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주로 단화나 운동화를 신는다. 옷을 조금만 예쁘게 입었다가는 영락없이 불편한 신발을 신어야하기 때문에 나는 주로 신발을 골라놓은 다음에 옷을 선택한다. 운동화에 맞는 옷은 활동하기 편하고 걸어다니기 좋다. 하지만 옷은 캐주얼한 것만 입어야하고,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영락없이 집 근처 가게로 아이스크림 사러 나온 거친 Arch 행색이라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마침 꽃무늬 스커트가 보였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을 만나니까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신발 생각 안 하고 바로 옷을 입었다. 하이힐도 아니었다. 검지 손가락만한 굽이었다. 이 정도쯤이야, 근거없는 자신감까지 언뜻 굽 사이로 새어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타협을 해도 그 옷에 운동화는 정말 아니었다. 게다가 운동화는 아치의 아찔한(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일 것이다.) 다리선을 가린다. 며칠동안 잠깐씩 신었으니 길이 좀 났겠구나 싶기도 했다. 키가 조금 커졌고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폼난다. 맞아, 맞아. 여기에 운동화는 별로였어. 혼잣말로 응원해주는 것까지! 게다가,
얼핏 보이는 실루엣은 예.쁘.기.까.지 했다. (방점을 유의해야함)
여성성에 있어서 난 늘 외야였다. 화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늘 화장 안 했단 오해를 받고, 점점 아줌마로 불리는 횟수가 많아지며(제 3의 성인 아줌마에 대해서 다음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늙어서 못쓰겠단 소리는 몇년 전부터 들어오고 있으니까. 나도 꾸미면 이쁘겠다거나 왜 자기 관리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 정도는 약과였다. 총체적인 관리의 필요성은 내가 점점 인간으로 살기보다는 '여자'로 살기만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하이힐을 안 신었다면 개뻥이고 그저 불편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신는 구두는 얼마나 멋지던지.
무사히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이건 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쓰라리고 불편한거다. 야심의 꽃무늬 치마는 바람 난 옆집 이씨처럼 미친듯이 휘날리고 화장은 번지고 들뜨고 뜨고 계속 뜨고 뭉개지고 난리가 아니었다. 이래서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안 되는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닥에 앉고,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움켜쥐고, 절룩거리다 뒤뚱거렸다. '저기까지만 가면 돼'라면서 주문을 외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에라이 모르겠다면서 치마고 신발이고 다 집어던져 버리고 싶었다. 나는 상식은 없지만 그래도 눈치는 조금 있던터라 신발을 집어던지는 대신, 발을 살펴봤다. 물집 사이로 빨간 속살이 뭉개져있었다. 밴드를 붙였다. 좀 괜찮다. 뭔가 잡아채듯이 자꾸 발이 앞쪽으로 쏠렸지만 그래도 좀 괜찮아졌다.
다음날 아침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 한게 어디냐며 발과 아치를 칭찬해주었다. 자, 이제 여유있게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면 되는데......
우연히 친구를 만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교대로 북어국을 먹으러 간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교대에서 센트럴 시티까지 걷는건 좋지 않았다. 좋지 않았을 뿐더러 당황스러웠다.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면 아치 말로는 '껌인데' 말이다. 오르막길은 숨이 찼으나 견딜만했다. 문제는 내리막길. 체중이 온통 앞으로 쏠리자 발바닥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밴드는 밴드대로 벗겨지려고 하지 내리막은 끝이 없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 돼서 친구를 바라봤다. 친구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하이힐에 얽힌 무서운 음모를 들려줬다. 나는 깜짝 놀라 신발 위에서 내려왔다. 먼지에 찌든 인도가 이토록 좋고 편하고 멋지다는걸 처음으로 알았다. 발바닥이 보도에 탁탁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친구에게 살짝 말해줬다.
하이힐의 필수품은 자동차라고.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나나 되니까 아치꼴이 창피해도 같이 다녀주는거란 얘길 해줬다. 참 좋은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