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회사에 나가면서 옥찌들을 데려갔다. 옥찌들은 좀 신이 난 모양인지 내게 몸을 부딪히며 조잘댔다. 버스 정류장 근처의 참새 나무 속 참새들처럼. 옥찌가 회사에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묻길래, 이모는 남자를 끊었다고 얘기해줬다. 그랬더니 자기 남자친구는 K라며 나도 남자 친구를 만들어보라고 부추겼다. 그래서 물었다.
- K의 어떤점이 좋아?
- 사랑해서 좋아.
- 에이, 그거 말고,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어?
- 걔가 나한테 잘해줘.
- 잘해주는게 뭔데? 이모도 좀 배우려고.
- 응, 잘 놀아줘.
동생에게 이 얘기를 해줬더니 지가(옥찌가) 더 잘 놀아주면서 괜히 그런단 얘기를 해준다. 알고보면 K는 새침떼기.
옥찌가 엄마랑 누워서 얘기를 했다.
- 옥찌는 멋지고 씩씩한 친구지. 그런데 지희가 무슨 말만 하면 울어서 엄마가 속상해. 왜 그러는거야?
- 그래야 엄마가 보니까.
- 엄마는 하난데 지민이도 보고 지희도 보려면 힘들잖아.
- 그런데 지민이는 울고 떼쓰니까 엄마가 지민일 더 많이 보지만 지희는 안 그렇잖아.
- 그래도,
(울보 옥찌가 또 운다.)
민이가 엄마랑 목욕을 하면서
- 엄마는 귀엽고 예쁜 엄마
라고 엄마 찬가를 부르길래 내가 '이모는, 이모는'이라고 물었다. 이에 질세라 나의 엄마, 그러니까 민의 할머니도 미동도 않고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나는, 할머니는'이라고 묻는거다. 당근, 우리 민은 so cool한지라 자기가 말하고 싶을때만 말을 한다. 엄마랑 나는 애타게 답을 원하다 목이 길어지고 말았다.
목욕하고 나온 민에게 진지하고 간절하게 물었다.
- 민아, 이모는, 이모는(코가 막힌 소리로)
- 이모는 내가 네살이고 누나가, 그러니까 누나가
- (옆에서 옥찌) 여섯살!
- 내가 네살이고 누나가 여섯살 때 나 꼬집었잖아.
- 응? 엄마도 꼬집잖아.
- 엄마는 엄마니까 괜찮아.
힝~ 이래저래 나랑 잘 놀다가도 엄마만 있으면 태도가 바뀌는 민. 그게 서운하고 얄미워서 엄마랑 있는 민이 어리광 피우면 버럭버럭 화를 냈는데. 이 녀석은 고작 꼬집은(그때 꽤 아팠을까, 못난 이모같으니.) 얘길 하는구나.
토요일날, 산에서 내려오며 아이들이 맛있게 바삭거리는 오징어인가 쥐포인가를 먹고 있었다. 옥찌가 뛰다가 실수로 민을 건드려 손에 쥐고 있던 쥐포인지 오징어가 떨어지고 말았다. 화가 잔뜩 난 민이 '자기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무슨 짓을 했든 싸울 때면 고정적으로 하는 민의 멘트- 누나가 와서 떨어졌다'며 누나가 놀라서 건넨 누나몫까지 땅에 떨어뜨렸다. 난 평소 같으면 민이 내는 화보다 더 많은 화를 낼 수 있다는걸 보여주려는 듯이 더 화를 냈을텐데 사람들도 있고, 이마에 써놓고 다닌 '공감'의 영향을 받아 민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 민이가 너무 화가 났구나.
- 내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누나가. 어, 어,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민)
- 아유, 그래서 속상했구나. 어쩌면 좋니. 괜찮을거야.
민을 꼭 안은 후 몇발짝도 안 돼 힘이 딸려 '두부 사려'를 한 다음에 내려놓으려고 했다. 장난에 다시 맘이 풀린 민이 손을 잡고 걸으면서 내게 다짐을 받아내려고 했다.
- 큰 이모, 집에 가서 누나 때려줘.
- 음.. 민아, 누나가 지금도 미안해하고 있는데 집에 가서 또 혼내면 누나 맘이 아프지 않을까.
- ......
지민인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 속에 있던 분노와 미움이 가라앉자 사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까지 말하는건 번잡스럽다. 민은 알고 있었던거다. 고함만 질러대는 큰이모가 지금 자기에게 어떤걸 줬고, 그걸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를. 주제파악 못하고 나 때문이란 생각을 잠깐했다. 실은 민 안에 있는 반짝반짝 씨앗 때문인데. 그래도 가끔은 껌처럼 쉬운 칭찬을 내게도 해주고 싶다. 아치, 잘했네.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