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쓴 후기 가운데 가장 쓰기가 곤혹스럽다. 내가 마련한 자리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도 뭐하고, 약간 찝찝한 기분이 들고, 역시 왜 했나 싶은 후회가 밀려오니. 그래도 혹시 하긴 한거야라며 궁금하실 분들과 후기쟁이가 왜 조용하나 싶어할 분들을 위해서는 뻥이고, 그냥 내가 쓰고 싶어서 후기를 써본다.
EBS 다큐 프라임에서 한달동안 엄마를 바꾸는 실험을 한적이 있다. 그때 인상 깊었던건 자신이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면면을 상대방 엄마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테면 '낯설게하기'. 낯설게하기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나는 같은 공간을 여행자처럼 바라보는 김연수의 시각을 좋아한다. 그저 사랑이 아니라 사실 이런 사랑의 느낌도 있다고 말해주는 보통의 말과 누군가 여행경로만 보여주는게 아니라 여행과 함께 변화하고 풍경과 사람을 다르게 바라보는 여행책도 좋아한다. 다른 곳을 찾아가서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독특한 요리를 먹는 것만큼 일상을 여행한다는 것! 알라디너를 초대한건 그들의 낯섦을 나의 익숙한 공간과 접속시키려는 욕심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내가 보는 산과 내가 먹었던 음식, 내가 좋아하는 풍경의 단면과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그들이 일으킬 즐거운 소란.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계획은 별게 없었고, 누누히 말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누군가를 혹하게 만들만큼 관광지의 색채를 지닌 곳이 아니었다. 걱정하는 내게 조선인님이 사람보러 오는거죠란 말을 해준게 고마웠다. 먹고 마시며 수다나 떠는거죠란 누구의 말도, 액면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거 아니냐고 해준 J군의 말도 정말 고마웠다. 그렇다고 내가 벌인 일의 빈틈이 메워지는건 아니지만.
만나는 일정부터 삐그덕대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먼저 군산에 발을 디딘 머큐리님. 군산을 둘러본다는 말을 믿었건만 한적한 피씨방에서 페이퍼를 올린걸 보고서야 죄송스러워지고 말았다. 정자 나무 밑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을 정군님은 말해서 뭐하고. 속절없이 책을 읽으며 기다린 순오기님과 옥찌들에게 둘러싸여 종이접기를 마구마구 해야했던 뽀님까지. 좋지 않은 시작이었다.
무국을 먹고 차를 마시려고 했는데 등산 스타일링한 머큐리님의 의지와 분위기를 반영해 내항을 거쳐 산에 오르기로 했다. 바로 이때, 그토록 고대한 낯선 순간, 나는 미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다른 시각이 도드라졌다. 내항 가기 전에 (구)조선은행을 발견한 것이다. 허름한 건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오기님이 전에 와본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며 작품의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그걸 알리없는 시청 관계자들은 기념관으로 지정은 못할망정 PLAY BOY 간판을 단 단란주점인지 나이트 클럽으로 허가를 내줬으니. 공무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지역에 산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같은 무지렁쟁이가 할말이 있을려고. 멋졌다. 순오기님 설명에서 살아나는 탁류의 배경과 작품 하나만으로 군산이 잠깐 반짝였다. 앞으로 여력이 된다면 탁류를 읽고(우선은 알고), 어떻게 그 부분을 좀 더 의미있고,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게 할지 생각해보고 싶다. 아니, 할 것이다. 의욕 과잉 맞지만 부끄러운데 계속 부끄러울 수는 없잖아.
내항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바다와 갈매기, 바다 냄새를 '같이' 맡았다. 날이 더웠다. 해망동까지 가서 물고기길을 통해 월명산을 오를 자신이 없었다. 경로를 변경해 산을 오르면서 씩씩하게 뛰고 걷는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물론 목적지며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저 아치 하나 믿고 더운 날씨에도 걸어준 분들께도 감사한다. 아, 감사함은 조금 늦게 얘기를 해야겠다. 지금은 헉, 헉, 우선, 오르막길을 올라야했으니까.
옥찌가 신발이 불편하다길래 신을 벗었고, 뽀님도 같이 벗었다. 벗는다는 말은 소라 껍질을 벗긴다는 말을 야하다고한 라주미힌님의 농담처럼 적절하게 괜찮았다. 폴짝폴짝 뛰며 쑥쑥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이 사람들 맘 속으로 들어갔다.
산에서 내려와 차를 마시고, 목살집으로 이동해 고기보다 연기를 더 마시며 저녁밥을 먹었다. 전어 구이를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술을 한잔 했고, 난 좀 취해서 평소보다 더 시답지 않은 말을 했던 것도 같다. (아니, 했다) 술자리가 파하고, 1박 할 곳도 없는 사람들을 찜질방에 버리고(미안해요) 나 취했다고, 다음날 옥찌들을 봐야한다고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배롱나무와 월명산 정자가 일본식이란걸 알려준 조선인님과 7년 전(아주 중요하다. 난 7년 전이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득할 정도로 먼 시간인데)에 답사를 한번 한게 다인데도 또렷하게 장소와 느낌을 기억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여행한 순오기님. 해람이를 무등 태워주는 체력과 날이 갈수록 향상되는 미모를 뽐낸 라주미힌님, 아치가 아이스크림 먹자고 조른걸 기억해내고 선뜻 사주시더니 대거 반품 교환 사태에도 의연하게 받아주신 머큐리님(당신이 보여준 관심이 딱 좋은 날의 햇살처럼 따뜻했어요.), 부지런히 산을 타며 자신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휘모리님, 자긴 아이들이랑 잘 못논다고 했지만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아이들 눈높이에서 재미있게 놀아준 뽀님(내가 민을 혼내려고 하자, 어서 도망가라고 하는데 귀여워서 원), 민에게 오만가지 장난을 알려주고, 조용히 있다가 한마디씩 하지만 그렇게 재치 넘치진 않았던(정군님은 이런 말에 별로 맘 상하지 않겠죠?, 써놓고 불안한데^^) 정군님.
기대가 있었다. 나의 기대는 충분히 채워졌지만 다른 분들은 어떨지 불안하고 초조하다. 혹은 그저 죄송스럽기만하다. 어떤 느낌일까를 궁금했지만, 관계보다는 내 느낌이 더 궁금했던건 아닐까란, 역시 욕심이 먼저 눈에 보여서 송구스럽기만하다.
혹여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남발쟁이) 정말 군산을 제대로 알아서 의미있고, 멋진 추억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역시 또 과욕일까.
아참, 소라는 살짝 데친 후에 씻어서 먹는거란다. 소라보다 뻘을 더 먹게 해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