독했으면 논문 하나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걸 꼭 서재 사람들한테 말해야할 것 같았다. 이제는 아치 꿈에 나타나서 괴롭히지 말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