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직원들은 밥을 먹고 나면 나가서 운동을 한다. 그들이 하는 운동의 종목이 매번 바뀐다. -J 말에 의하면 뭔가를 즐길 정도는 되고, 어렵게 해가면서 도달할 정도는 안 되는 어중간한 실력들이라고 했다.- 난  짧은 점심 시간에 할 수 있는 놀이가 그토록 다양한 것에 놀랐다. 몇주 전엔 발족구를 한다고 거들다가 발끝에 스친 공의 감촉은 이런거구나 정도에 감탄하기만 했지, 나도 같이 운동 할 생각은 더 못했다. 공에 눈이라도 달린듯이 나만 피해가는걸 지켜볼 생각이 없었달까. 거친 숨을 몰아치며 뛰는 즐거움이나 운동 후 얼음을 잔뜩 넣은 음료수를 먹는 기분은 어떤걸까. 정말 그렇게 재미있어요? 질문을 꾹꾹 삼키며 그토록 평화로운 잔디밭에서 남자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금요일 날, 비빔밥을 먹어서 기분도 좋고 햇살은 짜릿할 정도로 따스했다. 어딘가에 엎드려 뒹글대면 딱 좋을 그런 날에도 남자애들은 부지런히 공차기를 하고 있었다. 요즘하는 운동 종목은 축구였다. 그래, 축구는 나도 어느 정도 안단 말이지. 상대편 골대에 공을 넣고, 내 골대에는 공이 못들어오게 하는거잖아. 오프 사이드니, 뭐니 하는 말에 살짝 기가 죽었지만 햇살이 너무 좋으니 상관없었다. 나도, 나도 할래요.
 사람들이 아치는 예쁘니까 깍두기를 하라고 했다. -으하하하- 예쁜 아치라 깍두기에 만족하며 열심히 움직였다. 남자들은 내가 뛸 수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바라보더니 처음 몇번은 내게 공을 넘겨줬다. 나의 예상 시나리오대로라면 넘겨받은 공을 양발로 이리저리 옮겨가며 골대에 넣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디 운동이 그렇던가. 공에 발이라도 닿을라치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튀고, 대부분의 시간은 발에 공이라도 대면 여한이 없겠다는 바람까지 생겨날 정도로 한가했다. 열심히 뛰긴 하는데-어디서 보고 배운건 있어서 공만 쫓아다니진 않는다.- 공은 늘 '내게 너무 먼 당신'일 뿐이었다.
 사람들도 처음에야 신기했지, 한번씩 조지듯이 내게 화를 냈고, 격려한다며 골대 앞에서 상대 선수를 몸으로 막으라고-공을 막으라는게 아니라- 코치했다.(이건 J씨 짓, 지도 못하면서) 주눅이 들었다 응원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나는 왜 이렇게 운동을 못할까, 해본적이 없었잖아란 생각을 하다가...... 그러는 와중에 공은 달나라로 갔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 잔디밭은 무척 넓고 뻥 뚫려 있어서 잔인하도록 맑은 가을날엔 제법 뛸만하단 생각엔 변함이 없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으로 재발행된 보통의 삶의 철학 산책을 읽고 있다. 어딘가로 떠나게 되면 요즘은 책장의 보통 코너에서 맘에 드는 보통의 책을 고른다. 이 사람은 여전하다. 읽을때마다 다른 책도 좋지만 여전히 그 전과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도 괜찮다. 나는 이 사람이 태연하게 구사하는 유머가 좋고, 사실 내겐 많은 욕망들이 있지만 -욕망이 있다는걸 부인하는게 아니라- 그게 정말 내 욕망이고, 내가 원하는건지 찔러대는 자극이 좋다. 철학 공부를 하면서 제일 답답했던건 그게 다는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쳐드는 '그래서 어쨌다는거지'에 대한거였다. 논리적이고, 촘촘한 생각이 진행되는게 어쨌다는거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보통의 책이 좋은건 지적유희를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맛볼 수 잇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왜 난 자꾸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돈 없음에 대한 위안을 보다가 S에게 물었다.
- S야, 모래 벌판에 지프차 한대가 있는 지면 광고가 있어. 그 광고가 노리는 효과는 지프차를 사고 싶다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거잖아. 그렇다면 그 광고를 보고 내가 느끼는건 보통 말처럼 사고 싶음이 아니라 지프차를 타고 어디든 가고 싶다는 자유로움인거잖아.
- 그 자체가 아이콘일 수도 있지. 스타가 입고 있는 옷이나 악세사리를 사서 스타와 동일시하고 싶은 욕구처럼 말야. 광고전략에 현혹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욕망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 보통이 제시하는 방향이라면 소박하게 살아야한다는건데 그게 가능할까. 무슨 사진을 보면 나도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던가,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그렇잖아.
- 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되니까 쉽게 포기하기도 하고, 정말 저걸 내가 원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봐.
- 똥이 마려운데 내가 똥을 싸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하고 앉았는거랑 뭐가 다르냐.
아,

 
 난 가끔 다른 사람의 서재에 엎드려서 가만히 귀를 귀울이고 눈을 크게 뜬다. 며칠 전, Turnleft님 서재에서 발견한 금쪽같은 심슨네 사이트! -심슨을 좋아하면서 한번도 사이트를 찾아볼 생각은 못했다.- 여기서 나랑 닮은 캐릭터를 만들어봤다. 아무래도 색감은 그다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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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10-1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철학산책이 절약산책으로 보여서 뭐지? 하고 계속 봤엇어요 ㅋ

Arch 2009-10-19 10:10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절약산책으로 책 하나 낼까봐~ 난 오타인줄 알았잖아!

turnleft 2009-10-19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익후 눈 가장자리로 누가 슬금 움직이는게 보인다 했더니, 아치님이 숨어 계셨군요.
심슨 사이트 저도 기억이 안 나는데요;;

Arch 2009-10-19 10:11   좋아요 0 | URL
어~ 턴레프트님이 '난 이 사람 닮았다'고 올린 그림도 있는걸요. 아치, 거기 있었구나^^

무해한모리군 2009-10-1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닮았군요.
머리 색깔 한번 바꿔봐요 어때요? ㅎㅎ

Arch 2009-10-19 10:11   좋아요 0 | URL
^^

Forgettable. 2009-10-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슨 사이트 나도 알려줘요!
아까 아침에 이 글 읽으며 공과 함께 잔디밭을 '열심히'뛰어다니는 아치님을 상상하며 혼자 웃었는데 ㅋㅋㅋ
재밌다고 댓글쓰다가 컴터가 꺼지는 바람에 안달고 까먹었군요 -_-

아치님 보러 나간건데 더 많은 얘길 못해서 아쉬웠어요. 역시 난 1:1을 해야 말을 많이 하는데 ㅋㅋ 그래도 즐거운 자리에 불러줘서 완전 고마워용 ♡

Arch 2009-10-19 17:44   좋아요 0 | URL
http://blog.aladdin.co.kr/turnleft/1487102
사이트 주소를 적을 수도 있는데 턴레프트님 모습도 보라고^^

선생 김봉두에서 귀찮아서 멀리 공을 찬 후 아이들이 정신없이 쫓아다니는 모습이랑 비슷할거에요.^^ 그 손 궁금하여라~ ㅋ

하트는 낼름~ 나도 아쉬웠어요. 다음엔 좀 더 재미난 시간을 보내도록 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