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런 책들이다.













...기타 등등.


얼마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몇이 만날 일이 있었다. 화제는 단연 책이었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사모으지만 절대 읽지 않는 책 목록을 이야기했다.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들 스노브이며, '교양'에 대한 갈망으로 이런 책들을 사 모은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책을 사는 것만으로 책을 읽었다고 '착각'한다. 사는 행위로 읽는 행위를 대신한다는 이 겸연쩍은 짓을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어서 적잖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대개 훌륭한 장식품이 된다! 서재에 꽂혀 있는 '교양'은 얼마나 뿌듯한가!


특히 우리가 열망하는 '교양'이란 얼마나 광범위한 영향에 걸쳐 있는가. 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 의학까지도 걸쳐 있다. 그 중에는 고전도 있지만, 우리 같은 스노브들을 위한 얄팍한 개론서들도 넘쳐난다. 그러나 개론서를 읽는 것만으로 '양자역학'이나 '초끈이론'을 알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그 개론서마저 읽지 않는다(못한다).


그 중에서는 고전도 있고 개론서도 있고, 우리와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방대한 '교양' 시리즈도 있다. 고백하건대, 이런 책을 사면서 교양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잠시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읽지 않는 교양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오늘도 내게 선택된 책은,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이고, '교양'은 자꾸 뒤로 밀린다. 그러나 당장 재미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교양'을 위해 따로 독서할 시간을 내기는 또 어려운 것이다.


모든 책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바벨의 도서관'의 사서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인가.


추신 : 어렸을 때, 모든 책을 페이지만 넘기면 다 읽고 이해하는 안드로이드가 나오는 외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안드로이드라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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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12-01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소유욕 만큼 특이한 욕구도 드물지 싶어요. 도대체 언제 써 먹을 지도 모를 물건을 두고 그토록 눈이 벌개져 다들 욕심을 앞세우니 말이지요. 문득 알베르토 망겔이 쓴 『독서의 역사』속에 등장하는 `유명한 책도둑`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 * *

이 모든 책이 나의 것이로구나

물리적 소유는 때때로 지적 이해와 동의어가 된다. 우리는 자신이 소유한 책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경향이 강하다. 법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재에서도 마치 가진 사람이 임자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부르는 책의 등짝을, 그것도 방의 사방 벽을 따라서 나를 지키려는 듯 얌전하게 쭉 서서 책장을 넘겨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책의 등을 흘끗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입에서는 이런 말이 쉽게 튀어나온다. ˝이 모든 책이 나의 것이로구나.˝ 그럴 때면 내용을 들추며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책에 담긴 지혜가 우리를 충만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나는 리브리 백작 못지않은 죄를 짓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같은 제목으로 똑같이 찍히는 책이 수천 부에 이르고 판도 수십 개가 될 텐데도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책만이, 다른 어느 책도 아니고 바로 그 책만이 `책`이라 믿고 있다. 주석(註釋), 얼룩, 이런저런 표시, 어떤 특정한 순간과 장소, 이런 것들이 그 책에 값으로 매기기 어려운 가치, 필사본과 같은 성격을 부여한다. 우리는 리브리의 도둑질을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행위의 밑바닥에 깔린 갈망, 이를테면 한순간이나마 한 권의 책을 `나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충동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정직한 남성이나 여성에게도 흔하게 나타난다.

그라디바 2014-12-01 16:23   좋아요 0 | URL
이런 좋은 구절을 소개해주시니 또 질러야 할 책의 목록이 늘었습니다 ㅋㅋㅋ 최근에 `장서의 괴로움`이라는 책을 소개한 팟캐스트를 재미있게 들었는데 그 생각이 나네요. 내 책만이 오직 `책`이라니 참 콱 와서 꽂히는군요 ㅋ

oren 2014-12-01 21:22   좋아요 0 | URL
여의 님께서 엄선해 놓으신 저 유명한 12권을 살펴 보니 저도 숱하게 `구경해 본` 책들이네요. 그리고 그 가운데 저도 무려 다섯 권이나 실제로 `소유`하고 있네요. ㅎㅎ 그런데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보기보다(?) 엄청나게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책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네요. 그리고 칸트의 3대 비판서는 그동안 틈틈이 `남의 책`으로 구경만 해 오다가 이번에 큰 맘 먹고 특별히 저렴한 가격으로 장만했는데, 여태까지『판단력 비판』만 온전히 제 수중으로 넘어 왔고, 나머지 두 권의 비판서는 `책도둑`들이 모조리 쓸어갔는지 도무지 알라딘이 제게 넘겨줄 생각을 안 하네요. ㅎㅎ

그라디바 2014-12-01 23:59   좋아요 1 | URL
역사! 그런 의미에서 다시 제 읽지 않는 목록의 상위에 랭크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10위 안에는 들겠네요.
이번 도서정가제 때 품절된 상품 중에 저희 네 사람이 가장 많이 웃었던 책이 바로 판단력 비판........
견물생심을 책에 적용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미워할 수가 없네요 ^^

poptrash 2014-12-01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권 빼고 저도 다 있어요 ㅋㅋ

그라디바 2014-12-01 17:50   좋아요 0 | URL
못 살아 ㅋㅋㅋ 진짜 ㅋ

cyrus 2014-12-0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지 못해도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게 느껴지는 책들이네요. ㅎㅎ

그라디바 2014-12-01 23:59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장식용 책들이죠. 아, 더 많은 목록을 생각해냈는데 너무 많을 것 같아 그냥 포기했습니다. 각자의 `장식용 책들`을 소개받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홈쇼핑에서 `세계문학전집 200권 세트` 같은 것도 팔던데, 실제로 인증한 사람은 아직 못 봤습니다 ㅋㅋ

sojung 2014-12-0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6년전엔가 책을 미친듯이 사모았어요... 알라딘에서 외서를 많이 팔길래..어렸을 때 읽었던 미국 SF작가 책도 원서로 읽을려고 많이 모아두고.. 또 외서 표지가 예쁜것도 많이 모았거든요 특히 강아지 나 드래곤표지 책을 진짜 많이 모아놨는데..문제는 해석이 너무 어렵다는 거였어요..ㅠㅠ 그래도 박스로 한7갠가 차곡차곡모아둔 책을 보면 뿌듯해요...정말 알수없는 뿌듯함 ㅋ

그라디바 2014-12-05 01:42   좋아요 1 | URL
제 친구 중에도 동화책 외서 사모으는 취미(?)를 가진 이가 있는데 외국 갈 때마다 탈탈 털리고 오더군요 ㅎㅎ

감은빛 2014-12-2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에 장식용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것 같아요. ㅠㅠ
저 중에서는 2권 있네요.
다음에 시간 날 때 제 장식용 책들도 하나하나 살펴봐야겠어요.