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서울에서 놀다 왔다. 묵을 곳도 만날 사람도 정해놓지 않았다. 큰 틀은 있었지만 세세한 일정은 될대로 되란 식이었다. 될대로 되어서 곤란하기도 했지만 서울-여행은 나쁘지 않았다. 무언가를 여행화함으로써 얻는 것은 낯선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찰할 수 있는 점이며 잃어버리는 것은 무작정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시간!인 것이다. 그 시간에 뭔가를 끄적이거나 옆테이블의 속닥거림을 엿들으며 히죽대긴 했지만.
부천 영화제를 친구들과 함께 했다. 라주미힌님이 따로 페이퍼를 올리셔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해도 될 것 같다. 대체 좁은 의자에 앉아 영화의 반절 이상을 손틈으로 보면서, 긴장으로 어깨까지 굳어가면서 끝까지 본 오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끈기의 아치도 아닌데 말야. 물론 좀비 영화가 재미있는 장르고 마커스는 다양한 각도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는 측면에서 호러무비라는 장르 설정은 별로란 생각이 들긴 했다. 더 칠드런을 보면서 아이를 보는 눈과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간극을 느꼈다. 옥찌들과 난 다시금 어떻게 잘 지내야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새벽에 어두운 부천 시청 광장에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떼거지로 비빔밥을 비비는 풍경은 꽤 그로테스크하기도 했고.
라주미힌님은 남들이 다 훈남이라고 할 때 내 눈엔 2% 부족했던 지점을 파마를 함으로써 완성시켰다. 무척 탐이 나는 스타일은 승주나무님을 떠오르게할만한 했는데 그건 '라주미힌님, 승주나무님 있어도 그럴테야' 뭐 이런 어깃장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팔짱끼고 있는 라주미힌님을 보자, 여러명 조련 시키느라 늘 바쁜 승주나무님이 무척 그리웠다고나 할까.
바밤바님은 나랑 나이차도 별로 안 나는데 무척 풋풋했다. 나오기 전에 풋사과를 먹은게(퍽퍽~)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휘모리님은 빨간 스니커즈에 양갈래 머리를 하고 나오셨다. 서재는 알라디너들을 미모순으로 뽑는다는걸 새삼 느꼈다. 아치는 만우절 특채다.

블라에서 그를 기다렸다. 맨날 맥주를 먹다가 커피를 마셔봤다. 사장님은 '오늘의 커피'가 탄자니아와 인도네시아 원두를 섞은 것이라고 했다. 사장님의 설명은 간단명료했는데 내 머릿 속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근방을 떠돌다 지직거리며 과부하가 생기기 시작했다.
향이 끝내주는 커피였다. 이걸 놓치면 안 된다고 정신없이 다이어리에 맛과 향을 적어내려갔다. 코도 정신없이 냄새를 빨아들였다.
담배 한대가 간절한 순간이었다. 짐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는 어찌나 적절한 조합인지. 탁자 위에 커피 눌러붙은 자국과 수북한 담배꽁초가 있는 장면.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데도 하루에 한잔의 커피만으로 족한데도 비가 오는 찻집에선 웬지 탐욕스러워도 괜찮을 것 같았다. 굉장히 탐욕스러운 맘으로 쭉 커피를 마시니 기분마저 생기로워졌다.
밤에 만난 사람과 나 사이의 거리는 적당했다. 맥주 한잔을 하러 시사영어사 뒷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곰팡이 냄새가 피어오르는 술집. 컨츄리 음악과 또 손님이 들어오면 귀찮은데란 표정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알바생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고동색 벽기둥보다 더 진한 맥주를 홀짝이면서 약간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피곤하고 졸려서 대화를 이어나갈 의지도 날아가버렸다. 난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면서 '나 들어갈래'란 신호를 보냈다. 아냐, 이건 분명치 않다. 친구랑 얘기했듯이 무의식의 반영인지 무의식을 핑계로 지어보이는 제스처인지 알 수 없으니까. 어쩌면 난 갑작스럽게 눈을 반짝이며 서로의 이야기 속에 파묻히게 되는 순간을 고대하는 의식으로서 하품을 해보인 것인지도 모르니까. 가장 맛없는 초콜릿을 먼저 먹어 치우는 것처럼.
그때 노랫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A. C. Jobim의 트랜디한 노래만 나오는줄 알았다. 그런데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의 'chan chan'이 나오고 뒤이어 재즈풍의 음악이 연달아 나오자 난 그만, 여기서 춤을 추면 좋겠다고 동행한 사람에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아직 자제력이란게 있어서 그 사람이 그곳은 좁은 술집이고, 플로어도 없다는 말이 들리긴 했지만 말이다. 흑백 영화에서 여남이 흥겹게 춤을 추는 장면을 재현하려는게 진정과 자제의 범주로 들어가야하는건 분명 애석한 일이다. 현대인들은 즐길 수 있는 온갖거리에 포위되어 있으면서 정작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성대를 울리는데 인색한 것과 마찬가지.
인사동길로 쭉 들어가다보면 왼편에 전북 뭐라고 써진 간판이 보일 것이다. 간판 맞은편에 좁은 골목길이 있는데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왼편 2층에 찻집이 있다. 일없는 일요일날 인사동을 어슬렁거리다 발견한 곳인데 보물 같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고 조명이 아늑해 분위기가 좋고, 손수 재료를 다듬어 만든 차를 맛보는건 누군가 무언가를 마시려고 할 때 고려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이 찻집의 경우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찻집에 혼자 있는 손님이 낯선건 아니다. 혼자인 손님은 찻집의 분위기에 따라 위축되거나 다른 곳보다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별다른 생각없이 들어간 그곳에서 난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단호박과 고구마 스무디가 참 맛있고, 오미자차는 새콤달콤했다. 주인 언니는 내가 본 어떤 서버보다 친절하고 자기 일을 좋아하며 미모롭기까지 하다.
혼자 왔다고 주인 언니가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스무디도 서비스로 줬다고 이런 얘기를 하는건 절대로 아니다. 몇번 봤다고 아는척 하면서 함초가 나왔는데 정말 맛있다며 추천을 해주고 또 오미자차를 서비스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정말!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그렇군, 그래.
텅빈 시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늦게까지 잠을 안 자서 나올 수가 없다고 했다. 서운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집에 갈까 말까 하다가 집회에 가기로 했다. 2시인줄 알았는데 4시라고 했다. 다시 뭉텅 빈 두시간. 찻집에 들어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책을 봤다.
대관절 그 쓰고 독한 것을 왜 먹나 싶었는데 전에 배운대로 갈색 설탕을 넣어서 살살 저어가며 깊게 쭉 들이키니 이건 뭐, 내가 커피인지 커피가 나인지 모르겠는 상태가 된 것만 같았다. 숨구멍에서 커피향이 퐁퐁 소리를 내면서 배어나온다. 맛있다.
며칠동안 책 한권 다 읽지도 못하면서 나올 때는 한권을 다 읽으면 어떡하나란 불안은 뭐란 말인가. 집에서 나올 때 너무 어렵지도 두껍지도 무겁지도 금방 읽어낼 것 같지도 않은 책을 골랐는데 그게 바로 장 그르니에의 '일상적인 삶'이다. 침묵과 담배. 난 '섬'에서 알베르 카뮈의 서문을 읽은 후부터 장 그르니에가 무조건 좋아졌다. 그는 어렴풋이 느끼는걸 명확하게 설명하진 않았다. 도리어 틈새로 새어나오는 여러가지 것들을 붙들어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웃기려는 의도가 1그램도 들어있지 않은 점잖은 유머는 얼마나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드는지. 아치는 콩닥이고 설레고 흥분할 일도 참 많다.
물론 섬의 서문을 알고 있을 분들이 더 많겠지만 혹시 궁금한 당신들을 위해,

나는 다시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거리에서 이 작은 책을 편치고 나서 겨우 처음 몇 줄을 읽어 보고 다시 덮고는 가슴에 꼭 끌어 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 방에까지 달려왔던 그 날 저녁으로. 그리고 나는 아무런 마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책을 열어 보게 되는 저 알지 못하는 젊은 사람을 너무나도 열렬히 부러워한다.
알베르 카뮈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며칠 전의 나래도!(뭐래)
늦은 밤은 조금 신나는 곡으로!
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239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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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미칠만큼 신나게 같이 놀아준, 사운드 박스!!! 탭댄스가 이렇게 가볍고 흥이 나는 춤이었던거야? 뭔가 늘 새삼스럽고 뒷북이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의 달인 반빗아치의 길기만 한 페이퍼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