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기타 등등의 이야기

 멜기님을 바래다 드리고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기로 했다. 밤은 깊어가는데 젊지도 않은 우리의 밤은 여전히 태양빛을 받고 있듯 움찔대고 있었다.

 우리는 역시 아프님의 제안으로 길쭉한 선들이 죽죽 그어진 이름을 가진 술집으로 이동했다. 딱딱하게 튀겨져나온 국수와 맥주가 다였지만 생맥주가 담겨져나온 컵에도 난 환호했다. 취했단 얘기다.

 그곳에서 우린 성적으로 개방적이란게 문란하단건지, 자신이 지닌 성적인 이해범위를 어디까지 확장시키는게 개방성의 지표가 되는건지, 상대방에겐 어떤식의 잣대를 들이밀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를 했다. 물론 내가 푸하님을 쿡쿡 쑤시면 푸하님이 인자하게 웃으며(할아버지 같다. 아저씨에서!^^)대답을 했고, 아프님은 이거 참 재미있는데요란 표정으로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아프님은 아마도 시니에님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흉내내는 것 같은데 소피스트의 궤변에 더 비중을 둔 것 같단 얘기를 했고, 푸하님은 알듯 모를듯 웃어넘겨서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나 혼자 자폭해버렸다. 난 누군가를 흉내내는게 아니라 정말 궁금했다. 일테면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게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어떤 깨달음에 도달했던건지, 아니면 어떤걸까란 기타 등등의 이야기. 아무래도 내 스스로가 생각 정돈형 인간이 아닌데다 사람을 자꾸 읽어나가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읽는게 아니라 느끼고 겪는건데, 난 분별없는 소피스트처럼 여전히 설치고 있었다.



제5장 발견, 뽐뿌질 없이도 화락 가까워진 느낌.

 앉은자리의 매력이 다해가자 위속의 잔여물도 가벼워진터라 우린, 아니 난 뭔가를 먹고 싶어 두 남자를 꼬득였다. 다시 그곳에 가서 파전이든 뭐든 배 단단하게 먹어보자고. 다시 돌아간 그곳은 아쉽게도 문을 닫았고, 우린 길 잃은 어린양들처럼 혹시나 열었을 가게를 찾아 다시 골목을 걸었다. 대학로의 골목은 처음인데도 으슥한게 딱 내 취향이었다.

 찾다찾다 드디어 도착한 곳은 그저 그런 맥주집이었는데 바로 좀 전에 있던 술집 옆이었다. 생맥주를 시키면 안주를 먹어야한다는 외형만 자유인스러운 아저씨가 있는 술집에서 우린 적절하게 병맥주를 들이켰다. 안주로 나온 김에선 묵은내가 팍팍 풍기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그나마 제안쟁이 아프님의 선택이 최선은 됐다는 얘기다. 사실 처음 술집은 최고였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길찾기만 훌륭했다면 공식적으로 호남형 이미지 굳어지는건데 말이다.(내가 호남에 산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이거 유먼데... 혼자만)

 암튼, 제5장의 제목처럼 화락 가까워진 순간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한다.

 누군가와 가깝다고 느끼는건 완벽할 것 같은 그 사람의 허점을 발견하거나 나와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일 경우가 많은데 우리의(이런 친근한 표현이 허용된다면) 경우는 후자였다. 난 페이퍼에 여러 번 배 나온 얘기를 했고, 장차 배의 역사에 대한 페이퍼를 구상 중인지라 두분도 내 배의 존재를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아프님의 최근 몇 달간의 피로로 누적된 배에 대해 무심코 '좀 나오셨군요.'란 말을 건넬 수 있었다. 뭐, 나도 나왔는데 반갑군요. 이런 의미였는데 아프님, 굉장히 당황해하셨다. 그리고 말그대로 병나발을 불며 앉아있던 그 술집에서 푸하님의 얘기 끝에서 빙빙돌던 내가 화장실에 갔다와 앉자마자 아프님도 스스럼없이, 혹은 복수의 칼날을 벼리듯이

-저기, 나도 배봤어요.

 라고 해서 민망의 극치를 경험하고야 말았다. 알고 있다고 짐작하는 것과 상대방이 직접 봤다는 것 사이에 가로놓인 구멍 속에 쏙 박혀버리고 싶었다. 그러다 주제가 급변해선 다시 배 얘기가 나왔고, 아프님의 최근에 나온 배란 강조와 나의 중학교때부터 나온 배야. 우리의 배와는 상관없이 고고해보이던 푸하님이 나는 그렇게 배가 안 나왔어란 말을 하면서 배를 위에서부터 쓱 쓸어내리시는데 덜컥, 뭔가에 걸려버렸다. 네, 여기까지만 할게요. 향후 서재 꽃님들의 이미지에 심대한 우려가 있을걸로 예상하는바, 다만 난 우리가 꽤 가깝다고 느껴버리고야 말았다. 뭐 다 말해놓고 뒷수습치고는 어거지긴 하다.

 술자리가 파하고, 두 분이 나를 어딘가로 안전하게 데려다놓으려고 애쓰는걸 보면서 '저의 자율성도 좀'이란 좀스런 주장을 해서 돌려보내고 서울 거리를 걸었다. 바람이 좀 차가웠고 낮과 다르게 추웠다. 버스가 다니자마자 냉큼 올라선 꾸벅꾸벅 졸면서 문득, 아주 행복한 꿈을 꾼 듯 포근해서 입가에 침으로 수를 놓았다.

 이상, 더러움의 일가견 시니에의 별다른 내용없이 늘리기만 오라지게 늘린 만남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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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11-0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나도 배봤어요.

아 어떡해. 혼자 막 웃었어요. 어떡해,어떡해,배봤대, 이러면서요. 아하하하. 게다가 시니에님의 '저의 자율성도 좀'이란 멘트가 또 막 좋고. ㅎㅎ 침흘리는 것도 아주 시적으로 표현하셨구요. 이 페이퍼에 추천이 막 달리는게 전혀 이상한게 아니네요.

:)

Arch 2008-11-01 12:37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그런가요? 간만에 추천을 받으니까 이거 배가 싸하고 아픈게 아, 이 맛이구나 싶은거 있죠! 역시 꽃님들 매력이 페이퍼 곳곳에 묻어나니 제 글과 별개로 추천받을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건 웬 논평!)

순오기 2008-11-0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추천으로 드디어 '5'가 돼서 메인으로 올라가겠구낭~~~ㅎㅎㅎ 그러면 보는 사람이 엄청 많아진다는 얘기.
흐흐~ 꽃님들이 배봤다로 친해진 경이로운 만남을 온 알라디너가 다 알게 될거란 말이쥐!!^^

Arch 2008-11-02 20:0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웬지 섬짓해지는데요. 으으...배삼총사 뭐 이렇게 되는거 아닐지.

Jade 2008-11-02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시니에님 아프님은 배 찔러주면 더 좋아해요 ㅋㅋㅋ

다락방 2008-11-02 16:18   좋아요 0 | URL
앗 그래요, Jade님? 저도 언젠가 한번 찔러봐야 겠어요. 불끈. ㅋㅋ

Arch 2008-11-02 20:02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아직 배를 튼 사이가 아니라서. 다락방님! 아프님이 성격이 좋은가봐요. 정말 불끈해도 될까나~히히.

마늘빵 2008-11-02 20:26   좋아요 0 | URL
헙. -_-;;;;

승주나무 2008-11-02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말보다 시니에 님의 글이 백번 낫군요. ㅋㅋ
재밌게 잘 보고 이제야 댓글 남겨요^^

Arch 2008-11-02 20:03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첫댓글치고는 감개무량한 칭찬이십니다. 원래 처음엔 살짝 긁어야 맛인데^^ 앞으론 서기관 보조스러운 포스로 승주나무님의 속사포같은 말들을 제깍제깍 받아쓰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