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이후로 정이 붙을만한 드라마가 없었다. 베바(무스탕님 고마워요^^)는 다른 사람들의 버닝 모드에 달아올라 첫회부터 봤다가 극이 진행되는게 좀 억지스럽고 여배우로 나오는 분의 오바스런 연기가 눈에 거슬려 봐지지가 않았다. 물론 강마에의 일면은 얼핏 지나치다 보긴 했는데 이게 그렇게 카리스마가 있나(아, 웬디양님 미안해요^^)싶기도 했다. 특히 중반에 철거민들 앞에서 합창 연주하기까지의 과정이 개연성을 떠나 웬지 억지스러웠고 그 과정에서 철거민의 아들에게 자존심 운운하는게 눈에 거슬리고 말았다. 자존심보다는 당장의 배고픔이 우선일 수 있고, 아이의 굶주림이란 민감한 부분이긴 하지만 웬지 저렇게 다루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드는거다. 미안하지만 이걸 논리적으로까지 설명할만한 능력은 안 된다.

 그 다음으로 본게 바람의 화원인데 신영복과 김홍도의 생애를 픽션으로 재구성한데다 화면에 똑 떨어지는 그림이 정말 예뻐서 첫회부터 몰입모드였는데 너무 극을 질질 끄는데다 박신양의 어깨 힘! 연기와 뻔한 결론으로 흐르는게 보여서 안 봐지게 됐다. 타짜란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는 것이 영화보다 감이 떨어지는건 물론이고 긴장감 고조하려는 음악까지 별로였으니 뭐.

 그리하여 달짝지근하게 볼만한 드라마는 포기하고 영화나 볼까하다 그냥 속는셈치고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게 되었다. 노희경, 표민수 콤비라 원래부터 볼까말까 망설이긴 했는데 그건 전에 '굿바이 솔로'가 그 틀과 관계의 남다름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억지스러워 실망했던걸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회부터 지금까지 방영된 분량을 다 보고서야 이 드라마에 반하게 되었고, 곧 버닝 모드로 돌입하게 될 것을 예감했다. 아, 난 최근들어 버닝 모드란게 타오르다가 아니라 날아오른다, 잠수탄다란 말인줄 알았다. 버닝에서 새가 난다를 떠올린건 뮝미. 버닝이며 뮝미며 인터넷 용어들이 좀 귀엽다.

 각설하고,

 초반의 시청률 부진인지 그간 드라마와 다른틀 때문인지 이 드라마를 많이들 안 보는거 같아서 알라딘에서 팬질 좀 하려고 한다.

 앞서도 자꾸 다른틀 얘기를 했지만 이 드라마는 매회가 옴니버스식으로 제목이 달리며(설레임과 권력관계, 적, 아킬레스건 등으로) 방송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온에어와는 차원이 다른게 극적인 긴장감을 위해서 환경을 밀어부치는게 아니라 환경 속에 사람이 녹아있고, 사람들이 그 환경을 기반으로 알아서 연기를 해나간다. 시나리오나 드라마 작법에서 누누히 나오는 작가가 만든 캐릭터들이 알아서 연기를 하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 작가나 PD가 보이는게 아니라 연기자들, 각자의 삶에 대한 시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처럼 다양한 성격을 갖고 가진 인간이 등장한다. 누구에게는 멋진 PD가 동료들에게는 시청률만 잘 나온다고 잘난척하는 PD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재능있는 직장동료가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여자'가 되기도 한다. 쉽다고 지칭받아 속상한 그 누군가는 자꾸 자신이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하는지 묻고 다니다 한뼘 정도 성숙하기도 하고. 그런틀을 넘어서서 노희경은 전작 '굿바이 솔로'에서 보여준 다층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엔 현빈과 송혜교가 주인공이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촘촘히 전개되기 때문이다.

 자기는 작가니까 뭐든 자기 맘대로 해야만 한다고 고집하지 않고 작가와 PD와의 권력관계를 반전시키는 작가가 있고, 나이가 있지만 노처녀나 주인공의 배후세력으로 밀려나지 않고 주인공을 꿰차지만 삶은 열심히 살만한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연기자가 있다. 능력있고 유들유들한 성격이지만 자신의 성격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은 신인 배우 때문에 골치를 앓는 PD와 그 PD에게 꼼짝없이 찍혀버린 문제 조연출.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김군과 다른 곳에는 그토록 쿨하면서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는 여전히 감정조절이 안 되는 국장과 국장의 가슴을 덥석 안으며 애교를 부리는 부장. 예전에 사귀었지만 서로의 연애사를 존중한다며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시작하는 연인이 있다. 그들은 지금껏 우리가 봐온 드라마 속 인물들과 좀 다르고, 다름에도 쉽게 공감할 수 있게 생생하다. 생생함은 우선 그들의 입장이 이해되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쯤은 기본이다.

 그리고 송혜교와 현빈. 먼산을 바라보며 청순한 연기를 하던 송혜교보다 풀하우스의 송혜교가 더 좋았던 나는 이 드라마에서 그녀가 연기자로서 가진 매력을 백분 발휘하는걸 볼 수 있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쳤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전혀 무관한 입장을 보여주는 스타일도 아니고, 영악하지만 일반적인 감정선의 결핍이 보이기도 한다. 일에 대한 열정과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한 고집도 대단해 뭔가에 빠져든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밝은 빛이 가끔 눈에 띄기도 한다. 직장의 여성을 보여준답시고 '커리어우먼복'이란 것을 걸치고 돌아다니는 것만 보여줘선 안 된다는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프락사스님이 송혜교를 좋아한다면서 연예인 같지 않다는 소리를 한적이 있는데 나 역시 동감한다. 연예인처럼 예쁘긴 하지만 연예인같지는 않다. 난 이 작품에서 그녀의 욕심을 봤고, 그 욕심이 어떻게 하면 화면에 예쁘게 나오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이 '주준영'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가에 닿아있다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송혜교, 단발머리가 썩 잘 어울린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줄곧 까칠해 드라마 흐름과는 상관없이 별로 느낌이 안 좋았던 현빈은 이 드라마의 초반에 전작의 느낌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연기를 해서 조마조마하게 만들더니 곧 본색을 드러냈다. 현빈 아니 정지오는 까칠한게 아니라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할 뿐이란 것. 예민한 정지오는 주준영과 다시 관계를 시작하며 점점 본래의 정지오 안에 감춰진 부드럽고 자상한 면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아, 이런저런 얘기로 글이 길어졌지만 정말 이 드라마가 좋다.

 뭔가가 이렇게 좋아라고 한게 정말 오랜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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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11-12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저한테 미안해할것 있나요. ㅋㅋㅋ 제가 합창신 보면서 좀 많이 울긴 했지만. ㅋㅋㅋㅋ

나도 이 드라마 좋아해요. 이번주건 아직 못봤는데..
송혜교가 얼굴 내밀고 손 턱 아래로 갔다대면서 '주준영' 할 때 정말 넘 예쁘죠.

아는 언니가 이 드라마 마케팅하는데, 시청률 안나와서 걱정인가보아요.
시니에님이 알라딘 지부 맡아주세요. ㅋㅋㅋ

Arch 2008-11-12 10:30   좋아요 0 | URL
그런거라면 자신있죠. 열심히 입소문 내겠습니다.

캬악!! 나도 그 표정이며 그 말투며 정말 예뻤어요. 현빈이 어디서 여우짓이냐고 물어보는 것도 물론 귀여웠지만.

그리고 바베(진짜네 ㅋㅋ 베바 맞아요. 바베는 또 뭘까. 바베큐 이런거 같은데..)는 그럼에도 좀 미안해요. 그러고보니 거꾸로 댓글을 다는 것 같네요.

조선인 2008-11-1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니까 이런 드라마가 있다는 거군요. 10시면 자는 사람이라...긁적긁적.

Arch 2008-11-12 10: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더랬죠. 본방 말고 재방으로 봐도 재미있으실거예요.

마늘빵 2008-11-1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교혜교! 혜교 얼굴을 한 번도 못보다니. 바쁜 일 끝나면 몰아서 볼테닷.

Arch 2008-11-12 10:29   좋아요 0 | URL
알아요. 알아. 아프님 혜교 사랑은!

무스탕 2008-11-1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속닥.. 시니에님. 바베가 아니고 베바 아닌가요? +_+ 본문에도 댓글에도 다 바베에요)
울 신랑한테 리모컨 넘기고 전 딴짓 하느라 티비 안봐요. 근데요, 뭐 하는지는 다 알아요..
어제도 신랑은 '에덴의 동쪽' 이랑 '타짜' 랑 '그들이 사는 세상'을 번갈아 가며 보더군요.
김갑수가 그들세상에도 나오고 타짜에도 나온다고 같은시간에 나오면 어쩌냐고 투덜거리며 보더군요 --;;

Arch 2008-11-12 10:3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모름지기 드라마는 몰입인데.. 대단한 옆지기님이시네. 바베 부분은 다 고쳤어요. 아닌가? 다시 한번 봐야겠다. 김갑수는 해신에서 좀 어색했는데 자꾸 보면 이 사람이 연기의 동선과 표정까지 다 연구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두군데 드라마에서 분위기가 다 다를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